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고, 그것이 우리가 종종 식물들을 부러워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식물도 동물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전략을 짜고 남을 무찌르고 커가는 일 모두, 씨가 움튼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 핵심전략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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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1 변칙 승부 : 악랄해야 살아남지
일부 식물은 조금 변칙적으로 승부를 본다. 생존기술 1번이 변칙이라니 조금 김이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만큼 치열한 걸.
덩굴식물과 착생식물은 큰 나무를 휘감아 오르거나 찰싹 달라붙어 살아간다. 단단한 줄기 없이도 빛을 받기 위해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반대로 숙주가 된 큰 나무는 잎이 가려지고 물과 양분을 나눠야 해 생장에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적어도 영양분을 훔쳐가지는 않는다. 엽록소가 전혀 없는 기생식물은 물과 양분을 완전히 숙주에 의존한다. 실처럼 가늘며 노란빛을 띠는 실새삼(아래사진)이 대표적이다. 실새삼은 숙주 식물의 줄기를 돌돌 감은 뒤 양분과 물을 약탈해 간다. 밭둑이나 풀밭에서 자라며 우리나라 도처에 분포해 있다. 콩밭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독소를 내서 자기 영역을 방어하는 식물도 흔히 볼 수 있다. 코알라의 안식처로 잘 알려진 유칼립투스 나무 주위는, 풀이 없는 맨 땅이다. 유칼립투스 잎 때문이다. 유칼립투스 잎은 독소를 한껏 머금고 있는데 낙엽으로 떨어진 뒤 분해되면서 독소를 방출한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은 코알라가 해독을 위해 하루 20시간을 자야 할 만큼 그 독성이 매우 강하다.
이런 ‘악랄한’ 식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어떨까. 아르헨티나 코르도바국립대 산드라 디아즈 교수는 식물들 간의 경쟁 관계를 알아보고자, 식물 4만5000종을 여섯 가지 특징(키, 씨 무게, 줄기 무게, 잎 무게, 잎 넓이, 영양분)으로 분류해 이 식물들이 서로 어떤 경쟁 관계를 갖는지 조사해 봤다. 그 결과, 여섯 가지 특징이 크게 다른 식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경쟁이 매우 약했다. 이와 반대로 특징이 유사한 식물들끼리는 ‘피 터지는’ 경쟁을 벌였다. 자신과 목표가 같은 것들만 가려서 상대하는 것이다. 주어진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한 끗이라도 더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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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2 놀라운 번식력 : 끈질기게, 재빠르게
자연 환경에서 식물이 경쟁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힘들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종과 해당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유종의 경쟁만큼은 사람의 눈에도 보일만큼 치열하다.
어떤 생물이든,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 자라고, 자손을 많이 퍼트리면 된다. 그런데 침입종은 이 두 가지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침입한 과정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침입종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 1500년대에 시작된 대륙 간 이동으로 다양한 식물이 사람 또는 화물을 따라 옮겨졌다. 3억 년만에 처음으로 낯선 대륙에 도달한 많은 종들은 이내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중 몇몇 종은 항구에서부터 번성하기 시작해 사람의 이동경로를 따라 퍼졌다. 미군을 따라 텍사스에서부터 따라온 식물이 한미합동훈련이 이뤄지는 한강 하구에 안착하기도 했고, 화물의 완충제로 사용했던 풀 사이에 담긴 씨앗들이 이동 중에 곳곳에 흩뿌려졌을 수도 있다. 사람을 따라 멀고, 고된 길을 거치고도 살아남은 만큼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한 종들이다.
그런 침입종 중 하나가 가시상추다. 유영한 공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7년 전부터 공주 지역에서 가시상추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그때가 이 지역에 공사가 많아지던 때”라고 말했다. 도로를 따라 퍼지기 시작한 가시상추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건 왕고들빼기다. 계통적으로 사촌 격인 가시상추와 왕고들빼기는모두 두해살이를 하며, 서식처도 길가나 숲의 가장자리로 비슷하다. 하지만 침입종인 가시상추의 생장과 번식 속도가 압도적이다. 양분, 기온,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할수록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유 교수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를 현재보다 1.5배 높여 실험한 결과, 가시상추와 왕고들빼기의 생산량은 1.8배까지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고유종인 선제비꽃과 침입종인 종지나물(미국제비꽃)도 비슷하다. 둘 모두 봄에는 다른 식물들처럼 곤충을 통해 수분을 하고, 여름에는 꽃 없이 자가 수분하는(폐쇄화) 특수한 번식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봄과 여름 중 어느 번식 방법에 더 치중하는지에서 차이가 난다. 선제비꽃은 봄에 꽃을 피워 수분을 할 때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침입종인 종지나물은 여름 폐쇄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유 교수는 “폐쇄화로 번식하는 것이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지더라도 많은 수의 자손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한 화분에 두 종을 반반씩 심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종지나물이 그 공간을 잠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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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강가를 뒤덮은 러셀루피너스. 예쁜 보랏빛을 띠지만 도로 주변이나 강가에서 고유종을 잠식하는 무시무시한 침입종이다(서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왔다). 고유종과 침입종은 자연환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쟁관계다.]
