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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과학은 네트워크다

과학동아가 선정하는 이달의 책



지구가 지금의 지구인 데는 이유가 있다. 수많은 천체와 힘겨루기를 한 결과다. 액체 물로 된 바다, 생명력을 주는 바람과 비, 발 딛고 설 단단한 토양 등 지구가 원래 가진 속성이라기보다 우주라는 네트워크가 만든 우연한 결과다. 만약 우주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 이후 지구는 거무튀튀한 암석이나 시뻘건 불덩어리일지도 모른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의 저자가 주장하는 과학기술은 마치 우주에 속한 지구 같다. 정통파 과학사회학자로 불리는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10년간 고민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풀어냈다. 그는 과학기술을 네트워크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은 이전 시대에 발표된 논문, 당시에 개발된 기계, 사회적 요구, 그 시대의 문화, 일관적인 측정을 가능케 하는 표준,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구 등 다양한 비(非)인간적 요소와 상호작용하면서 변한다. 객관성과 보편성은 극히 일부 과학이 얻은 결과다.

돌이켜보면,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객관적인 과학’이 해결책을 준 사례는 많지 않다. 과학자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과학의 본질이 진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GMO처럼 세상에 처음 등장한 기술에,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과학이 사회적 요구와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라는 예는 수없이 많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기술자였던 헤론은 증기로 물체를 움직이는 기계를 발명했다. 혹자는 그가 더 운이 좋았다면 증기기관을 발명해 산업혁명을 이끌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중요한 네트워크가 하나 빠져 있었다. 증기기관에 필요한 정밀한 실린더를 만들 공작기계가 없었다. 훗날 제임스 와트는 존 윌킨슨이라는 엔지니어가 발명한 보링머신 덕을 봤다. 영국의 제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능해진 기술이었다.

과학을 거대한 네트워크로 치환하면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다. 아니, 많은 것이 이상해 보인다. 과학기술은 왜 일자리를 창출할 도구로 소비될까, 어떻게 5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라고 할까, 교육과정은 어째서 문․이과로 나눠져 있을까, 과학자들은 왜 살상기술을 막지 않을까.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실현할지 궁금했다면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최근 국내에서 젠더가 평등한 작품을 발굴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러 소설과 웹툰, 영화가 목록에 올랐다. 이들 작품에서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만나면 내밀한 기쁨에 미소가 번진다. 미국 SF소설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이 1982년에 발표한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다. 초기 남극탐험대의 보고서 형식을 띤 소설인데, 성 고정관념을 뒤엎는 이야기로 화제가 됐다. 이 작품은 최근, 유명 SF소설 편집인 부부인 앤 밴더미어와 제프 밴더미어가 구성한 페미니즘 SF선집 ‘혁명하는 여자들’에 실렸다. 책에는 일본계 캐나다인 히로미 고토, 인도인 SF작가이자 과학자인 반다나 싱 등 전세계 다양한 작가들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쓴 작품 15점이 담겼다. 그간 저평가됐던 SF소설을 한꺼번에 만나볼 기회다.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어느 구절에 어떤 반전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두의 발견하는 기쁨을 위해 아껴둔다.




지난달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의 발간 소식을 듣고 괜한 친근감을 느꼈다. e메일로나마 생각과 경험을 주고받았던 과학자의 신간이기 때문이다(은근 자랑). 그는 현대물리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과학사를 다룬 책이지만, 거장의 해석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여느 책들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와인버그 교수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실제로 그는 현대 과학자인 자신의 관점에서 위대한 학자들을 서슴없이 비판하고, 왜 그들의 이론이 틀렸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물리학을 전공한 기자에게 와인버그 교수와의 인터뷰는 여중생들이 마치 ‘방탄소년단’을 실제로 만난 것에 비견할 만큼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현대물리학의 가장 정교한 눈’으로 과거를 살펴보는 지적 희열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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