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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그날 서해대교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소방관의 과학 연구로 밝히다



2015년 12월 3일 오후 6시 50분, 박승래 충남 당진소방서 현장지휘팀장은 경기 평택소방서의 연락을 받고 서해대교로 출동했다. 최초 화재 신고가 평택소방서로 접수된 지 40여 분 만이었다. 합동작전이 필요할 만큼 큰 화재였다. 6시 58분, 서해대교의 상판과 주탑을 연결하는 가장 큰 케이블이 화마에 끝내 끊어지면서 상판 위로 추락했다. 박 팀장이 평택소방서 고(故)이병곤 소방경의 순직 소식을 들은 건, 출동하는 차안 무전을 통해서였다.

박 팀장은 이 날의 세부사항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되뇌었을지 짐작이 갔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추가로 케이블 두 개가 거의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케이블 한 개당 500t쯤 버티니까, 두 개가 마저 끊어지면 1500t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었죠. 상판이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연재해 재현 막막했어요”

상판 위 80m 지점에서 불이 난 데다 바람이 초속 17m 정도로 거세 진압에도 애를 먹었다. 결국 최초 신고가 접수되고 3시간이 훌쩍 지난 9시 40분께 진압됐다. 후폭풍은 거셌다. 소방경이 순직한 데다, 불의 원인을 두고 논란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낙뢰가 가장 먼저 꼽혔지만, 그 날 기상청에 기록된 낙뢰는 없었다. “순직한 소방경과 아는 사이였습니다. 화재원인을 꼭 밝혀내겠다고 다짐했죠.”

박 팀장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꾸려진 연구팀은 서해대교 화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제기된 가설들을 일일이 실험하기로 했다. 당시까지 제기된 가설은 두 가지. 케이블끼리 마찰하면서 바깥쪽 피복에 불이 붙었다는 가설과, 계절이 변할 때 케이블이 변형되며 방출된 열이 축적돼 케이블 내부의 강선과 피복 사이 충진제에 불이 붙었다는 가설이었다.

먼저 첫 번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피복 겉에 불을 붙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연소 흔적과 모양새가 달랐다. 현장 잔해처럼 피복이 바깥 방향으로 말리거나, 직접 타지 않은 부분이 수축하는 등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충진제를 꺼내 열을 가했다. 화재를 일으킬 만큼 불이 지속적으로 붙지 않았다. 남은 가설은 낙뢰뿐이었다. “기상청에서 현재 운용 중인 낙뢰 감지기는 전류가 4000A 이상인 낙뢰를 95%까지 감지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전류가 2000A 미만인 작은 낙뢰는 전혀 감지를 못 한다는 거죠. 여기에 주목했어요.”

연구팀은 전북 완주에 있는 전기안전연구원을 찾아 절연 파괴 테스트를 했다. 10만~20만V의 뇌(번개) 전압이면 케이블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다음은 2000A 전류를 흘려 불이 붙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2000A를 흘릴 방법이 없었어요. 100A짜리 자동차 배터리 20개를 구해서 직렬로 연결했더니, 전선을 연결하자마자 배터리의 납 덩어리가 녹기 시작하더군요. 장마철에 케이블을 들고 번개라도 찾아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북 완주에 위치한 전기안전연구원에 대전류공급장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케이블을 싸 들고 다시 완주로 내려갔다. 2000A를 흘리는 순간, 케이블의 군데군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곧 불연속적으로 불이 붙었다. 화재 당일 끊어진 케이블도 이렇게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불연속적으로 불에 타 있었다. “뇌 전압으로 케이블에 균열이 먼저 난 뒤, 약한 전류가 내부로 침투했을 겁니다. 케이블의 가장 약한 부분들에서 먼저 불이 났을 거예요.”