전략 3 생존력 : 죽지 마 부활할 거야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침입종이라도 쉽게 다른 식물 종을 멸종시키진 못한다. 유 교수는 “식물은 경쟁에서 패했다고 해도 바로 멸종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자연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에 당장 경쟁에서 패한 식물이라도 개체수가 줄어들 뿐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간다”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물의 경쟁력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각 식물마다 생장, 번식 등과 관련한 고유의 경쟁력 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우수한 종은 계속 우수하다는 것이다. 이를 ‘평행설 이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생각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쟁력 약한 종이 개체수만 줄어들 뿐 멸종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식물의 적응력에 있었다. 다양하고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식물은 새로 적응할 곳을 찾았고, 어느 지역에서 경쟁력이 약했던 식물이 다른 지역에서는 경쟁력이 강한 식물이 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선제비꽃은 침입종인 종지나물에 비해 번식력이 압도적으로 밀린다. 하지만 반대로 선제비꽃이 침입종을 이기는 곳이 있다. 바로 키 큰 식물들이 우거진 곳이다. 선제비꽃은 제비꽃 중에서도 유일하게 줄기대가 있어 20~30cm까지 자란다. 이와 반대로 야트막하게 자라는 종지나물은 갈대밭에선 빛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멸종위기종인 선제비꽃이 갈대밭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식물에도 다양한 경쟁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곤 한다. 하지만 당장 경쟁에서 패하더라도 계속 패배자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 적응해 살고, 그 곳에선 승자가 되기도 한다. 식물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더 빠르고,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일부 식물은 조금 변칙적으로 승부를 본다. 생존기술 1번이 변칙이라니 조금 김이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만큼 치열한 걸.
덩굴식물과 착생식물은 큰 나무를 휘감아 오르거나 찰싹 달라붙어 살아간다. 단단한 줄기 없이도 빛을 받기 위해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반대로 숙주가 된 큰 나무는 잎이 가려지고 물과 양분을 나눠야 해 생장에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적어도 영양분을 훔쳐가지는 않는다. 엽록소가 전혀 없는 기생식물은 물과 양분을 완전히 숙주에 의존한다. 실처럼 가늘며 노란빛을 띠는 실새삼(아래사진)이 대표적이다. 실새삼은 숙주 식물의 줄기를 돌돌 감은 뒤 양분과 물을 약탈해 간다. 밭둑이나 풀밭에서 자라며 우리나라 도처에 분포해 있다. 콩밭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독소를 내서 자기 영역을 방어하는 식물도 흔히 볼 수 있다. 코알라의 안식처로 잘 알려진 유칼립투스 나무 주위는, 풀이 없는 맨 땅이다. 유칼립투스 잎 때문이다. 유칼립투스 잎은 독소를 한껏 머금고 있는데 낙엽으로 떨어진 뒤 분해되면서 독소를 방출한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은 코알라가 해독을 위해 하루 20시간을 자야 할 만큼 그 독성이 매우 강하다.
이런 ‘악랄한’ 식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어떨까. 아르헨티나 코르도바국립대 산드라 디아즈 교수는 식물들 간의 경쟁 관계를 알아보고자, 식물 4만5000종을 여섯 가지 특징(키, 씨 무게, 줄기 무게, 잎 무게, 잎 넓이, 영양분)으로 분류해 이 식물들이 서로 어떤 경쟁 관계를 갖는지 조사해 봤다. 그 결과, 여섯 가지 특징이 크게 다른 식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경쟁이 매우 약했다. 이와 반대로 특징이 유사한 식물들끼리는 ‘피 터지는’ 경쟁을 벌였다. 자신과 목표가 같은 것들만 가려서 상대하는 것이다. 주어진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한 끗이라도 더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8/S201609N034_3.jpg)
전략 2 놀라운 번식력 : 끈질기게, 재빠르게
자연 환경에서 식물이 경쟁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힘들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종과 해당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유종의 경쟁만큼은 사람의 눈에도 보일만큼 치열하다.
