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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꿀벌은 꿀맛을 알까?

곤충 의식 논쟁



꿀벌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탐스런 꽃을 찾았다. 곧바로 내려 앉았다. 대롱을 꽂고 꿀을 빨아 먹었다. 황홀한 달콤함에 피로가 싹 날아가…, 잠깐. 꿀벌이 달콤한 꿀맛을 느낄 줄 알까? 종일 꽃을 찾아 헤매느라 피곤하다는 느낌은?

꿀벌이 꿀맛을 알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미각기관과 두뇌다. 인간을 기준으로, 입 속으로 꿀이 들어오면 혀의 미뢰 속 맛수용체가 꿀을 이루는 당 분자를 붙잡아 생체전기신호를 만든다. 이 신호는 맛을 담당하는 뇌 부위로 전달된다. 이 때 뇌는 ‘달다’는 느낌을 떠올린다. 곤충에게도 미각기관이 있다. 무언가의 화학분자를 인식해 먹는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종에 따라 더듬이, 다리, 입 등 신체 여러 기관에 미각기관이 있다.

문제는 뇌 기능이다. 꿀벌과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꿀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이라고 보는지 아니면 ‘달콤한’ 먹이라고 느끼는지 인간은 알 길이 없다. 추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가지 방법은 곤충이 의식을 가진 존재인지 검증하는 것. 의식이란, 감각을 비롯해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모든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만약 곤충에게도 의식이 있다면, 꿀벌도 어쩌면 꿀맛을 달콤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꿀맛 알려면 ‘의식’ 있어야!

예를 들어 보자. 열대바다에 사는 상자해파리(Tripedalia cystophora)에겐 뇌가 없다. 적극적으로 먹이를 사냥하지만,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몸 전체에 분산된 24개의 시각기관 중 일부가 먹잇감을 포착하면 주변 근육이 먹잇감을 향해 움직인다. 무의식적인 반응만으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얘기다. 이런 상자해파리가 먹이를 맛있다고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곤충은 다르다. 곤충의 뇌는 다양한 의식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행동연구가 가장 많이 이뤄진 개미나 꿀벌을 보자. 이들은 한 번 갔던 길을 다음에 또 갈 때 최적의 경로로 간다. 즉, 목표물과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다 목표물 주변의 대표적인 표지(랜드마크)를 기억했다가 행동을 바꿀 줄 안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곤충은 다른 곤충의 의식을 무력화시킬 줄도 안다. 보석말벌(Ampulex compressa)은 바퀴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바퀴의 뇌에 독을 주입한다. 몸이 아니라 뇌를 마비시키는 것이
다. 바퀴는 마치 좀비처럼 현재 자신이 처한 처지를 파
악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능력, 즉 의식을 잃어버린
채 저항하지 않고 끌려 간다.

실제로 최근에 곤충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호주 맥쿼리대 생명과학과 앤
드류 바론 교수와 철학과 콜린 클라인 교수는 ‘의식의
기원에 대해 곤충이 알려주는 것(What insects can
tell us about the origins of consciousness)’이라는 제
목의 논문을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5
월 3일자에 발표했다. 논리는 이렇다. “인간의 의식은
우리 뇌의 핵심 영역인 중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곤
충 뇌의 ‘중심복합체(central complex)’라는 부위가 의
식 중 가장 기초단계에 해당하는 ‘주관적 경험’을 처리
한다. 즉, 곤충 뇌는 인간의 중뇌와 같은 기능을 한다.
따라서 곤충도 의식을 가진 존재다.”

주관적 경험이란 다양한 감각정보를 이용해 주변 환
경을 경험하고 학습한 결과,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개
체마다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현상이다. 꿀벌과 개미
의 최적경로 찾기 행동이 바로 주관적 경험에 해당한다.
 




논점 1 길 찾기만 잘하는 거라면?

그러나 꿀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캐나다 댈하우지대 심리학 및 뇌과학과 셸리 앤 아다모 교수는 ‘의식을 설명한 것인가, 재정의한 것인가(Consciousness explained or consciousness redefined)?’라는 반박 논문을 통해 “바론과 클라인 교수는 ‘자기인식’ 같은 의식과 관련된 대부분의 능력은 배제한 채, 의식을 너무 좁게 정의했다”고 지적했다.