끊어진 부분의 단면도 현장에서 관찰한 것과 같았다. 강선이 뇌 전류에 의해 강도가 순간적으로 감소하면서 ‘컵앤콘’ 형태(cup and cone, 연성파괴의 전형적 끊어짐 형태로, 한쪽은 컵처럼 오목한 모양이며 다른 한쪽은 콘처럼 볼록한 모양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로 끊어진 것이다. 그 날 끊어진 케이블은 강선 91개로 이뤄진 가장 굵은 케이블이었는데, 그 중 3개의 강선이 컵앤콘 형태로 끊어져 있었다.

연구팀은 서해대교 케이블의 화재 원인을 2000A 미만의 측격뢰라고 결론 내렸다. 이 연구 결과는 올해 4월 3일 충남도 소방서들을 대상으로 한 화재조사 연구논문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서해대교 72번 케이블 화재 발화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11월 17일 강원도 속초에서 열린 제7회 전국 화재조사 심포지엄에 충남지역 대표 논문으로 출품됐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국 소방 화재조사관들의 자존심 대결

기자가 처음 전국대회 소식을 접하고 취재를 위해 각 시도 소방안전본부에 전화를 걸었을 때, 견제가 대단했다.

“본 대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알려고 하시는 거죠?” 

“대회 전에 연구결과를 미리 공개하는건 좀…. 죄송합니다.”

“인터뷰는 할 수 있지만, 논문은 대회 전에 드리기 어렵습니다.”

올해 7회째를 맞는 전국 화재조사 심포지엄은 이만큼 전국 화재조사관들 사이에서는 권위가 큰 대회다. 2007년 당시 소방방재청에서 화재조사관들의 전문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처음 제안됐고, 2010년에 1회 대회가 열렸다. 이정섭 부산소방안전본부 현장 대응과 조사관은 “해가 갈수록 대회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도별로 목숨을 걸고 나옵니다. 올해는 어떤 연구를 할 거냐고 다른 지역 화재조사관들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요(웃음). 우리 화재조사관들도 이만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열망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방의 화재조사관이 되려면 현장에서  화재진압, 구조, 구급 등의 업무를 하다가 중앙소방학교에서 12주간 화재조사에 대한 이론과 실습교육을 이수하고 국민안전처가 주관하는 ‘화재조사관 자격취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화재 현장에서 조사한 내용을 화재조사관의 경험과 이론을 토대로 분석해 화재 원인을 추정하는데, 운이 좋아 내용이 일치하면 금방 규명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화재는 복잡하고 다양해 원인규명이 쉽지 않다. 화재조사관들이 끊임없이 화재현장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이유다.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해 한국의 화재조사 수준을 높이려는 게 이 대회의 목표다.

매년 11월, 전국 19개 시도에서 화재조사연구 논문을 한 편씩 출품한다. 한 곳에 모여 발표를 한 뒤, 논문 60점, 발표 40점 총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등수를 가린다. 이 조사관은 “상금이나 특진 같은 보상은 없지만, 한국 화재조사의 전문성을 기르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다들 열심”이라고 말했다.

연구 주제는 최근 2년간 해당 소방서가 담당했던 화재 중 자유롭게 고른다. 당진소방서처럼 가장 크고 특이하고 논란이 많았던 화재를 고르는 소방서가 있는가 하면, 사례가 많은데도 국민들이 위험성을 잘 모르는 주제를 고르는 소방서도 있다. 올해 부산시가 연구한 주제가 그 예다. 부산시는 부산 소방안전본부가 매해 다른 소방서와 함께 팀을 이뤄 전국 대회에 나간다. 올해는 사하 소방서와 함께 LPG 차량의 역화 현상을 연구했다.

LGP차량이 자주 불타는 이유

화재조사 경력만 15년인 베테랑 화재조사관 최우석 부산소방안전본부 현장대응과 화재조사주임은 평소 LPG 차량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품어왔다. “LPG차가 오르막 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화재로 이어진 경우도 많이 봤고요. LPG차의 특성상 언덕에서 역화 현상으로 불이 쉽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역화란 연소실 불꽃이 공기 흡입관으로 역류해 불이 나는 현상이다. 작년 한해 동안 부산에서 일어난 LPG차량 화재 84건 중 약 10%에 해당하는 8건이 역화에 의한 화재였다.

