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는 새로운 기술혁신 체제를 구축하고 과학기술 개발에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정책이 현장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기술혁신 주체와 유리돼 공허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은 곧 출범하게 될 새 정부에 대해 과거 어느 정부 보다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에 상응하는 지지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지지만큼이나 새 정부가 앞으로 해결하고 대처해야 할 나라 안팎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국민들은 새 정부가 해야 할 많은 일 중에서도 경제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경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과거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아닌 민주적 방식을 통한 안정 속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혁신에 정책의 우단을
우리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산업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그리고 생산성제고의 기본적인 요건은 기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 정부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에 정책의 우선을 두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정책에 입안되고 시행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종래의 좁은 의미의 과학정책 기술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인식돼야 하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 개선하고 나라 안팎의 여건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국가발전 목표에 부응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입안돼야 한다. 즉 앞으로 지속돼야 할 과제, 새로 추진해야 할 과제 등을 정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신념과 강력한 지도력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기술력이 국력인 시대
80년대 중반 이후 급변하고 있는 세계 환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념중심의 군사적 대치상황은 해소됐으나, 세계는 또다시 경제전쟁 기술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새로 형성될 세계질서의 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앞으로는 국제관계가 각국의 경제력 기술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제력의 핵심이 되는 기술을 둘러싼 국가간의 경쟁 마찰 압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기술이 없는 기술빈국은 기술식민지로, 경제식민지로 그리고 결국은 정치식민지로 전락하고 마는 기술패권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격화되고 있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업차원에서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끼리 상호 보완적 기술을 바탕으로 제휴하는 전략적 기술동맹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는 자국 기술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국가간에는 지역국가간의 협력을 통한 기술공동체의 형성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기술개발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국가간의 경쟁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조정,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과 함께 지적 소유권 보호적 강화, 지구환경오염에 따른 제품 및 제조공정에 대한 규제 등 우리와 같은 후발국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 전게되고 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GATT체제의 출범과 함께 국내 시장의 완전개방이 불가피해지고 국내외 기업간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체제의 붕괴와 함께 정부주도적 자원동원 및 배분체제의 실효성이 격감돼 전환기적 혼란이 지속될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과거 압축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인(저임노동, 저가제품시장 등)이 소멸되면서 산업 구조의 조정 혹은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 있다.
이와 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술없이는 우리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술제일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해 있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신축성과 과감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활기를 잃어버린 과학기술계
6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처음부터 과학보다는 기술을 강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정책은 비교적 현실적 필요에 따른 정책이었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60~70년대에는 산업화과정에서 급증하는 기술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해외기술의 도입, 소화에 중점이 두어졌으며 이와 동시에 자체기술능력의 축적을 위한 국가주도의 과학기술 하부구조 구축의 단계로 설명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정부출연 연구소가 설립, 확대됐으며 고급기술 인력의 확보를 위한 해외 두뇌의 유치, 국내 인력 배출을 위한 정책이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는 이와 같이 구축된 하부구조를 활용해 과학기술을 국가발전에 연계시키려는 노력을 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공공 부문에서는 선도적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민간기업의 산업기술개발을 활성화하는 것이 정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천한 산업화 역사와 거의 전무했던 과학기술기반에서 출발한 우리나라의 기술혁신 체제는 수요 공급간의 양적 철적 괴리가 상존하고 기술혁신 주체간의 상호연계성이 취약해 국가발전에 대한 국내 과학기술의 기여도가 높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특히 80년대 말 이후 3저요인의 소멸, 수입유발적 내수의 증가, 국내시장의 대외개방 확대에 대처할 기술적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국제수지적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학기술 수준도 경공업중심의 제조기술은 세계수준에 도달했다고 하나 디자인 재료부품 등 핵심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기술적 취약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취약성으로 인해 우리 경제는 구조적으로 대일기술의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술 혁신 주체인 기업 연구소 대학간의 연계체제가 취약해 기술능력을 결집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주체간의 불명확한 역할분담, 과학기술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 결여, 연구기관의 자생력 결핍 등으로 우리 과학기술계는 활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이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정립되지 못했고, 기술혁신체제의 비효율성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우리 과학기술에 대한 현실적인 상황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과학기술관 그리고 효율적인 기술혁신 체제의 구축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척 과제
현재 우리 과학기술정책의 목표는 2000년대 초 과학기술 선진 7개국권에 진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주적인 독자기술의 확보를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앞으로 계속 추진돼야 할 것이다.
