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가운데서 한 학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뭔가를 한창 만드는 중이다. 옆으로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쇠로 된 통에 들어있는 회색 반죽을 기계로 저으며 섞고 있다.
“연구에 사용할 콘크리트에요. 콘크리트는 이렇게 시멘트, 모래, 자갈과 물을 혼합해서 만듭니다.”
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콘크리트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정수씨의 말이다. 김씨와 석∙박사과정 12명의 학생들은 콘크리트를 직접 만들어 연구하느라 일년 내내 손이 마를 날이 없다.
건설재료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잘 변하지 않아야한다. 가장 변화가 적으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설재료는 돌이다. 하지만 수많은 구조물을 짓기에 돌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지을 때 자연에서 얻은 돌가루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이를 발전시켜 1750년대부터 시멘트를 만들었고, 그 후 시멘트에 물, 모래, 자갈을 섞은 콘크리트가 등장했다.
압력과 열에 강한 인공석재 콘크리트
일반적으로 1㎥ 부피의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는 3백50kg, 물은 1백60-1백80kg, 모래는 7백-9백kg, 자갈은 9백-1천1백kg 정도로 혼합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성질을 갖는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 시멘트양의 1% 미만으로 여러가지 화학물질을 섞기도 한다.
원료인 물, 모래, 자갈, 돌이 자연에 풍부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라는 점 이외에 누르는 힘에 잘 견디고 열에 비교적 강한 것도 콘크리트의 장점이다. 그런데 지하철 역사에 물이 새거나 교량에 금이 가 허겁지겁 보수공사를 하는 것을 적잖이 봤을 것이다. 이는 콘크리트의 치명적인 약점인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균열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가 물과 완전히 반응하면 열이 발생한다. 이를 수화열이라고 한다. 수화열이 많이 발생하면 콘크리트 내부의 온도가 표면에 비해 높아진다. 콘크리트 두꼐가 1m 정도면 내부 온도는 70-80℃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이런 온도 차이 때문에 콘크리트의 내부 또는 표면에 균열이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이나 자갈, 모래의 온도를 낮춰 만들기도 하고, 콘크리트 내부에 파이프를 넣어 찬물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콘크리트를 만들 때 들어간 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발하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고층건물에서 수년 후 창틀 기둥 한쪽은 부피가 많이 줄어들고 다른 한쪽은 덜 줄어들어 창문이 닫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철근을 콘크리트 사이에 집어넣는다. 철근은 열에 약하고 쉽게 부식되지만 콘크리트 안에 있으면 이런 단점이 완화된다. 철근과 콘크리트의 윈-윈 전략인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구조물의 80%이상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그런데 철근이 박혀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균열이 생기면 더 심각한 문제. 갈라진 틈으로 철근이 공기 중에 노출돼 녹이 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아무리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3주 버릇 여든까지 간다
연구실에서는 이처럼 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균열을 연구한다.
“콘크리트를 처음 만들 때는 물렁물렁한 반죽 같다가 한달 정도 지나면 거의 굳어져요.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섞을지 계획할 때부터 다 굳어질 때까지 어떤 상태에 있었느냐에 따라 구조물을 만든 후 얼마나 균열이 생길지가 결정됩니다.”
콘크리트 연구실을 이끄는 김진근 교수의 설명이다. 사람의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콘크리트는 3주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셈이다. 그래서 콘크리트를 만들 때는 여러가지 검사를 한다. 누르거나 잡아당겨 균열이 생기는 정도를 측정하고, 온도와 습도가 달라졌을 때 얼마나 변하는지도 확인한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도 균열이 발생한지 한참 지나서야 보수를 하는 곳이 많다”며 “균열이 발생한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빨리 대처하기 위해 내부 균열을 스스로 진단하는 콘크리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콘크리트에 센서를 내장하거나 디지털카메라로 내부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가 균열이 발생하면 즉시 감지하도록 만든다는 얘기다. 균열의 폭, 길이, 방향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균열 발생을 미리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계할 때 수분과 수화열의 분포를 미리 계산해 언제, 어느 부분에, 얼마나 균열이 생길지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다. 재료나 시공 순서를 바꿔가며 시뮬레이션을 반복해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콘크리트 구조물의 설계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들은 부산 광안대교, 충남 서해대교, 한강의 방화대교와 청담대교를 건설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연구성과로 국제특허를 받았고 지하철 9호선, 인천국제공항 지하철 시공에도 응용하고 있다. 콘크리트 균열 연구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이곳은 1999년부터 국가지정 균열제어연구실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