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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트로닉스 시대는 저물고 바이오일렉트로닉스 시대가 오고 있다. 아직은 바이오센서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20년 이내에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바이오컴퓨터가 등장할 전망이다.

현대는 전자공학의 시대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텔레비전 오디오 전화기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들이 있고, 1가구 1컴퓨터 시대라 할 만큼 컴퓨터의 보급이 늘고 있다. 컴퓨터는 가전제품과 통합돼 휴대용 통신과 멀티미디어 정보 통신을 보편화시키고 있다. 자동화 등 기계제품과 각종 공장도 점점 전산화되고 있다. 제어 통신 등 전자공학이 없는 기계는 영혼이 없는 신체와 같이 단순한 고철덩이에 불과하게 된다.

전자공학의 시대는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인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자공학의 주류를 이뤄온 분야 이외에도 새로운 분야가 개척될 것이다. 이미 태동된 기계전자공학(메카트로닉스, mechatronics)은 빛을 이용하는 광학을 참가하여 기계광전자공학(메카옵트로닉스, mechaoptronics)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21세기의 꽃으로 생물전자공학(바이오일렉트로닉스, bioelectronics)을 꼽는다.

생물전자공학이란 생물학으로부터 배운 생명체의 계산구조, 재료, 또는 소자를 이용하는 전자공학의 새로운 분야다. 생물학적 계산구조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컴퓨터(폰 노이만 컴퓨터, von Neumann computer)의 계산구조와 확연히 다르며, 그 기능도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다. 기존의 컴퓨터는 정밀 고속 계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음성인식 및 통역, 인공시각, 적응제어 등 지능정보처리 분야에서는 인간은 물론 파리의 기능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계의 발명에 의해 산업혁명이 이루어졌으나, 인간이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보다 인간다운 기계의 개발이 요구된다. 즉 지금까지의 기계는 인간이 잘못하는 기능을 대신 수행해주는 도구였으나, 미래의 기계는 인간 고유 기능의 일부까지도 위임받게 될 것이다. 21세기 컴퓨터에는 이러한 인공지능 기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생물학적 계산구조를 모방하는 생물전자공학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 것이다. 생물전자공학을 이용하는 바이오컴퓨터는 결국 인간의 기능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1)과 같이 인조오리를 만들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1) 인조오리는 바이오 컴퓨터의 발달된 형태의 하나
 

신경세포와 연결고리

생명체의 신호처리는 거시적 계산 구조면에서도 기존의 컴퓨터와 확연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즉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세포(뉴런, neuron)가 서로 얽혀 병렬 처리에 의해 복잡한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두뇌에는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평균 1천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직접 연결되며, 총 1백조개의 연결고리(synapse)가 있다고 믿어진다(사진1). 계산소자인 신경세포는 각각이 아니고, 이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전체적인 시스템의 특성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신경세포 사이의 상호 작용이 연결고리에 수록되게 된다.

신경세포를 사람으로 비유하면, 두뇌는 사람이 무수히 모인 군중에 해당된다. 이러한 군중을 앞으로 한 발짝씩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이에 따라 개개인이 한발씩 움직이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각 사람이 이웃한 사람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때, 한사람만 앞으로 움직이게 하면, 나머지 모두가 따라 움직이게 된다.

앞의 방법이 기존의 병렬컴퓨터에 사용되는 방법이며, 뒤의 방법이 생물학적 두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웃한 사람과의 관계가 신경세포의 연결고리이며, 이에 따라 전체 시스템의 동작이 결정된다. 인간이 지식을 배우는 것은, 이 연결고리의 값이 새로운 지식을 포용할 수 있도록 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배우는 자율학습 기능은 생물학적 신호처리의 또다른 특징이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예로 들면, 문법이라는 법칙을 배우는 방법과 그냥 많이 들려주고 말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가 기존의 계산 방법이라면, 후자가 생물학적 신호처리다. 이 방법은 예로부터 법칙을 스스로 찾아내게 되어 있다.

생물학적 두뇌작용을 이해하고 모델화하려는 노력은 긴 역사를 가진다. 특히 1980년대에 신경회로망(neural networks) 연구가 부활한 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그림2). 현재 널리 쓰이는 신경회로망 모델은 매우 단순화된 것으로, 음성이나 문자의 패턴 분류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가 성능의 제한을 가져오고 있으며, 보다 많은 생물학적 지식을 반영하고자 하는 범신경회로망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을 모델화하여 인공시각이나 음성인식에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조금 복잡한 생명체가 환경에 반응하고 상호 작용하며, 번식 및 진화해가는 인공생명 (artificial life)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인공생명의 나쁜 예가 될 것이다.