다만 새로 전개되는 국내외의 여건 변화에 대응하면서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정책의 시의성과 적응성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즉 이러한 국가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서 좀 더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대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른 마찰요인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자주적 독자기술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해외기술의 획득, 활용과 병행돼야 하며 국제적인 규범과 조화를 이루면서 기술개발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국가기술혁신체제의 구축이 선결과제이며 따라서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과제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개혁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국가기술혁신 체재의 개혁
국가혁신체제의 상호연계성을 확립해 기술혁신주체인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이 각개약진하기보다 이들의 기술능력을 결합해 상승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사람의 우수한 과학자를 만들기보다 각 주체가 협동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 과학기술을 위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수요지향적인 과학기술개발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며, 과학기술 정책도 연구개발 중심에서 기술의 혁신과 확산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러한 혁신체제의 개혁을 통해서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가 강화되고, 특히 중소기업의 기술능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가의 기술혁신체제는 내부적인 연계는 물론 외부적으로도 강한 연계가 필요하다. 국내의 제한된 연구개발 자원 및 능력을 해외의 연구개발 자원과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우리의 내부적 한계를 극복하고 해외기술의 획득, 활용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차원에서는 과학기술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민간부문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내의 기술혁신체제도 크게 개선돼야 한다. 기술관련 부처간의 상호보완적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과학기술경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 환경 교육 국방 외교 등 모든 국가정책이 기술혁신지향적으로 상호 연계를 가지는 거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계를 위한 고립된 정책이 아니라 전 부처가 참여하고, 국민과 국회의 의사가 반영되는 개방적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효율화
우리의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능력과 자원을 승산이 있는 기술분야에 집중 투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해 중단기적으로는 산업기술개발에 우선을 두어 핵심산업기술 개발에 집중투입 하되, 시장성을 충분히 감안한 사전 검토가 바탕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산업기술력을 우선적으로 배양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장기적으로는 기초기술, 거대기술에 도전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초과학이 전혀 무시돼서도 안될 것이다. 여기서 산업기술을 강조하는 것은 중단기적 정책우선 순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기술혁신체제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투자의 효율화 못지 않게 인력 활용의 효율화가 중요한다. 인력활용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기술개발 종사자등에 대한 동기부여가 선행돼야 한다.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우대받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연구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우리나라 고급 기술개발인력이 집중돼 있는 대학과 연구소의 역할을 명확히 해 역할에 따른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고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최근 침체되고 있는 연구분위기를 다시 돋우어야 한다. 특히 출연연구소의 기능을 성격별로 재정립해 이에 따라 장·단기운영 방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연구소의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한 경쟁원리를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소 운영에 적용해 자생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정립된 연구기능과 성격은 충분한 기간동안 유지돼야 하며,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사회기여도, 산업수요 등을 기준으로 기관별 발전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술혁신
기술개발의 원동력은 민간에 있으며 민간의 창의력은 자율과 경쟁에 의해 극대화될 수 있다. 따라서 기술개발의 수행은 기본적으로 산·학·연 협력체제에 맡기고 정부는 이를 측면 지원, 보완하는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이 좋다. 대학이나 출연연구소에 대해서도 운영의 자율과 책임경영을 보장가는 과감한 제도개선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기술을 공급하는 역할보다 기술의 확산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이러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의 공급,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상담 기술지도 시험검사 표준화 품질인증 등의 기능이 더욱 확대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기술의 공급자와 수요자, 조립업체와 부품업체간의 연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종산업간의 정보교류신기술 신소재 부품 등에 대한 평가 등 산업간 기업간 정보유통을 활성화하는 지원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기술예측 시장수요 공공부문의 시장 수요 등의 정보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또한 과학기술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현장 및 연구현장의 사정과 의견이 광범위하게 수렴되는 정책결정 구조를 수립해야 한다. 정책의 한계와 자원의 현실적 한계를 충분히 고려해 조급한 의사결정을 지양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일반의 정책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켜야 한다.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 소관정책의 정책효과에 대한 자체평가를 충실히 함은 물론 국회의 정책평가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술평가국과 같은 기능을 국회가 도입해 정책입안과정에서 실질적인 평가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에서 시행했거나 시행하고 있는 제도는 거의 도입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의 현실적 실효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약컨대 새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제는 새로운 기술혁신체제를 구축하고, 과학기술개발에 활기를 불어 넣는 일이다. 정책이 현장에 바탕을 두지 않았을 때, 기술혁신 주체와 유리돼 공허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생산현장연구현장을 중시하는 정책이 펼쳐져야겠다.
과학기술 담당 부처의 위상강화, 기술개발투자의 획기적인 확대 등은 물론 매우 중요하고 그렇게 돼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 부처의 위상강화, 투자의 증대도 의도한 바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