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튀링겐 주는 바이마르라는 도시로 유명합니다. 괴테와 실러, 니체가 활약한 독일 고전문학·철학의 중심지죠. 이번에 소개할 연구소는 바이마르에서 철도로 20분 거리에 있는 예나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예나는 생태학의 중심지입니다. 1800년대 후반 예나대 교수였던 생물학자 헤켈이 ‘생태학(Okologie)’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냈거든요. 그 전통을 이어 받아 현재는 막스플랑크연구소 중 생물 분야의 연구소가 3개나 예나에 모여 있습니다.
이색 생물학 엿보는 재미
그중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에서는 식물과 곤충의 상호관계를 연구합니다. 식물 중에는 곤충과 독특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 박각시나방(Manduca sexta)의 애벌레는 야생담배의 잎을 갉아먹는 천적입니다. 야생담배는 이런 애벌레를 쫓기 위해 ‘초록잎 휘발성물질(Green leaf volatiles)’이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박각시나방 애벌레가 다 자라 나방이 되면 야생담배의 꽃가루를 멀리 다른 꽃에 묻혀 수정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밤중에는 야생담배가 오히려 박각시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향기물질을 내뿜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런 ‘이중생활’은 평범한 실험으론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화학생태학연구소에서는 ‘윈드터널’이라고 하는, 가로 2m, 세로 5m, 높이 2m 정도 되는 유리로 만든 방안에서 실험을 합니다. 유리로 된 방은 빛과 내부 공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빛과 향기에 의해 식물과 곤충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는지 연구하기엔 적격이죠. 실험용식물을 재배하는 온실도 꼭 구경해 보세요. 보통 연구소에서는 애기장대와 같이 실험에 최적화된 소수의 식물만을 키우지만, 이곳에서는 수십 가지의 다양한 식물과 곤충을 키우고 있습니다.
화학생태학연구소와 5 분 거리에 있는 생지화학연구소(Biogeochemistry)와, 인접한 휴먼히스토리연구소(Science of human history)도 흥미롭습니다. 생지화학연구소에서는 기후변화로 생물이 변하는 모습을 추적합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동토의 미생물 조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구과학의 관점에서 연구하죠. 휴먼히스토리연구소는 최근에 생겼습니다. 생물학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데, 과거 흑사병이 창궐했던 이유를 밝히기 위해 당시에 사망한 사람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식입니다.
과학 전통이 살아있는 예나
독일은 오랫동안 예나에 과학 투자를 해왔습니다. 동독 시절에는 북한 과학자들이 예나에 와서 유학을 많이들 했다고 해요. 통일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생기고 칼 자이스 같은 세계적인 광학기계 회사도 발전했고요. 주민들도 대부분 연구원이나 학생이어서 도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젊고 자유롭다고 합니다. 광학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이 잘 꾸며져 있다고 하니, 자전거를 타고 연구소와 함께 쓱한번 둘러보길 바랍니다. 여행에 식도락이 빠질 수 없겠죠. 아쉽게도 막스플랑크연구소 내에는 그럴싸한 식당이 없습니다. 튀링겐 주 사람들이 워낙 그릴요리(고기나 생선을 석쇠에 구워먹는 것)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쉬운 대로 예나 도심에 있는 소시지 가게를 추천합니다. 언뜻 정육점처럼 생겼는데, 빵 사이에 구운 소시지를 끼워 팝니다. 저도 먹어보진 않았지만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