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확산되는 현대인의 불안심리

공포신드롬

오랫동안 우리는 공포증을 그저 숨기려고만 했다. 하지만 공포증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두통거리가 돼버렸다. 승강기나 비행기를 타는 일, 심지어 간단하게 길을 건너는 일조차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이다. 당신은 세느 강변을 따라 달리는 차에 앉아 있다. 차는 이제 막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터널로 들어가려는 참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평소와 달라보인다. 오렌지빛 네온은 흔들거리며 당신을 덮치는 것 같다. 배기 가스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공포가 당신을 덮친다. 당신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하고 숨조차 쉴 수 없다. 피가 얼어붙는 듯 하다. 땀이 쏟아지면서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당신은 당장 차를 멈추고 터널에서 달아나야만 한다.

당신 머리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 없다. "벗어나야 한다. 어지럽고 질식할 것만 같은 이 곳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탈출해야 한다."

몇분 후 불편한 증상들은 사라지고 당신은 이 위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신의 신체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당신을 '배신'할 수 있을까. 당신이 전에도 수천 번이나 마주친 적이 있는 그런 낯익은 상황에서 어떻게 정신이 공포에 굴복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당신은 이제 '폐쇄공포증' 클럽의 일원이 된 것이다.

프랑스인 60%가 고통

공포증의 종류는 방대하고 다양하다. 많은 상황과 물체가 갑자기 당신을 엄습해 발작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은 공포증을 크게 공간공포증 사회공포증 특수공포증 등 세가지로 구분한다. 공간공포증에는 '폐쇄공포증' (밀폐된 장소에 대한 공포)과 '광장공포증'(고속도로나 백화점처럼 넓은 장소에 대한 공포)이 있다. 사회공포증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먹는 것에 대한 공포, 얼굴이 붉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전화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 등이 포함된다. 특수공포증은 특정 물체나 상황을 대상으로 한 모든 종류의 공포증을 말하는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작은 동물이나 거미 불 피 비행 등에 대한 공포가 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공포에 대해 비웃기만 했다. 의사나 주변 사람들은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불안은 아주 심한 경우 급히 안정제를 먹으면 해결되는 시시한 병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변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신과 의사들은 이 특수한 질병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 프랑스 인구의 약 60% 가량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포증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물론 이들 모두에게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불안·스트레스 연구소(IFAS)의 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임상치료가들은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해 세가지 기준을 정한다. 첫째 공포가 엄습해올 때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세 모두가 발생해야 한다. 즉 심박수가 증가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식은 땀을 흘리는 등 육체적인 신호가 불안한 감정과 함께 나타나야 한다. 둘째 공포증이 오랫동안 지속돼야 한다. 경미한 공포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셋째 공포증 환자가 불안의 대상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야 한다. 즉 직장이나 일상 생활에서 정기적으로 공포가 발생하는 경우다."

만약 당신이 이 세가지 기준을 모두 갖췄다면 이제는 의사의 조언을 구할 차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찾아가야 할까? 모든 대도시의 병원들은 이 병을 다루는 정신과 의사나 특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신과 의사' 란 말에 놀랄 필요는 없다. 공포증은 미친 증세도 아니고 심각한 정신병도 아니다. 그러나 공포증이 정신과 관계되기 때문에 정신과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프로이드에서 유래한 정신분석학적 방법, 외부 자극으로 증상을 치료하는 행동주의 방법(behaviorist method), 그리고 항우울성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 등 세가지가 있다. 이 중 보편적 승인을 얻는 것은 행동주의 방법이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약 12회에 걸쳐 환자와 만나면서 이 방법을 사용, 환자 마음에서 어떤 상황이나 물체를 맹목적인 공포와 연계시키는 신경 고리(neuron link)를 지워 없앰으로써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이 방법의 효력은 잘 알려져 있고 또 널리 인정받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방법으로 공포증을 치료받으면 애초의 형태로나 다른 어떤 형태로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포증은 더 이상 불가피하지 않은 것이다.
 


'비행기 길들이기' 프로그램

많은 여행자들이 비행기에 탈 때 공포에 시달린다. 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탑승객의 약 15%가 이 증세를 보인다. 따라서 몇몇 항공사들은 이 운송 수단을 승객들에게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항스트레스'(anti-stress) 과정을 만들었다.

