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1인 가구의 수는 전체 가구의 25%를 훌쩍 넘는 520만 명이다.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1인 가구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외로움’이다. 올해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혼자 사는 사람이 가족과 사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과 자살위험률이 높다고 밝혔다.
극심한 외로움은 면역력 떨어뜨려
외로움은 기쁨과 슬픔, 화남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인감정이다.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잘 통한다고 느꼈던 친구들이 내 말에 공감하지 못할 때, 몇 시간 동안 혼자 방 안에 있을 때처럼 말이다. 보통은 외롭다고 느꼈다가도 곧바로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니며, 이런 감정이 일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극심하게, 또 지나치게 자주 겪으면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수 있다. 오랫동안 외로움에 대해 연구해온 미국 시카고대 사회인지 및 뇌과학 센터장 존 카치오포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극심한 외로움을 지속적으로 느끼면 병에 걸릴 위험이 14%나 높아지며, 면역계와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면 몸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부신수질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을 내보내는 방어 기작을 작동시킨다. 이 호르몬은 골수에 있는 혈액세포를 자극한다. 혈액세포는 골수에서 태어나 성숙기를 거친 다음, 혈관을 타고 온몸을 다니면서 병원균을 없앤다. 그런데 노르에피네프린이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미처 성숙하지 못한 백혈구가 혈관으로 나온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만나도 방어하지 못한다.
카치오포 교수는 “특히 바이러스는 자기 유전물질을 숙주인 인간의 유전물질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퍼뜨린다”면서 “극심한 외로움 때문에 바이러스를 단시간에 없애지 못하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유전적 요인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외로움을 잘 느낄까. 카치오포 교수팀은 외로움을 잘 느끼는 그룹과 잘 느끼지 않는 그룹의 뇌 활성도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두 그룹 모두 아름다운 꽃을 봤을 때 변연계 중 복측선조체가 활성화됐다. 복측선조체는 기쁨이나 즐거움, 성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부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입을 활짝 벌리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봤을 때는 결과가 달랐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그룹만 이 부위가 활성화됐다.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진 사진을 보여줬을 때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그룹만 측두정엽이 활성화됐다. 이 부위는 다른 사람과 나의 입장을 바꿔 생각할 때 활성화된다. 연구팀은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공감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남이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그런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훨씬 더 신경을 쓴다고도 설명했다. 다른 이의 행복과 불행에 공감하지 않고 내 안전만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외로운 셈이다.
비슷한 감정이 자주 지속적으로 들면 신경회로와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나에게 닥친 현실이 정말 나에게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한다. 이에 따라 행동이나 습관이 달라지고,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팀은 태어날 때부터 무리 속에 살던 쥐와, 혼자서 살았던 쥐의 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혼자서 살던 쥐는 등쪽솔기핵이라는 부분이 활성화돼 있었다.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연구팀은 무리에 있던 쥐 한 마리를 따로 고립시켰다가 다시 무리에 넣었다. 그랬더니 등쪽솔기핵이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고립된 경험이 있는 쥐는 혼자라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등쪽솔기핵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무리에서 살아가는 쥐 가운데 리더 역할을 하는 쥐도 이 부위가 특별하게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경쟁자를 쳐내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 외로움이 따르지만, 이를 극복하고 구성원과 사교적으로 지내면서 리더로서 무리를 이끄는 것이다(doi: 10.1016/j.cell.2015.12.040).
인류를 사회적 동물로 진화시킨 주역
외로움이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카치오포 교수는 2013년 9월, 외로움은 인류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며, 특히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도록 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doi:10.1080/02699931.2013.837379).
초기 인류는 각자 또는 소가족 단위로 사냥을 하거나 먹을 것을 구하고, 위험한 동물이 나타나면 무찔러야 했다. 그만큼 굶거나 다쳐서 죽을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유아기가 훨씬 길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카치오포 교수는 “인류에게 사회적인 유대감이 없었다면 이미 멸종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해 가정을 꾸려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외로움은 배고픔이나 목마름, 통증처럼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벗어나게 만드는 신호”라고 말했다. 배고픔이나 목마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음식과 물을 제때 먹지 못해 굶어 죽거나, 신체가화상을 입거나 날카로운 것에 찔려도 느끼지 못해 크게 다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은 사람에게 사회로 돌아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라고 부추기는 정신적인 통증’이다. 대인관계가 끊겨 혼자가 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함으로써 사회가 뭉치게 하고, 인류가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
외로움은 고도의 지능을 탄생시킨 원동력일 가능성도 있다. 2007년 9월 영국 생명과학과 로빈 던바 교수팀은 유인원이 긴밀한 사회적 관계 덕분에 지능이 발달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다(DOI: 10.1126/science.1145463). 유인원은 친구와 가족을 많이 만들었고, 사회적 관계가 밀접해질수록 주고받는 정보도 늘어났다. 결국 뇌에서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져 대뇌 피질의 표면적이 넓어지고 신경회로의 연결이 많아졌다. 또한 다른 이가 말하는 속뜻을 헤아리거나 상황을 파악하는 것처럼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도 지능을 발달시키는 데 한몫했다. 이 모든 활동의 근원에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외로움 이기려면 SNS 밖에서 만나라
요즘은 SNS와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SNS에서 친구가 많거나,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덜 느낄까.
미국 미주리대 러셀 클레이튼 교수팀은 일상에서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과 덜 느끼는 사람이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밝혔다. 외로움을 덜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관계의 연장선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담벼락에 자주 쓰고,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많이 단다. 하지만 자신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몇 명이나 눌렀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이에 비해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글이나 사진을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과 댓글을 열심히 읽었다. 일상에서 대인관계가 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연구팀이 실험을 해 본 결과 SNS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로움은 충족되지 못했다.
미국 오레곤 건강과학대의 앨런 테오 교수는 2004년부터 6년간 사람들마다 어떻게 대인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어느 정도 타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외로움을 이겨내려면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아무리 다른 사람과 SNS로, 전화로, 심지어 화상통화로 이야기해도 근본적인 외로움이 해결되지않았다. 테오 교수팀은 실제로 친구와 가족을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학교나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매일 만나는 기회가 없는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일부러라도 약속을 잡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직접 만나는 방법으로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SNS나 게임처럼 온라인 세상으로부터 얻는 인위적인 쾌락이 시간이 지날수록 역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매일 습관처럼 접속하는 수준을 넘어, 더 큰 자극을 찾아 점점 더 빠져들면서 일상에서는 외로움이 더욱 더 심해질 수 있다. 또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상실감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만성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라도 생산적으로 보낸다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외로움을 이겨낼 방법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카치오포 교수는 건전한 취미 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답했다.
“나는 글을 쓸 때 꽤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음악가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바쁜 일상에 지쳐 있는 현대인은 자기 마음 속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취미를 반드시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