의식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색깔이나 소리 같은 감각을 의식하고 과거의 경험을 기억(주관적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쁨이나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의식에 해당한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는 것(지혜)도 의식이다. 특히 주변 환경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자기인식)하거나, ‘나’라는 존재에 대해 몰두(자의식)하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의식이다. 아다모 교수의 지적은, 주관적 경험에서 자의식까지 다양한 종류의 능력이 있어야 의식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있는데 바론과 클라인 교수가 그 자격조건을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로봇도 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 찾는 로봇은 스스로 내외적 정보를 이용해 목적지로 갈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론과 클라인 교수가 주장하는 주관적 경험의 핵심이죠. 그러나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상적인 능력을 보여 주더라도 의식을 가졌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다모 교수 생각에, 곤충은 의식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의식 없는 꿀벌이 꿀맛을 느낀다는 건, 애초에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논점 2 의식의 핵심은 대뇌피질? 곤충에겐 없는데?

주관적 경험만으로 의식 있는 존재라고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인간의 중뇌와 비슷한 부위(위 논
문에서는 중심복합체)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주관적 경험을 온전히 하는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주 퀸즐랜드대 생체의학대 브라이언 키 교수는 ‘곤충을 통해 주관적 경험이나 의식의 기원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Insects cannot tell us anything about subjective experience or the origin of  consciousness)’는 제목의 반박 논문을 통해 “인간 의식의 핵심은 중뇌가 아니라 대뇌피질”이라며 “시각 피질이 손상된 환자는 대부분 실명하므로 어떤 것을 보는 주관적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뇌피질이 없는 곤충은 주관적 경험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의식이 없는 존재가 돼버린다. 당연히 꿀맛도 느낄 수 없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이 두뇌의 어느 부위에서 비롯되는 지는 아직 논쟁거리다. 전통적으로는 대뇌피질에서 나온다는 가설이 우세하다. 그런데 뇌의 80% 이상이 손상돼 대뇌피질이 없는 무뇌수두증 아이가 기쁜 표정을 지을 줄안다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이 가설이 의심을 받게 됐고, 스웨덴의 뇌과학자 비요른 메르케르는 대뇌피질이 아닌 중뇌와 기저핵이 의식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바론과 클라인 교수는 “피질은 분명 인간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그러나 손상된 시각 피질을 가진 인간의 경험과, 아예 피질을 진화시킨 적 없는 동물의 경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PNAS 7월 5일자 재반박문). 곤충에게 피질은 없지만, 중심복합체에서 다양한 의식 능력을 발달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논점 3 뇌세포가 너무 적다 vs 수보다 조직이 중요

설사 중뇌만으로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곤충의 중심복합체는 인간의 중뇌와 비교해 너무 단순하
다는 문제도 있다(전체 뉴런 숫자부터 비교가 안 된다. 예컨대, 초파리의 뉴런은 10만 개인 데 비해 사람의 뉴런은 1000억 개에 달한다). 셸리 앤 아다모 교수는 “곤충은 뇌의 크기와 비용을 줄여야 하는 선택압을 겪었을 것”이라며 “척추동물처럼 감정을 처리하는 뇌회로를 곤충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바론과 클라인 교수는 “뇌 신경세포의 개수보다는 뇌의 조직이 기능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며 “척추동물과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곤충도 적은 뇌세포로 이뤄진 특정 부위에서 각성, 포식, 기아, 보수 등 내부 상태에 대한 정보를 처리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인간 의식이 우주 전체에서 유일무이할 리는 없기에 인간과 다른 수준이라도 곤충이 의식을 가졌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의식이 ‘느낌’ 혹은 ‘감각질’일지, 아니면 그냥 정보처리 과정의 다른 형태일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꿀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게 증명된다고 해도, 우리가 꿀벌이 되지 않는 이상 꿀벌이 꿀맛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영영 알 수 없다. 감각이라는 게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황홀한 느낌으로 매일 꿀을 영접하고 있을지.

201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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