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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해진 마음에 불을 질러라

로또 열풍에 이은 로또 피로 어떻게 없애나

새해가 되자 정치인들은 나름의 화두를 담은 사자성어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한여름이 가물어 싹이 마르면 하늘은 비를 내린다’는 뜻의 한천작우(旱天作雨)나‘구름이 움직이니 시원하게 비를 뿌린다’는 운행우시(雲行雨施),‘같은 점을 취하며 다른 점도 존중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높으신 분들’의 사자성어가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서민들. 그들은 거창한 사자성어 대신 소박하고 야무진 두 글자를 가슴 속에 품었다. 바로‘대박’(大舶).

2002년 12월 2일, 정부와 국민은행은 로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서민 경제는 여전히 차갑게 얼어있었고 수십억에 달하는 대박의 꿈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로또 당첨번호를 발표하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전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번호를 맞춰보는, 이른바‘로또 열풍’이 번져나갔다.

처음에는 모두들 로또의 열기가 금방 가라앉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많은 액수의 당첨금이 이월되자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로또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복권판매소는 연일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로또 번호를 잘 고르는 법을 놓고 인터넷에는 갖가지 조언이 넘쳐났고, 로또 번호를 잘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까지 등장했다. 전국적으로 거리의 슈퍼마켓이나 잡화점들이 아예 복권만 전문적으로 발행하는 복권방으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했다.

로또 열풍은 어떻게 생긴 걸까? 그리고 왜 학자들은 로또의 열기가 금방 가라앉을 거라고 예상했을까? 소비자 심리와 관련된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로또 같은 새로운 이벤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대박을 노리거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복권을 직접 사본다. 로또 열풍 역시 그런 심리적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 실제로 로또가 처음 발행된 뒤 약 15~25주까지는 굉장한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열기가 서서히 식으며 로또 판매량은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했다.
 

사랑이 식으면 모든 것이 귀찮고 시큰둥해지듯 로또 열풍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시들해진다.


불 같은 열정도 언젠가는 식어버려

기대심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로또의 경우‘로또 피로’(lotto fatigue)라 한다. 로또에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투자할 경우 로또 참가자는 결국 지쳐버리고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뭘까.

첫째 로또라는 게임 자체가 주는 배신감 때문이다. 대박의 꿈과 번번히 어긋나며 실패가 계속되자 점차 로또에 기대하지 않게 된다는 해석이다. 둘째 로또를 끊임없이 하다 보면 처음의 흥미는 사라지고 매번 똑같은 게임 방식에 질려버린다. 랜덤하게 로또 번호를 뽑아주는 기계에 의지하는 일도 반복되면 재미가 없어진다.

결국 로또 열풍은 영원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문화적 이벤트라도 로또 피로처럼 언젠가는 열기가 가라앉고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10대들은‘동방신기’처럼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이 등장해도 결국 로또에 피로를 느끼는 것처럼 서서히 시들해진다.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새로운 게임에 호기심을 느낀 게이머들이 폭발적으로 참여하며 열풍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붐이 최고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게이머들의 기대 심리가 지속되지 않는다. 열풍이 천천히 식고 거품이 꺼지며 결국 그 게임을 진정 사랑하는 충성 게이머들만 남게 된다.

복권 사업을 우리나라보다 먼저 시작했던 해외에서도 로또 피로 현상은 여지없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또의 열기가 예상보다 급격히 상승하고 장기간 지속된 까닭은 무엇일까?

로또 발행 시점부터 약 1년간 매회마다 이월된 금액과 로또 판매액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의문이 풀린다. 만약 지난 회에 1등 당첨자가 나오면 이번 회의 이월금액은 0이고, 지난 회에 1등 당첨자가 없었다면 1등 당첨금은 고스란히 이번 회에 보태진다. 그래프를 보면 이월금액이 있을 때 로또 판매액도 이월금액만큼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이월금액이 존재하면 평균적인 1등 당첨금보다 훨씬 큰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 심리 역시 평균보다 높아진다. 높아진 기대 심리는‘대대대박’의 꿈을 좇으며 전체 로또 판매액을 껑충 뛰게 만든다. 이처럼 어떤 단기적인 원인으로 로또의 판매량이 평균보다 높거나 낮아지는 현상을 단기변동이라고 한다.

로또의 경우 초기에 일어난 열풍이 장기적인 상승세를 만들어냈고, 1등이 나오지 않아 크게 불어난 이월금액은 단기변동을 일으켰다. 이월금액이 300억을 훌쩍 뛰어넘었던 10주차에는 로또 판매액이 2400억원을 웃돌았는데, 이는 다른 주의 판매액과 비교했을 때 2배가 넘는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또를 사러 나왔다. 지친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질 ‘대박’의 그날은 과연 올까.


기대심리 불러일으키는 이월금액

이월된 당첨금이 로또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비단 단기변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월금액이 발생하기 전과 후의 로또 판매액을 비교해보면 이월금액이 발생하기 전보다 그 뒤의 판매액이 대체로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 없는 당첨금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사람들은 대박의 꿈을 다시 상기하며 잃었던 흥미를 되찾는다. 이는 평균적인 기대 심리를 높여 로또 판매를 장기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로또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된다.

로또에서 이월금액은 서서히 꺼져가는 사람들의 희망에 활활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한다. 온라인게임 회사도 게이머의 지속적인 흥미를 끌기 위해‘업데이트’(update)라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카트라이더’라는 온라인게임을 생각해보자.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트랙에서 레이싱을 통해 순위를 가리는 단순한 게임 방법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게이머들이 쉽게 질릴 수 있는 단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불타는 호기심으로 게임에 빠져들지만 곧 지루해져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막기 위해 게임 회사는 지속적으로 재미있는 트랙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열을 올렸다. 또 코카콜라의 음료를 구입하면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머니를 지급했다. 평소 즐겨 마시는 탄산음료 캔이나 페트병 한두개만 모아도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점에서 코카콜라와의 공동마케팅 전략은 크게 성공한 셈이다.
 

로또 판매량을 좌우하는 변수는 뭘까^로또 판매가 시작된 시점부터 200주차, 즉 2006년 12월 초까지의 판매량을 보면 10주차에 유난히 판매 량이 치솟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구간을 확대해 분석 했더니 원인은 이월금액이었다.


열풍의 주체는 바로‘당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06년의 인물은‘You’였다. 연예인처럼 특정 인물이 만들어낸 콘텐츠의 영향력은 점차 줄고 개인이 만들어낸 각자의 콘텐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현대인은 과거처럼 한두 가지의 특성으로 나눌 수 없다. 로또 열풍과 로또 피로현상도 단순히 기대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한두 가지 요소로만 생각해서는 안되며 사람마다 로또에서 느끼는 가치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느낌이나 직감에 의존한 마케팅이 성공을 거둘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화적 이벤트가 홍수처럼 몰려들기 시작한 오늘날 어느 것이 큰 열풍을 일으키고, 그 열풍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아볼 수 있는 수학적 모형은 그래서 절실하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방법으로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분야가 바로 예측공학이다. 지금도 많은 학자들은 새로운 예측 모형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싫증을 잘 내는 게이머들을 붙잡기 위해 게임회사는 지속적으로 아이템을 개발하고 공동 마케팅을 펼치며 업데이트를 한다. 그림은 온라인게임‘카트라이더’의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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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동수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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