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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 미생물 동물원

건조한 사막에서 축축한 습지까지


지성피부에는 여드름이나 뾰루지 같은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쉽다. 기름이 많은 지성피부에 미생물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1일, 미생물 나포도 씨가 사는 마을이 습격을 받았다. 기괴하게 생긴 여드름균이 침입했는데 마을 바닥 곳곳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나 씨는 피난길에 올랐지만 어디로 떠날지 막막했다. 그는 동네 밖으로 나가면 사막, 오아시스, 열대우림, 열대습지, 시큼한 호수, 발효창고 같이 여러 종류의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났다.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야 한다.

나포도 씨는 신문기사 마침표 위에 친구 500마리와 설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이렇게 작은 미생물은 공기와 맞닿는 피부 뿐 아니라 입 속, 위, 장의 내벽 같은 곳에서도 산다. 미세한 생명체가 당신의 피부를 가득 덮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 씨의 피난 또한 당신의 피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 뉴욕대 미생물학과 마틴 블래저 박사팀은 인간의 팔목 피부에 최소 182종류의 미생물이 산다는 사실을 밝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2007년 2월 5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팔목 피부 1cm2를 떼어내 그곳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리보솜 DNA(rDNA)를 모조리 분석해 이름을 달았다. 블래저 박사는 “사람의 피부는 미생물이 사는 동물원과 같다”며 “피부 부위에 따라 살고 있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고, 같은 부위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미생물의 종류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미생물학과 이종호 교수는 “이제까지 인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1% 정도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미생물이 몇 개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제 우리 몸 곳곳에서 인간과 동고동락하며 사는 미생물의 세계로 떠나 보자.

피부는 사막, 모공은 오아시스

나 씨의 주위에는 키 작은 풀과 가지가 앙상한 나무뿐이다. 미생물 몇 마리가 뭉쳐서 사는 곳도 있지만 안전하게 피신할 만한 큰 마을을 찾지 못한 그는 걱정이 앞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황량한 사막을 걷던 나 씨는 목을 축이려고 오아시스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오아시스 안에 미생물 친구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런데 오아시스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미생물이 산다는데….

나 씨는 지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모래언덕이 끊임없이 펼쳐진 사막처럼 인간의 피부 표피도 수분과 기름성분 없이 건조한 큐티클과 각질로 덮여 있다. 미생물은 이분법으로 번식하기 위해 수분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건조한 피부는 미생물이 살기에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다.

피부에는 흔히 포도송이 모양으로 뭉쳐서 사는 동그란 미생물인 ‘포도상구균’이나 여드름균인 ‘프로피오니 박테리움’이 있다. 이들은 피부 각질이나 큐티클을 먹는다.

미생물이 피부 표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부 밑으로 1mm만 들어가도 전혀 다른 종류의 미생물이 산다. 피부에는 주로 산소를 먹고 사는 호기성 미생물이 사는 반면, 표피의 1mm 밑에는 산소가 없어도 살 수 있는 혐기성 미생물이 서식한다. 표면에 사는 미생물이 산소를 다 먹어버려 산소가 피부 속 1mm의 얕은 곳에도 들어갈 수 없다.

사막에는 간간이 모공이라는 오아시스가 있다. 오아시스에는 피부 속 진피의 피지샘과 땀샘으로부터 분비된 피지와 땀이 고인다. 보통 피부는 건조하지만 오아시스 주변의 피부는 촉촉한 편이다. 특히 발가락은 땀구멍이 많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 항상 땀이 고여있는 축축한 부위다. 이곳에 ‘더마토파이트’라는 곰팡이가 기생하면 무좀병이 생긴다.

피부 내부에서 젖당이 흘러나오는 여성의 유방도 미생물이 살기 좋은 장소 가운데 하나다. 여성의 유방에는 젖당을 분해하는 젖산균과 효모균이 모여 산다. 특히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산모의 유두에 미생물이 많다. 이들은 젖당을 분해해 자신의 몸 내부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모유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영아뿐 아니라 산모의 유방에 사는 미생물까지 입맛을 다실만한 먹이다. 이 교수는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는 장이 튼튼하다”며 “아기가 엄마의 모유를 먹을 때 유두에 살던 젖산균과 효모균도 함께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겨드랑이는 열대우림, 입 속은 열대습지


겨드랑이는 열대우림, 입 속은 열대습지

 

끊임없이 걷다보니 사막이 끝나고 열대우림이 시작됐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미생물이 많다. 마을도 꽤 크다. 먹이도 풍족한 듯한데, 단점이 한 가지 있다. 냄새가 너무 고약하다. 코를 막고 열대우림에서 뛰쳐나온 나씨의 눈에 열대습지가 포착됐다. 그런데 열대습지에 살려면 산소호흡기를 항상 써야 하는 것이 문제다.

겨드랑이는 열대우림에 비유할 수 있다. 모공과 땀구멍이 많아 땀과 피지, 기름성분이 풍부하다. 또 옆구리에 팔을 항상 붙이고 있으니 외부로 몸의 열기를 뺏기지 않는다. 털도 많아 미생물이 몸을 숨기기도 쉽다. 겨드랑이에 사는 미생물은 아포크린샘 같은 땀샘에서 흘러나오는 수분과 피지를 온몸으로 흡수한 뒤 지방산과 암모니아 같은 냄새나는 물질로 내보낸다.

이렇듯 고약한 겨드랑이 냄새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콘라드 로렌츠 동물행동학 연구소의 더스틴 팬 박사팀은 사람마다 겨드랑이 냄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영국 왕립학회 회보’ 2006년 11월 29일자에 발표했다.

