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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뇌는 커지고, 얼굴은 작아졌다

한국인 뇌, 광복 이후 90cm3 커져

머리는 하나의 신체 기관으로 불리지만, 해부학적으로는 뇌가 있는 ‘두개부’와 얼굴이라고 불리는 ‘안면부’로 나뉜다. 이 둘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인간 문명이 발전하며 크기 변화는 정반대를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인의 머리 크기가 광복 이후 커졌다.”


유임주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광복 이후 산업화로 한국인의 머리가 커졌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체질인류학회지’ 7월호에 발표했다.

doi:10.1002/ajpa.23464 


유 교수팀은 광복 이전에 태어난 1930년대 출생자 58명(남자 32명, 여자 26명)과 광복 이후에 태어난 1970년대 출생자 57명(남자 28명, 여자 29명)의 머리 크기를 비교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이용해 두개골의 부피를 계산한 뒤 머리의 폭과 높이, 너비를 직접 측정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30년대 출생자들에 비해 1970년대 출생자들이 두개강 부피가 평균 약 90cm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뇌 용량의 6~7%에 해당되는 양으로 큰 변화다. 뇌가 커지면서 머리도 커졌다. 다만 여기에는 남녀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남성의 경우 머리의 폭, 높이, 너비가 동시에 늘어난 반면, 여성은 머리의 폭과 높이는 늘어났지만 너비에는 변화가 없었다.


유 교수는 “지리적, 환경적 원인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따라서도 머리 크기가 변한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1930년대생은 역사적 사건(일제강점기 등)을 겪으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70년대생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된 이후에 태어나 환경에 따른 뇌의 형태적 변화를 연구하기에 적합한 세대”라고 말했다. 

 

 

두개부, 뇌 커지며 뼈도 덩달아 커져


흔히 머리는 목 위에 있는 전체 부위를 일컫는다. 척추동물의 경우 머리는 가장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총 28개의 뼈로 구성돼 있으며, 눈, 코, 귀, 입 등 감각 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머리는 크게 뇌가 있는 ‘두개부’와 눈, 코, 입 등의 감각기관이 있는 ‘안면부’로 나뉜다. 머리 크기를 논할 때 학계에서는 두개부와 안면부를 구분해 분석한다. 


두개부의 크기는 뇌의 크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선 두개부의 뼈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나눠져 있다. 전두골(1개), 후두골(1개), 측두골(2개), 두정골(2개), 정형골(1개), 사골(1개) 등이 연결돼 두개부 전체 뼈를 이룬다. 이들이 만나는 부분을 ‘봉합선’이라고 부른다. 태어난 직후에는 봉합선에 뼈가 없어 만지면 말랑말랑하지만, 자라면서 골조직이 생산되고 봉합선이 닫히게 된다. 송우철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해부학교실 교수는 “두개부의 뼈는 뇌가 성장하면서 같이 자란다”며 “뇌 크기가 진화하면서 두개부 뼈의 크기도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1300~1500cm3인 인간의 뇌는 진화를 거쳐 점차 부피가 증가했다. 최초의 인류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크기는 약 435cm3였다. 이때부터 뇌는 10만 년마다 4.6%씩 가파르게 부피를 키웠고 이런 시기가 100만 년 동안 이어졌다. 이어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을 때는 10만 년마다 7.6%에 이르는 엄청난 비율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당히 큰 뇌를 보유하게 됐다. 인간과 비슷한 몸집의 태반 포유류(새끼를 태반에서 기른 뒤 낳아 젖을 먹이는 동물)에 비해 현생 인류의 뇌가 6배가량 크다.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의 뇌가 커지는 데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해 ‘네이처’ 5월 23일자에 발표했다.