어떤 생물이든,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 자라고, 자손을 많이 퍼트리면 된다. 그런데 침입종은 이 두 가지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침입한 과정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침입종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 1500년대에 시작된 대륙 간 이동으로 다양한 식물이 사람 또는 화물을 따라 옮겨졌다. 3억 년만에 처음으로 낯선 대륙에 도달한 많은 종들은 이내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중 몇몇 종은 항구에서부터 번성하기 시작해 사람의 이동경로를 따라 퍼졌다. 미군을 따라 텍사스에서부터 따라온 식물이 한미합동훈련이 이뤄지는 한강 하구에 안착하기도 했고, 화물의 완충제로 사용했던 풀 사이에 담긴 씨앗들이 이동 중에 곳곳에 흩뿌려졌을 수도 있다. 사람을 따라 멀고, 고된 길을 거치고도 살아남은 만큼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한 종들이다.
그런 침입종 중 하나가 가시상추다. 유영한 공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7년 전부터 공주 지역에서 가시상추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그때가 이 지역에 공사가 많아지던 때”라고 말했다. 도로를 따라 퍼지기 시작한 가시상추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건 왕고들빼기다. 계통적으로 사촌 격인 가시상추와 왕고들빼기는모두 두해살이를 하며, 서식처도 길가나 숲의 가장자리로 비슷하다. 하지만 침입종인 가시상추의 생장과 번식 속도가 압도적이다. 양분, 기온,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할수록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유 교수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를 현재보다 1.5배 높여 실험한 결과, 가시상추와 왕고들빼기의 생산량은 1.8배까지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고유종인 선제비꽃과 침입종인 종지나물(미국제비꽃)도 비슷하다. 둘 모두 봄에는 다른 식물들처럼 곤충을 통해 수분을 하고, 여름에는 꽃 없이 자가 수분하는(폐쇄화) 특수한 번식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봄과 여름 중 어느 번식 방법에 더 치중하는지에서 차이가 난다. 선제비꽃은 봄에 꽃을 피워 수분을 할 때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침입종인 종지나물은 여름 폐쇄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유 교수는 “폐쇄화로 번식하는 것이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지더라도 많은 수의 자손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한 화분에 두 종을 반반씩 심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종지나물이 그 공간을 잠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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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강가를 뒤덮은 러셀루피너스. 예쁜 보랏빛을 띠지만 도로 주변이나 강가에서 고유종을 잠식하는 무시무시한 침입종이다(서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왔다). 고유종과 침입종은 자연환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경쟁관계다.]
전략 3 생존력 : 죽지 마 부활할 거야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침입종이라도 쉽게 다른 식물 종을 멸종시키진 못한다. 유 교수는 “식물은 경쟁에서 패했다고 해도 바로 멸종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자연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에 당장 경쟁에서 패한 식물이라도 개체수가 줄어들 뿐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간다”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물의 경쟁력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각 식물마다 생장, 번식 등과 관련한 고유의 경쟁력 값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우수한 종은 계속 우수하다는 것이다. 이를 ‘평행설 이론’이라고 한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생각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쟁력 약한 종이 개체수만 줄어들 뿐 멸종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식물의 적응력에 있었다. 다양하고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식물은 새로 적응할 곳을 찾았고, 어느 지역에서 경쟁력이 약했던 식물이 다른 지역에서는 경쟁력이 강한 식물이 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선제비꽃은 침입종인 종지나물에 비해 번식력이 압도적으로 밀린다. 하지만 반대로 선제비꽃이 침입종을 이기는 곳이 있다. 바로 키 큰 식물들이 우거진 곳이다. 선제비꽃은 제비꽃 중에서도 유일하게 줄기대가 있어 20~30cm까지 자란다. 이와 반대로 야트막하게 자라는 종지나물은 갈대밭에선 빛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멸종위기종인 선제비꽃이 갈대밭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식물에도 다양한 경쟁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곤 한다. 하지만 당장 경쟁에서 패하더라도 계속 패배자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 적응해 살고, 그 곳에선 승자가 되기도 한다. 식물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더 빠르고,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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