에어프랑스 회사의 '비행기 길들이기' 프로그램 책임자이며 심리학자인 마리클로드 덩떵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우선 치료대상자들의 인적사항과 공포증세를 밝히기 위해 임상면담을 실시한다. 그 다음 순서는 5시간 정도의 단체과정인데,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시작되는 것은 기장의 연설이다. 그는 비행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하고 비행기가 날 수 있는 물리적 원리에 대해 말해준다. 다음으로 치료대상자들은 모의 비행장치에 탑승한다. 모의 조종실은 훈련중인 비행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비행중에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재현시킨다.

모든 것이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우수한 모의 비행장치와 컴퓨터가 만드는 정밀한 영상은 치료대상자들에게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도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 또한 연습할 때 듣는 기장의 설명은 스트레스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낸다.

현재 매달 약 50여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데, 회사측은 치료 성공률을 80%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프로그램이 공포증에 깊숙이 빠진 환자가 아니라 공포를 약간만 느끼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덩떵에 따르면, 회사측은 면담 초기에 대상자가 단순히 불안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아니면 폐쇄공포증이나 광장공포증이 있는지를 평가한다. 대상자 중 약 25%가 후자에 해당하는데, 이들에게는 별도의 심리요법이 권해진다.

폐쇄공포증은 가장 흔한 공포증이다. 환자들은 터널이나 지붕, 그리고 다른 밀폐된 공간을 생각하는 것조차 못견딘다. 그냥 생각하기만 해도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공포로부터 달아나기를 원하면서도 불안이 너무 커서 그럴 힘조차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이 위험을 예감하는 것만으로 신체가 무력해지고 '재난' 상황에 던져질 수 있는 것일까.

공포증의 원인에 관한 설명 중 유전자설이 있다. 어떤 면에서 공포증은 공포증을 가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성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연구는 이 가설을 확증해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불안 증세를 보이는 집에서 그렇지 않은 집보다 공포증에 걸린 어린이가 30-40% 많이 발견됐다. 그러나 공포증에 시달리는 부모가 자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거리공포증을 나타내는 어머니는 좀 더 안전감을 얻기 위해 자녀를 어디에나 항상 데리고 다닐 것이다. 이때 자녀는 그 상황이 어딘가 비정상적이라고 느낄 것이며, 어머니에게 내재된 공포를 감지할 것이다.

또다른 연구는 유전자설을 더욱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캐나다의 연구자들은 출생 후 곧바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들을 추적했다. 그 결과 쌍동이 중 한명이 공포증을 가지면 다른 한명도 같은 공포증으로 시달릴 확률이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부터 공포증이 유전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공포증은 당신의 머리 색깔이나 타고난 재능처럼 유전될 수 있는 것이다.

불안 해소하는 행동주의 치료

물에 대한 공포를 갖는 사람의 머리를 절대로 물에 집어 넣을 수 없다. 이 공포에 대한 치료는 보통 수영장에서 강사의 지도로 이뤄진다. 강사는 그의 '학생' 들에게 처음에는 물 밖에서, 그 다음에는 물이 담긴 그릇에 얼굴을 넣고 적절히 호흡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 다음 순서는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한편 비둘기공포증은 꽤 생소한 종류의 공포증이다. 이 공포증을 갖는 사람은 비둘기들이 많이 모인 거리 광장 고가도로를 피해 다닌다. 어떤 위협이 이 공포증을 유발했을까. 비둘기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더럽고 병을 옮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공포는 사실 정상적인 현상이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모든 공포증은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익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물을 보면 깜짝 놀란다. 또 승강기가 추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승강기 타는 것을 겁낸다. 그러나 누구도 옷걸이나 데이지꽃에 대해 공포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즉 공포증은 방어 메커니즘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공포증 환자는 회피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그들의 전 생애는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극을 피하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예를 들어 수줍음을 타는 사람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사회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얘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집 밖에 나설 수 없다.

또한 공포증 환자는 고통의 원인과 절대 직면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환자가 그것을 회피할수록 고통은 커진다. 자신의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어떤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고 느낀다. 결국 공포증 환자는 불안 그 자체를 무서워하게 된다.

승강기공포증은 정말 큰 문제다. 도시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계와 마주쳐야 한다. 물론 계단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고층 빌딩을 설계하는 현대의 건축가들은 더이상 계단을 만들지 않는다.