doi:10.1038/s41586-018-0127-x 


연구팀은 신진대사에 주목해 인간의 몸을 크게 뇌와 생식 조직, 그리고 이를 제외한 신체 조직으로 나눈 뒤, 이들 조직에 각각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을 계산하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분석 결과 뇌가 커진 이유는 먹이 찾기 등 생태학적인 이유가 60%로 압도적이었고, 타인과 협력 관계에 의한 요인이 30%, 나머지 10%는 다른 인간 그룹과 경쟁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간의 경쟁은 뇌 크기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연구를 주도한 마우리시오 곤잘레스-포레로 세인트앤드루스대 생물학과 연구원은 “인류의 뇌 크기는 사회적 요인보다는 생태학적 요인에 의해 진화했다”며 “이와 함께 언어, 교육 등 문화적인 이유가 인간의 뇌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존 호크 미국 위스콘신대 인류학과 교수는 2011년 과학잡지 ‘디스커버’에서 뇌가 최근 2만 년 사이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석기시대 뇌의 부피가 평균 1500cm3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평균 1350cm3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기어리 미국 미주리대 심리과학부 교수는 그 이유가 사회 경쟁의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휴먼 네이처’ 2009년 3월호에 발표했다.

doi:10.1007/s12110-008-9054-0

 

사냥 기술, 채집 지식, 주변 환경과 근처 지리, 도구를 만들고 터전을 잡는 방법 등 석기시대에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가 후손에게 전해줘야 했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됐고 자연스럽게 뇌가 줄었다는 것이다. 


기어리 교수는 “과거 한 사람이 만능이어야 했던 것과 달리, 농업과 근대 도시가 등장하면서 과학과 예술 등의 분야에 전문가들이 생겨났다”며 “개인은 특정 분야에 더 전문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음식 탓, 안면부는 작아져 


두개부는 진화 과정에서 점점 커졌지만, 안면부는 정반대로 줄어들었다. 여기에도 여러 가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음식의 변화다. 다니엘 리버만 미국 하버드대 인류진화생물학과 교수는 음식의 종류와 요리법에 의해 씹는 횟수가 줄었고, 그로 인해 턱의 근육과 치아 크기가 줄었을 거라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2016년 3월 9일자에 발표했다.

doi:10.1038/nature16990


리버만 교수는 어떤 종류의 요리법이 씹는 시간을 줄이는지 실험했다. 먼저 고기를 ‘날 것’ ‘간단히 저미거나 두들긴 것’ ‘익힌 것’ 등 세 종류로 준비했다. 고기는 수백만 년 전 형태에서 거의 진화하지 않은 염소를 사용했다. 이어서 실험참가자 10명의 얼굴에 전극을 부착하고 세 종류의 음식을 먹는 데 필요한 시간과 씹는 힘을 측정했다.


그 결과 생고기보다 간단히 저미거나 두들긴 고기를 씹을 때 씹는 횟수가 17% 이상 줄어들었다. 이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250만 번은 덜 씹는 셈이 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씹는 횟수가 줄어든 것만으로 인류의 조상은 이와 턱의 크기를 줄여 뇌가 자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면부는 지금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1979~2015년 총 7차례에 걸쳐 한국인의 인체 치수를 조사했다. 키와 몸무게뿐만 아니라, 머리 수직 길이, 엉덩이 너비 등 총 133개 항목(2015년 기준)을 측정했다.


1979년과 2015년의 측정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키와 몸무게가 늘고 팔다리는 길어진 데 반해 얼굴 크기는 줄어들었다는 점이다(위 그림). 키의 경우 2015년 20대 남성은 1979년에 비해 약 6cm 증가해 173.9cm로 나타났고, 20대 여성의 경우 5cm 증가해 160.8cm로 나타났다. 반면 전체 머리 수직 길이는 남성이 24.6cm에서 24.2cm로, 여성이 23.3cm에서 22.5cm로 줄어들었다. 


송 교수는 “키나 몸무게, 팔다리 길이는 영양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안면부는 영양 상태의 영향은 덜 받는 대신 음식의 상태가 부드러워지면서 턱의 크기가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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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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