(사진1) 인간의 두뇌에는 무수한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백질과 실리콘의 차이


(그림3)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
 

기존의 컴퓨터나 전자공학이 실리콘(silicon, Si)을 위주로 하는 무기체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반해, 생명체에서는 단백질이 재료로 쓰인다. 단백질은 부패의 위험이 있으나, 에너지 변환효율이 높고 분자단위로 미세 소자 제작이 가능하며, 3차원 구조가 가능한 점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식 기본 소자의 크기는 0.1μ(${10}^{-6}$m)가 한계인데 비해, 생물학적 분자소자의 크기는 0.001—0.01μ에 불과하다. 소자의 크기가 작으면, 단위 면적 당 더 많은 소자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차원 구성이 용이하여, 전자 소자에 비해 1백만배 이상의 분자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많은 계산 소자와 기억 소자는 보다 복잡한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전자식 소자가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기에너지를 이용하는데 비해, 생물학적 소자는 화학적 에너지를 이용하여 훨씬 효율적이다 (집적회로의 에너지 소모, 즉 전력 손실은 집적도를 제한하는 요소의 하나이므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 과제로 되어 있다. 휴대용 컴퓨터는 현재 3시간 정도를 버틸 뿐이고, 8시간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리콘에 기초한 집적회로가 전력소모에 의한 발열과 미세 패턴 실현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을 고려하면, 단백질 등 생물분자 재료의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물론 잘 발달된 실리콘에 비해 공정 기술이 아직 전무한 실정이므로, 상품화를 위해서는 공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모든 계산 소자의 핵심은 증폭기, 즉 곱셈기다. 곱셈은 아날로그(analog) 4칙계산의 중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디지털(digital) 계산의 기초가 되는 논리회로 구현을 위한 핵심 기능이다. 따라서 모든 소자 기술의 발달에 있어서 증폭기는 기초이며 핵심소자가 된다. 각종 전자회로의 기본 부품인 진공관과 트랜지스터가 모두 증폭기능을 가지고 있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림3)은 진공관과 전계효과트랜지스터(FET)의 동작원리를 보인 것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 또는 소스(source, S)와 드레인(drain, D)사이의 전자 전달통로가 그리드(grid, G)나 게이트(gate, G)의 전압에 의해 제어됨으로써 증폭기능이 생긴다. 수도관에 흐르는 물의 양이 수도꼭지에 의해 제어되는 것과 같다.

생명체 내에서는 신경세포막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이온 농도 차이에 의한 전압이 발생하는데, 이 전압차에 의해 신경세포막에 형성되어 있는 나트륨(Na) 칼륨(K) 등 이온의 전달 통로가 제어받는다. 각 이온은 별도의 전달 통로를 가지므로, 전자만에 의한 신호 전달보다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림5)는 나트륨 이온의 전달 통로의 분자구조를 단순화시킨 모델이다.


(그림4) 단순화된 나트륨 전달 통로의 생물학적 분자구조 모델
 

바이오센서 연구 활발

단백질 등 생명분자물질이 무기물질과 비교해 본질적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조 공정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컴퓨터의 구성소자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분자소자를 이용해 현재의 전자식 컴퓨터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최소 20년 이상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현재 생물분자 소자의 연구는 시스템보다는 단위 소자의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생물학적 신경시스템에서의 신호 전달 원리를 이용하는 감지기(biosensor), 디지털변환기, 증폭기,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 등의 연구가 활발하다.

분자감지기는 분자별로 냄새를 감지해내는 뛰어난 식별력과 미세 분자를 감지하는 높은 감도를 가지고 있어 실용화되고 있다. 인체의 의료검진, 생선의 부패도 감지, 음주 측정 등 냄새 감지기의 활용성은 매우 다양하다. 인공 시각이나 촉각 감지기도 연구되고 있다.

바이오컴퓨터는 생물전자공학을 이용한 컴퓨터에 대한 개념적인 이름이다. 아직 재료와 공정 등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인류의 영원한 꿈은 인간의 기능 일부를 위임 받아 수행하는 바이오컴퓨터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터미네이터 등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바이오컴퓨터를 충직한 하인으로 거느리고, 예술 등 보다 창조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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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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