팬 박사는 “겨드랑이에서 채취한 땀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사람마다 땀의 구성성분이 달랐다”며 “사람마다 겨드랑이 땀샘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미생물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도 영향을 미친다.

겨드랑이처럼 축축한 장소가 또 있다. 사람의 입 속이다. 입 속에는 끈적끈적한 침이 흥건하고 음식물이 둥둥 떠다닌다. 입을 다물면 외부로 열을 뺏기지 않아 입 안의 온도는 36℃로 유지된다. 미생물에게 입 속은 열대습지와 같은데, 사막 같은 피부 표피보다 미생물이 살기 좋은 조건이다. 잇몸병을 일으키는 ‘포르피로모나스’나 젖산을 만드는 ‘락토바실러스’를 대표로 약 400종류의 미생물이 입 속에서 살고 있다.

입 속에 사는 미생물은 산소가 없을 때 입 속에 있는 영양물질을 발효시켜 치아를 녹인다. 이것이 충치다. 2003년 충치를 예방하는 미생물이 개발됐다. 독일계 제약회사인 바스프는 입 속에 살면서 산성 물질을 내놓는 미생물의 DNA를 중성 물질을 내놓는 DNA로 바꿔치기 했다.

제품을 개발한 독일 바스프는 “새로 만들어진 미생물이 입 속에 가득하면 다른 미생물도 살 곳을 찾지 못해 충치를 영원히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식을 먹은 뒤 양치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미 입 속에 미생물 생태계가 꾸려져 있기 때문에 새로 개발된 미생물의 활약이 어떨지는 미지수다.


축축한 입 속에 사는 미생물 때문에 충치가 생기거나 입냄새가 난다. 침 1ml에는 약 100마리의 미생물이 있다. 키스를 할 때 상대의 입 속 미생물과 자신의 미생물이 섞일 수 있다.


위는 시큼한 호수, 장은 발효창고


위는 시큼한 호수, 장은 발효창고


나 씨는 시큼한 호수에 도착했다. 우연히 만난 더시큼 씨로부터 은으로 만들어진 방어복을 받았다. 그는 시큼한 물에 들어가면 몸이 굳어지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주의를 줬다. 은으로 만든 방어복은 산에 제일 강하다고 하니 믿어볼 수밖에. 시큼한 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니 발효창고가 나왔다. 도처에 먹잇감이 널려있다. 그런데 발효가 일어나는 곳이라 심한 악취가 난다. 나 씨는 어서 이곳을 탈출하고 싶어졌다.

위는 pH2인 위액이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드는 시큼한 호수다. 1870년대까지 위는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미생물이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호주 로얄멜버른 병원 로빈 워렌 박사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배리 마샬 박사가 통념을 깼다. 워렌 박사와 마샬 박사는 1979년 위 속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라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이 공로로 1995년 노벨 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헬리코박터는 위벽의 점액질에 숨어 살면서 자신의 몸이 시큼한 위액에 의해 손상되는 것을 막는다. 또 몸 바깥으로 염기성인 암모니아를 수시로 내뿜어 위액을 중화시킨다. 흔히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가 제일 영악하다고 하지만 미생물계에서는 꼬리가 5개 달린 헬리코박터가 제일 영악하지 않을까.

위와 붙어있는 소장과 대장은 산소가 거의 없고 잘게 부셔진 음식물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발효창고다. 소장에서 음식물이 흡수될 때도 미생물이 관여한다. 대장균은 섬모 같은 발이 많아서 대장의 표면에 잘 붙는다.

미국 워싱턴대 미생물학과 제프리 고돈 박사팀은 대장에 사는 미생물이 장 내벽에 모세혈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2002년 11월 4일자에 발표했다. 대장균은 영양물질을 발효시키거나 분해해 창고에 저장하도록 돕는다. 모세혈관이 많아질수록 장 내벽으로 영양분의 흡수가 잘 일어난다.

그는 또 2006년 12월 21일 장에 사는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장 내벽 모세혈관으로 영양분이 흡수되는 비율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장 속 미생물이 비만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돈 박사에 따르면 발효창고인 인간의 장에는 최소한 500종 이상(1015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비만인 사람의 장 속에는 ‘페르미쿠테스’란 종류의 미생물이 많다. 이 미생물은 장 내 모세혈관으로 음식물의 영양소가 더욱 많이 흡수되도록 한다.


이웃동네를 모두 돌아다녔지만 나 씨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여드름균이 물러가고, 붉게 솟아올랐던 바닥도 가라앉았다. 마을을 지키던 다른 사람들이 승리한 모양이다. 피난을 갔던 자신이 약간 부끄러웠지만 집을 다시 찾게 돼 기쁘다. 약간 건조한 환경에 산소도 풍부하고 악취도 없는 지대. 이곳이야말로 나 씨가 살만한 곳이다. 나 씨는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인간의 세포는 약 60조개다. 그런데 인간의 피부에는 100~10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마릿수로만 따지면 인간의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인간의 세포수보다 10배 이상 많다. 인간 몸의 상당부분이 미생물의 자리라는 뜻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천종식 교수는 “인간은 수많은 미생물과 자신의 몸을 함께 사용한다”고 말했다. 즉 인간과 미생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는 뜻이다.

그는 또 “미생물은 인간의 몸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꾸리고 살다가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며 “미생물이 인간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유익한 미생물(정상균총)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유해한 미생물의 침입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미생물학과 김응빈 교수는 “정상균총은 인간의 소중한 애완동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인간과 미생물은 가깝다는 뜻이다.


비만인 사람의 장 속에는 ‘페르미쿠테스’란 종류의 미생물이 많다. 이 미생물은 장 내 모세혈관으로 음식물의 영양소가 더욱 많이 흡수되도록 한다.
 

200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 진행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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