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프리카계 미국인 4000여 명의 DNA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금까지 대규모 유전 연구는 대부분 유럽계 인구를 대상으로 했다. 유전자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살아온 격동의 역사가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유전자에는 역사가 기록돼 있다. 어떤 민족이 대규모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혈통이 다른 민족과 만나 결혼해 자손을 낳는 경우, 또는 질병이 크게 유행하는 경우 유전자 구성에 큰 변화가 생긴다. 캐나다 맥길대 인간유전학과 사이먼 그라벨 교수와 소헤일 바하리안 박사 연구팀은 최근 미국 전역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DNA를 조사해 ‘플로스 유전학’ 5월 27일자에 발표했다.
아프리카 유전자 82.1%
+ 유럽 유전자 16.7%
연구팀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의학 연구에 참여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3726명의 DNA를 분석했다. 평균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보유한 유전자의 82.1%는 아프리카에서 유 래한 것이었다. 16.7%는 유럽에서, 나머지 1.2%는 미국 원주민 혈통의 DNA였다.
연구팀은 미국 원주민의 유전자는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에 노예로 끌려오기 시작한 1600년대 초기 짧은 시간 동안 유입된 반면, 유럽계 유전자는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추정은 사실 당연한 결과다. 16~19세기까지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미국 땅에 노예로 팔려왔고, 유럽계 미국인인 농장주가 여성 노예들을 강간한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에서 노예제 폐지를 외치던 북부 연합군이 최종 승리하면서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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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 유럽 DNA가 적은 이유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유전자 구성이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미국 남부에 사는 이들에겐 평균보다 더 많은 아프리카인 DNA가 있었다(83%). 특히 남동부에 위치한 플로리다 주가 89%로 비율이 가장 높았고, 남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88%로 뒤를 이었다. 반면 미국 북부와 서부에 사는 이들에겐 아프리카인 DNA가 평균보다 적었다(각각 80%, 79%). 다시 말해, 현재 미국 남부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유럽계 DNA의 비율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대이동이 시작된 초기에 남부를 떠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유전학적으로 편향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이동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 1915년부터 1970년 사이에 6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미국 북부와 서부로 이주한 현상이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인종 차별이 극심한 미국 남부를 떠났다. 연구팀은 이 때 유럽계 유전자 비율이 높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피부색이 좀 더 밝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나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피부색에 따른 또 다른 차별이 계속됐음이 이런 유전적 다양성 안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 셈이다.
사이먼 그라벨 교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유전적 다양성은 의료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흔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다른 혈통의 미국인보다 특정 질병에 훨씬 취약한데, 그들이 처한 환경 외에 유전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계 미국인을 기준으로 개발된 진단 방법과 치료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연구는 유전자 맞춤형 치료법 같은 현대의학의 혜택을 앞으로 그들도 누릴 수 있게 하는 단초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