연구에 참여한 류도정 한국폴리텍대 부산캠퍼스 자동차과 교수는 “역화는 가스연료를 쓰는 차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엔진의 4행정은 연료의 흡입, 압축, 폭발, 배기가 순서대로 일어난다. 배기에서 흡입 단계로 넘어갈 때 일시적으로 흡기와 배기 밸브가 동시에 열리는데, 이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소실 불꽃이 흡기 밸브로 들어온 혼합가스(공기+연료)와 만나 불이 붙는것이다. 가솔린이나 디젤 같은 액체 연료는 압축되기 전엔 불이 쉽게 붙지 않지만, LPG는 가스 상태라서 불이 쉽게 붙는다. 특히 오르막길에서 사용자가 가속페달을 세게 밟으면 연료와 공기가 한꺼번에 많이 들어가고 엔진의 회전 속도(RPM)는 느려지는데, 이 때 역화가 일어나기 쉽다.

연구팀은 역화를 실제로 재현하면서 엔진 내·외부를 촬영했다. 그 결과, 연료와 공기가 섞이는 장소인 서지탱크에서 그을음이 나타났다. 서지탱크 내부에서 역화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특히 흡기 호스가 내부에서 바깥쪽으로 ‘펑’ 소리를 내며 파열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최 주임은 “자동차 앞 부분에서 화재가 나면 일반적으로 엔진에서 운전석 쪽으로 화재패턴이 생기는 데다, 배터리까지 완전히 소실되면 화재 원인이 역화인지 배터리 폭발인지 밝히기 어렵다”며 “이번 연구로 LPG 역화에 의한 화재를 판단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흡기 호스가 합성고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역화가 일어나면 금방 찢어진다”며 “금속 재질의 유연한 관으로 바꿀 것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최근 출시되는 LPG차에는 역화를 막기 위한 최신 기술이 탑재돼 있다. 예컨대, LPI 차량은 LPG연료를 상대적으로 불이 붙기 어려운 액체 상태로 공급해 화재위험을 줄였다. 흡기 밸브와 배기 밸브가 동시에 열리지 않도록 막는 장비도 있다. 문제는, 과거에 생산된 LPG차량이다. 최 주임은 “오르막길에서 역화로 화재가 나 시동이 꺼지면 2차 사고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예방 대안을 빨리 마련하고 국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화재감식 매뉴얼 만든다

인천에서는 이영민 인천 부평소방서 현장대응단 조사관이 대표로 나와 우수상(3등)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형 화재흔적 사례를 연구했다. “발화지점을 추정할 때는 외국의 매뉴얼에 따라 화재패턴의 방향이나 그을음 정도 등 많은 흔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 한국 주택에 흔히 쓰이는 종이벽지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은 매뉴얼에 없습니다. 매뉴얼을 만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보통 목조와 석고보드, 그리고 페인트를 쓰기 때문이죠.”

연구팀은 컨테이너로 거실을 만들어 태우는 실험을 했다. 각 지점별 온도변화를 측정했고, 종이벽지를 수거해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종이벽지는 250℃에서 발화하는데, 발화지점에서 가장 먼 지점도 256℃까지 상승했다. 발화지점이 아닌데도 종이벽지가 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 발화지점의 종이벽지에서 탄소가 가장 많이 검출됐고 발화지점에서 멀수록 탄소가 적었다. 이 조사관은 “사실 당연한 결과지만, 정량화된 데이터를 쌓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을 두고 시비가 붙었을 때 법원에 근거자료를 저희가 제출합니다. 그런데 화재 원인이 미상인 경우도 많아요. 저희의 임무는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야 국민이 억울한 일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한편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취급에 따른 화재 위험성에 관한 연구(경기)’가 우수상(2등)을 수상했고, ‘활성탄 흡착설비에 관한 실험적 연구(울산)’, ‘시동커패시터에 대한 실험적 분석(전북)’, ‘영상기록 장치를 활용한 발화지점 판정에 관한 연구(강원)’가 장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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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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