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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오빠논문연구소] 연대 측정의 혁명 가속기 질량 분광분석장치

 

과거 지구에 살았던 생명체나 당시 기후, 지구의 판이 남긴 운동의 흔적을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기록물을 살펴보면 됩니다. 하지만 기록조차 없는 시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고민했던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방사성동위원소였습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보통 우주에서 쏟아지는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생성되며, 일반적으로 지구 전체에 일정한 양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반응해 전체 비율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외부 환경과 차단된 고립된 환경에서는 특정 시료에 존재하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시간에 따라 붕괴하면서 그 양이 일정하게 줄어듭니다.


지구과학적인 사건의 연대를 알고 싶을 때는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상수를 통해서 추정합니다. 붕괴상수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되는 속도를 말하며,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값입니다.


가령 고대 동물의 뼈 화석이 발견됐다고 가정해 볼까요. 지구에 존재하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양과 이 뼈 화석에 남아 있는 동위원소의 양을 비교합니다. 그러면 뼈 화석 속 동위원소가 언제부터 격리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그 동물이 살았던 시기를 유추하는 지표가 됩니다.


물론 지구에 퍼져 있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양과 측정하려는 시료에 존재하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해서 비교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논문이 바로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을 측정하는 데 혁명적인 역할을 한 가속기 기반 질량분석법에 관한 것입니다.

 



Q. 연대는 어떻게 측정하나요?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법의 발전사는 크게 가속기 질량 분광분석장치(AMS·Accelerator Mass Spectrometer) 개발 전과 후로 나뉩니다. AMS가 개발되기 전에는 붕괴측정법(decay detection)이 표준 기술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붕괴측정법은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을 측정하는 기법입니다.


하지만 방사선을 측정할 수 있는 검출기의 민감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동위원소가 붕괴하는 시점에 방사선을 측정하기 때문에, 오래된 시료는 시간당 붕괴하는 횟수가 적어 측정 정확도가 낮았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기 위해서는 구하기 어려운 시료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고인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고 싶다면 비슷한 형태의 화석을 많이 찾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과학자들은 적은 시료로도 정확하게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입자물리학 연구자들은 가속기에 주목했습니다. 1978년 7월 리처드 뮬러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팀이 사이클로트론(원형가속기·Cyclotron)을 기반으로 탄소의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실었기 때문입니다. doi: 10.1126/science.201.4353.347


그로부터 약 7개월 뒤인 1979년 2월 뮬러 박사팀은 앞서 발표한 원형가속기뿐만 아니라 직류선형가속기(DC Linear Accelerator)를 이용해 방사성동위원소를 직접 측정하는 원리와 실험 방법을 정리해 국제학술지 ‘피직스 투데이’에 발표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이 바로 이겁니다. doi: 10.1063/1.2995406


이 방식에서 AMS는 이온화된 시료를 가속기로 가속한 뒤 질량 차이에 따라 방사성동위원소를 곧바로 분리합니다. 붕괴측정법처럼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하길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당시 뮬러 연구원이 제안한 두 가지 방식 중 직류선형가속기 방식이 널리 상용화됐습니다. 원형가속기를 이용한 것보다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메가전자볼트(MeV)급의 직류 고전압을 만들지 못해 정밀도는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효율적인 직류 고전압 발생 장치가 개발돼 수백 킬로전자볼트(keV)로도 충분합니다. 가로, 세로가 각각 5m, 6m로 약 30m2 넓이의 공간만 있으면 고효율의 직류선형가속기 기반 질량 분광분석장치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Q. AMS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AMS는 이온원, 자석(영구자석), 가속관, 정전하 분별 장치, 검출기로 이뤄집니다. 먼저 적합한 형태로 변형된 시료를 이온원에 장착시킵니다. 이온원에서 시료를 이온화시킨 후 이온빔으로 발사하면, 방사성동위원소 측정이 시작됩니다.


이온원에서 방출된 이온빔은 원자와 분자로 나뉩니다. 이온빔이 자석을 통과하면서 질량에 따라 1차로 분류가 이뤄집니다. 이후 가속관을 통과하면서 분자 상태의 이온은 원자로 쪼개집니다.


원자화된 이온은 정전하 분별 장치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온별로 방사성동위원소가 갖는 질량과 전하량의 차이에 따라 또다시 걸러집니다. 이때 특정 조건을 가하면 측정하고자 하는 방사성동위원소만 검출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AMS는 시료에 있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방사성동위원소가 붕괴할 때 발생하는 방사선을 측정해 간접적으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측정하던 이전 방식보다 더 빠르고 정밀하게 연대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AMS로 어떤 시료를 측정할 수 있을까요? 사실 시료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측정하고자 하는 시료에 적절한 처리를 가해 AMS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료를 변형할 수만 있다면 측정할 수 있는 시료의 종류는 사실상 무한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현재 상용화된 AMS는 탄소의 방사성동위원소(14C)를 비롯해 수소(3H), 베릴륨(10Be), 알루미늄(26Al), 칼슘(41Ca), 아이오딘(129I), 악티늄족 계열 방사성동위원소 등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AMS에 사용하기 위해 시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탄소의 방사성동위원소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시료를 변형할 때는 대개 산화나 환원 과정을 거칩니다. 탄소의 경우 산소와 반응시키면(산화) 이산화탄소가 됩니다. 이 이산화탄소에 촉매인 철가루를 넣고 수소와 반응시킵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에 있는 산소 원자는 수소와 만나 물이 되고, 탄소 원자는 철가루에 증착됩니다. 증착된 탄소와 철가루를 잘 분쇄해 압축하면 방사성동위원소를 측정하기 위한 준비가 끝납니다. 현재는 이렇게 시료를 만드는 과정도 자동화돼 정말 편리해졌습니다.

 

▲ 빙하코어 내부에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화산재, 금속 원소, 먼지 등이 포함돼 있다. 가속기 질량 분광분석장치(AMS)를 이용해 빙하코어 속 다양한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을 측정하면 과거 기후와 생태 정보를 알 수 있다.


Q. AMS는 어디에 쓰이나요?


현재 AMS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AMS의 에너지를 줄인다는 것은 전압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AMS의 경제성이 좋아지겠죠. 2007년 스위스 연구팀은 기존(2000keV)보다 3배 이상 낮은 600keV의 에너지만으로 다중 원소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질량 측정이 가능한 AMS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AMS가 연대 분석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가 속한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입자가속기연구실은 2018년 최신 AMS를 경주캠퍼스에 설치했습니다. 이를 활용해 경주 지역의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기원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발생원을 찾아 환경 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향후 기후나 미세먼지 연구처럼 환경 분야나 체내에서 약물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약물동역학, 고고학, 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AMS가 활약하길 기대해 봅니다.

 

 

이상훈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입자가속기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이다.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서 운영 중인 가속기 질량 분광분석장치(AMS)를 이용해 대기 환경을 연구하고 있으며, 장치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미래형 기체 분석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hoond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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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훈
  • 에디터

    김진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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