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못하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면 여러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고 해도, 실제로 그 사람을 돕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능력이 남을 돕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거나, 심지어 오히려 남을 돕는 행동을 방해한다는 결과도 있다. 즉 공감하는 능력이 항상 남을 배려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감과 측은지심은 달라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이 공감하고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제3자를 해하거나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폴 블룸교수는 ‘공감이나 이타심 같은 감정이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들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단정 지었다(The Boston Review, 2014 September/October). 그는 “공감하는 대상이 주변 사람들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다른 수천 명이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한 사람에게 강하게 감정 이입한 나머지 불쌍하다는 이유로 지지하고, 반대 측에는 분노와 공격성을 보이는 것도 한 예다.
공감 능력에만 의존하면 눈앞에 보이는 문제와 당장의 감정에만 마음을 빼앗겨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피도 눈물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테러리스트가 있다.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목숨을 걸고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자기 가족과 동료, 민족 등에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이입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또 도움을 주려면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공감을 하되, 공감에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9월 정신의학 학술지 ‘이모션’에는 공감과 측은지심을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DOI: 10.1037/emo0000228). 연구를 이끈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매튜 조던 박사와 폴 블룸 교수팀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타인을 위하는 일이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능력은 감정이나 행동의 전염,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위협을 느끼는 것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공감과 측은지심이 각각 실제 도움을 주는 행동과 어떤 상관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쪽에는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다른 쪽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지 통계 자료를 보여줬다. 그리고 참가자들 모두에게 돈을 준 다음, 갖거나 기부하도록 했다. 또 공감과 측은지심과 관련된 설문을 통해 도덕적 책임감을 얼마나 느꼈는지, 메시지에 마음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등을 물었다.
그 결과 두 그룹에서 모두 측은지심을 느낀 사람만이 사진을 보든, 통계자료를 보든 기부를 더 많이 했다. 하지만 평소 사람들의 감정에 이입을 잘 하고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공감) 사람들은 그 정도가 심할수록 오히려 기부를 덜 하는 경향을 보였다.
세상 바꾸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의지나 결심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의지나 결심의 문제다. 매번 누군가의 아픔이 내 일처럼 느껴져서, 또는 심한 죄책감이 들어서 도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남을 돕기 시작한다면 내 감정의 소모가 커져서 지속적으로 돕기 어려워진다. 또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해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오히려 이런 일을 아예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남을 지속적으로 배려하고 돕는 일은 감정과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으로부터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을 할 때 생기는 한계를 인식하고, 나의 감정 상태와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든 지켜야 하는 행동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준다거나, 친한 사람의 간절한 부탁이라도 정의에 어긋난다면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친한 사람 사이에 서 의리를 지키는 일이 정의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회관계에서 맹목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원리 원칙이 필요하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11/S201612N056_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