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을 먹는 ‘식인’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공포의 소재다. 신화나 야담에 인육을 먹는 괴물 또는 신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거인족(티탄) 중 하나로 농경의 신인데, 그 자신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된 과거가 있기때문에 나중에 권좌를 지키고자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악행을 저지른다. 이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줘서, 루벤스 같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겨놓았다.
신화까지 갈 것도 없이, 과거에는 멀고 낯선 나라를 탐험한 사람들의 단골 이야깃거리였다. 특히 유럽인들이 한창 세계를 탐험하던 때에는 아프리카의 원주민 중에 식인종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유행했다.
낯선 곳에 사는,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아프리카인은 문명화된 서유럽인들과는 다르게 충격적인 악행을 태연히 저지르는 존재였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여파인지, 오늘날에도 과거의 아프리카인들 중에 사람을 먹는 사람이 살았다고 믿는 사람이 꽤 많다. 아프리카인이 여행 온 서양인을 붙잡은 뒤 구워먹고자 불을 지피는 장면은 영화나 만화 프로그램에서 개그(혹은 공포)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얼마나 차별적인 시선인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식인종
하지만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이 생각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동족을 서로 잡아먹는 동물은 자연에 거의 없다. 잡아먹기는커녕 동족을 살해하는 동물도 드물다. 우리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인 영장류의 경우도 그렇다. 자연에서 동족을 살해하는 경우가 드물게 발견되긴 하지만 대개 나이든 수컷 우두머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나올 뿐 잡아먹기 위해 살해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는 모두 초식(고릴라) 혹은 초식에 가까운 잡식(침팬지 및 보노보)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 애꿎은 동료를 죽일 동기가 약하다.
아프리카 등의 인류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흉흉한 소문 역시 사실이 아니다. 20세기 인류학자들이 식인 습관을 가졌다는 증언의 출처를 꼼꼼히 추적한 결과, 대부분의 이야기는 ‘옆 동네 부족은 몹시 흉악해서 식인 습관을 가졌다더라’는 말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과학동아 2012년 2월호 ‘원시인은 식인종?’). 즉 아프리카에서도 ‘카더라’하는 말만 많았을 뿐 정작 진짜 목격한 사람은 없는 뜬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이를 전하는 과정에서 실제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로 둔갑시켰고, 편견은 수십 년 넘게 굳어졌다(장례 절차의 일부로 시신을 먹은 경우는 실제로 있었다.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은 불과 반 세기 전까지 친지의 시신을 먹었다).
현재 지구상에 식인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정설이 됐다. 과거의 인류는 어땠을까.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전세계로 확산하기 전에 이미 여러 종의 친척 인류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 살았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친척 중 하나인 네안데르탈인은 서유럽부터 시베리아 지역까지 널리 살았던 인류였다. 현생인류보다 두뇌가 더 컸고 체구도 다부졌으며, 외모도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고 지적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20세기 유럽인들은 이들이 현생인류보다 열등하고 미개한 ‘원시인’이었다고 믿었고, 이들에게는 틀림없이 폭력적인 식인 습관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차별적 시선은 한때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믿었던 아프리카인에게 행한 차별적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믿음에는 이유가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뼈 화석이었다. 이 뼈에는 돌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자국이 나 있었는데, 한동안 학자들은 이 자국이 칼로 살을 저며낸 흔적, 그러니까 동료를 잡아먹은 흔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후 연구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장례를 위한 손질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었다는 주장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발견은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다. 7월 초, 반전이 일어났다. 19세기말 벨기에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골을 미국 및 유럽 공통 연구팀이 다시 분석한 결과, 뼈에서 식인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DOI: 10.1038/srep29005). 4만~4만 5000년 전에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 뼈 99점 중 약 3분의 1에서 ‘고기를 얻기 위해’ 칼을 댄 흔적이 나왔다. 말이나 사슴 등 고기를 위해 도축한 동물에게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흔적이었다. 뼈를 부수려고 내리친 흔적도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아직 현생인류가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희생자와 시신을 손상시킨 이는 모두 네안데르탈인이었다.
기존에도 폭력의 결과로 두개골이 파손된 현생인류 화석이 발견된 적은 있다(PLOS ONE, May 27, 2015). 하지만 시신을 뼈에서 발라 ‘먹은’ 행위는 단순한 폭력과 다르다. 조난 등 극한 상황에서 행해진 예외적인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네안데르탈인 중 일부가 식인을 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마지막으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식인종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걸까. 아닐 것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겪은 일로 그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식인종이 아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