승강기공포증 환자들은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 12개의 과정으로 이루어진 행동주의 치료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우선 '이완 기법'이 필요하다. 환자는 특정한 이미지를 이완 상태와 연결시킴으로써 긴장을 이완시키는 법을 배운다. 다음으로 공포성 자극을 환자에게 준다. 처음에는 말로, 그 다음에는 사진을 보여주며 불안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환자는 차츰 이 자극을 마음에 그려보며 의식 속에서 접근한다. 이후 환자는 이완을 유발하는 자극을 떠올림으로써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다. 그 결과 환자는 불안의 실제 대상(승강기)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단순히 환자와 공포대상의 대면인가. 위험한 것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환자와 그의 불안 사이에 이완작용을 일으키는 다른 자극을 삽입함으로써 '자극-불안' 관계를 '자극-이완' 관계로 바꾼다는 점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치료된' 사람은 공포의 대상을 봄으로써 이완의 계기를 얻는 것이다. 만일 이완이 안돼도 최소한 무관심하게는 된다.

이 방법은 우리의 일상적인 공포를 진정시킬 때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두운 방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주문을 외우거나 어떤 의식을 행하면 공포는 금방 진정된다. 그는 어두움과 공포의 연관성을 분리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동주의 치료에 사용되는 원리다.

거미공포증 없앨 수 있다

군중에 대한 공포는 사회공포증이 아니라 넓은 장소에 대한 공포인 광장공포증에 속한다. 거대한 군중에 갇힌 느낌 때문에 환자가 압박감을 받는 것이다. 이 공포증 환자는 보통 큰 백화점이나 고속도로처럼 높은 곳이나 넓은 장소를 두려워한다. 그 결과 환자는 집 밖의 모든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기도 한다.

환자는 동행인 없이 더 이상 집 밖에 나가기 어렵다. 게다가 바깥 세계와의 접촉을 피할 구실과 핑계를 항상 찾는다. 예를 들어 아기를 가진 여자는 임신을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좋은 구실로 여긴다.

심리치료가들은 항우울제 종류의 약물을 처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약을 복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독' 의 위험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항우울제는 의존성이 없기 때문에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약을 끊기 쉽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재발의 문제는 남는다. 약물 치료가 일단 성공해도 그것이 재발될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는다. 항우울제로 치료받은 환자의 50% 정도에서 언젠가 증세가 재발할 것으로 추측된다.

어느 비오는 토요일 오후, 런던동물원에서는 이상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30명의 여자들이 최면에 걸려 팔을 벌리고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이들은 영국에서 유명한 '거미의 친구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거미공포증을 갖고 있으며, 이 과정이 끝나면 이 증세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그는 불과 서너시간 안에 거미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최면에 걸린 참가자들을 거미 전시실로 데려가 점점 더 큰 거미에 접근해서 만지게 한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참가자들이 크고 털이 많이 난 거미를 손에 쥐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제 그들은 거미 공포를 극복했다는 증서를 받고 평온한 기분으로 그곳을 떠난다. 이 공포는 몇시간 전만 해도 극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거미에 대한 이성적인 설명, 최면, 단체 참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 경쟁심을 품기도 하고 격려도 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날 30명의 여자들 중 25명이 털 많고 거대한 거미를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는 이 충격요법에 회의적이다. 단 한번의 과정을 통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포증세가 심각한 사람이 불안의 대상에 용감하게 맞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경우 자극은 증폭되고 병은 더 심해진다. 심지어 심혈관 천식 혈압 위궤양 등의 병리현상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공포증 환자는 스스로 공포를 극복하려고 무리하게 애써서는 안된다.
 

크고 털이 많은 거미를 손에 쥐는 순간, 거미 공포는 극복된다.


행동을 바꾸면 정신이 변한다

스스로 공포증을 이겨낸 예외적 사례는 사회공포증의 일종인 무대공포증에서만 볼 수 있다. 아더 루빈스타인이나 파블로 카잘스 등의 예술가들도 평생 이 공포증과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심리치료가들에 따르면 '이완' 을 골자로 한 긴 훈련을 거쳐야 진정으로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다. 그 결과 환자들은 신체와 조화를 잘 이루고 불안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즉 신체와 정신 사이에 균형상태가 이뤄지는 것이다.

훈련 프로그램의 한 연구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그 반대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즉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정신에 심리학적 영향을 미치고 공포증을 치료할 수 있다."

 

199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피에르 헤랭·정-크리스토프 그랑제

🎓️ 진로 추천

  • 심리학
  • 의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