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를 따라온 꼬맹이는 생전 처음으로 흰색 가운을 입은 듯했다. 가운을 입은 모습이 신기한지 엄마 손에서 스마트폰을 뺏어, 스마트폰을 거울삼아 자기 모습을 비춰봤다. 꼬마가 처음으로 연구원복을 입은 곳은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이었다.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은 ‘광클’ 전쟁
8월 13일 토요일 아침, 경기도 수원 삼성디지털시티 이노베이션뮤지엄 3층 전시관 앞에는 스무 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격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어린이연구소’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어린이연구소는 어린이들이 직접 삼성전자의 연구원이 돼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세 가지 주제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흰 가운을 입은 아이들의 왼쪽 가슴에는 자기가 직접 쓴 삼성전자연구원 OOO이라는 서툰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날은 세 번의 수업이 진행됐는데 모두 정원이 꽉꽉 찰 정도로 매진이었다. 단순한 매진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구할 때처럼, 수업이 있기 2주 전 오전 10시에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이 시작되자마자 동이 날 만큼 엄청난 인기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한다는 신조어)’ 전쟁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돌 정도다(물론 참가비는 무료다). 이렇게 힘들게 구한 티켓이다 보니, 불볕더위에도 대부분의 참가자가 빠짐없이 자리를 메웠다.
오전 10시가 되자 남매는 생이별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누나는 고학년 반으로, 저학년인 동생은 저학년 반으로 나뉘어 처음에는 이론 수업을 진행했다. 오늘의 주제는 디스플레이. 저학년 반은 이노베이션뮤지엄의 전시시설을 이용해 직접 만지고 보며 디스플레이의 기초를 배웠다. 버튼을 조작해 화면의 화소를 조절하고, 색깔을 바꾸다 보니 울며불며 누나와 헤어졌던 동생도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 끼어 재밌게 놀고 있었다. 고학년 반은 에너지의 개념과 디스플레이의 종류 등 조금 더 어려운 내용을 다뤘다. 형, 누나답게 모두들 점잖게 앉아 열심히 듣고 배웠다.
20분가량의 이론 수업이 끝난 뒤에는 두 반이 다시 모여 본격적인 체험 활동을 시작했다. 디스플레이를 주제로 한 어린이연구소에서는 주사위 안에 빛을 내는 LED를 넣어 반짝이는 주사위를 만든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재료도 많고 구조도 복잡했지만,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고 고사리 손으로 차곡차곡 재료를 조립했다. 20분쯤 흘렀을까. 첫 완성자가 나왔다. 고학년 반의 자존심을 지킨 김현우 학생(경기 화성 마도초 6학년)은 “평소에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재밌게 조립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눈에 보는 혁신의 시대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은 이노베이션(혁신)을 주제로 전시관을 운영 중이다. 전시관은 평일에는 사전예약제로 도슨트와 함께 관람을 할 수 있고, 주말은 예약이 없이도 자유롭게 관람을 할 수 있다. 주말에도 시간을 잘 맞춰서 가면 도슨트 투어를 들을 수 있다(오후 2시부터 투어가 시작된다).
전시관은 모두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준비돼 있다. 인류 전체의 혁신을 다룬 5층 ‘발명의 시대 전시관’의 전기 발견 체험과, 3층 ‘기업 혁신의 시대 전시관’에서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를 내 맘대로 조절해볼 수 있는 체험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전자산업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도 인상 깊었다. 말로만 듣던 성경책만큼 두꺼운 최초의 휴대전화와, 초기 TV들의 각양각색의 모양을 보고 있노라니 전자산업의 눈부신 혁신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낡은 TV와 휴대전화는 아이와 부모 간의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온 김현희 씨는 “아이에게 흑백 TV를 이야기해줘도 믿지 않기에 직접 보여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엄마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이 모든 게 신기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는 쉴 새 없이 곳곳을 뛰어 다녔다. 이번 주말에는 인류의 혁신을 살펴보고 세대 차이도 없앨 겸 아이와 함께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에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