
남자가 얇은 헤드셋을 이마에 쓰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모니터에 나타나는 화면을 응시했다. 왼쪽 벽에 설치된 또 다른 모니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신호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곧이어 뒤편에서 ‘지직 지지직’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남자의 감정이 3D 프린터로 출력되고 있었다. 엉뚱하게 들리지만, 색다른 미디어 아트 전시회의 한 장면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작품은 홍콩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뉴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모리스 베나윤이 토비아스 클랭, 장 밥티스트 바리에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브레인 팩토리’라는 프로젝트다. 헤드셋은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흐름이 두피로 전달되는 뇌전도(EEG)를 감지하는 장치다. 수집한 EEG 데이터를 작가가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3차원 형태로 변환한 뒤, 3D 프린터로 찍어낸다. 최두은 아트센터 나비 겸임 큐레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감정의 본질과 그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인공지능과 인간성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결국 인간 지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그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저희의 결론은, 여전히 미래사회는 인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의미 있는 시도지만, 심미적 경험을 얻기엔 무리가있다. 실제로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인지 잘 모르겠다”며 갸우뚱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이번 전시기획에 기술자문으로 참여한 미국 IBM 왓슨그룹 아르만도 아리스멘디 부사장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도 처음엔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이번 시도가 인류사에 중요한 일로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질문은 던져졌다.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