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과학분야 웹사이트 중 하나인 ‘브릭(BRIC)’이 5월로 서비스 개시 20주년을 맞았다. 브릭은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 당시 생명과학자들이 집단지성으로 연구부정을 밝혀내면서 유명해진 웹사이트다. 경북 포항에서 브릭 운영진을 만나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5년 12월 5일 새벽, 브릭의 익명게시판인 소리마당. ‘anonymous’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용자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논문의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날 새벽, 자신을 박사과정이라 밝힌 아이디 ‘아릉~’ 사용자가 황 교수의 논문에서 DNA 지문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올렸다. 의혹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전문가들이 검증에 나섰다. 브릭 사용자들의 지적을 계기로 문제의 초점은 생명윤리에서 연구부정으로 확장됐다. 나중에 이 의혹들은 사실로 밝혀졌다.
국내 웹 역사와 함께 시작되다
브릭(BRIC)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의 줄임말이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는 생물학, 농림수산식품학, 의생명학 등 생명과학분야 전반의 연구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포스텍(포항공대) 소속 기관이다. 1995년 한국과학재단이 과학의 12개 분야에서 연구정보센터를 선정해 지원했는데, 이 중 하나로 뽑혀 그해 10월 설립됐다(초대 센터장 남홍길 당시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센터명과 같은 ‘브릭’이라는 이름으로 1996년 5월 1일 웹서비스를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운영 중인데, 생명과학 전공자는 물론 해당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 사이에선 대형포털만큼 유명하다. 회원수는 과학기술인(5만1110명)이 일반인(1만1130명)보다 많다. 3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방문수(IP)는 3만7000에 이르는데, 국내 과학 분야 웹사이트 중 최상위권이다.
브릭을 방문하는 사람은 크게 네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먼저 국내외 생명과학 분야의 최신 뉴스와 동향을 엿볼 수 있다.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생명과학자와 그들의 연구도 볼 수 있다. 학술대회, 채용·구직정보, 연구비 지원 등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학회나 세미나의 VOD, 실험 Q&A, 설문조사, 생물종 정보 제공 서비스 등이 있다.
방대한 정보량과 회원수를 떠나서 20년째 계속 운영해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1996년이면 국내에 웹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운영된 웹사이트는 국내에 거의 없다. 브릭은 국내 웹사이트에서는 화석과도 같은 존재다.
생명과학자의 전당이 되다
12개 연구정보센터 중 브릭이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비결은 따끈따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덕분이다.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 줄여서 ‘한빛사’는 브릭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서비스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저널에 논문을 싣거나 동료 연구자들의 추천을 받은 과학자를 선정해, 인적사항과 연구분야, 인터뷰를 수록한 일종의 ‘인명사전’이다. 연구성과가 우수한 한국 생명과학자는 거의 다 올라와있다고 보면 된다. 2002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5000명가량이 등록됐다.
실무자가 10명뿐인 작은 조직에서 전담자 한 명을 포함해 총 네 명이 관리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브릭에서 한빛사의 비중은 크다. 실무진은 무려 180개 학술지에 올라오는 논문들을 주기적으로 검색한다. 저자의 이름이 한국인으로 보일 경우 이메일로 연락해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에는 연구의 초기 발상, 연구 중 에피소드, 연구를 하면서 느낀 보람과 자부심 등이 포함된다. 한빛사 운영을 맡고 있는 박지민 팀장은 “교신저자보다는 제1저자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며 “박사후연구원 같은 젊은 과학자의 연구성과를 널리 알려 사기를 북돋워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2003년 미국 UCLA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던 중 한빛사에 소개됐던 김상욱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한빛사 인터뷰를 계기로 나 스스로 과학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부터 브릭의 2대 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때 UCLA에 한국인 박사후연구원이 200명쯤 있었는데, 한빛사에 인터뷰가 실리니까 주위에서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내 연구 성과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해외 한국인 과학자들 사이에선 그만큼 한빛사의 권위가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한빛사에 소개되면 한국 간다(교수로 취직한다는 의미)’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까요.”
대학원생은 선배 연구자가 문제를 돌파한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엿볼 수 있고, 중견급 연구자는 같이 연구할 동료를 찾을 수 있다. 김 교수는 “한빛사는 커뮤니티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정보”라며 “브릭이 연구자 커뮤니티로 성공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
2002년 ‘잡(Job) 공감’이라는 게시판이 개설돼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사용자가 늘면서 2004년 ‘소리마당’이라는 게시판으로 확대됐다. 바로 다음해에 일어날 일을 예견했던 걸까. 2005년 12월, 소리마당에 연구부정을 고발하는 익명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브릭에선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누구든 글을 쓸 수 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1998년부터 일해 온 이강수 브릭 실장은 “생명과학자들의 ‘대나무숲’이 됐다”고 말했다.
Q. 비로그인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관리하는 입장에선 비로그인 제도가 굉장히 비효율적이죠. 악성 활동자를 차단하기 어려워요. 정제된 글이 올라오기 어렵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용자를 신뢰한다는 정책을 펴고 있어요. 누가 잘못된 글을 올려도 연구자 집단의 자정작용이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죠. 그리고 익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그걸 들어줘야 해요. 브릭의 소리마당에는 연구현장에서 겪는 심각한 고민들이 매일같이 올라와요. 긴 세월 그걸 보다보니 제 가슴 한편에도 응어리가 맺혔어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뭐라도 하고 싶어요.
Q.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브릭에서 과학자들의 부당한 처우문제, 연구부정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종종 해요. 기사화가 되도록 노력도 하고 정책자료집을 만들기도 했지만, 열악한 상황이 잘 바뀌지 않아요. 그동안 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집단지성을 모아 개선점을 찾는 데 주력하려고 해요. 좋은 연구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과거처럼 투자만 늘려선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어요. 연구를 잘 한다는게 과연 뭘까요, 천재적인 사람 몇 명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거? 그런 건 20~30년 전에 지나갔어요. 지금은 다양한 연구분야가 융합되고, 연구기간이 길어지고 대형화됐잖아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해졌어요. 갈등해결이나 신뢰확보가 연구 성과에 큰 영향을 미쳐요. 저는 브릭이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일종의 사이버인격체랄까. 좀 미친 생각이지만.
황우석과 광우병으로 명성을 얻다
“무서웠어요.” 1998년부터 실무진으로 브릭을 이끌어 온 이강수 실장은 접속자가 폭주하던 2005년 말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황 교수의 논문에 의혹을 제기한 글이 연달아 올라왔을 때였다. 서버에 과부하가 걸려 게시판 접속이 안 될 정도였다. “내부적으로 결심한 게 있었어요. ‘어떤 압력이 있어도 글은 절대 못 지운다. 과학자들이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항의전화도 많이 받고, 센터장이 정보기관에도 불려 다니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사무실이 포항에 있어서 다행이었죠. 황 교수 지지자들이 직접 찾아오진 않더라고요. 대신 전화로 욕을 엄청 먹었어요. 글을 안 지운다고. ‘연구도 못하는 것들이 위대한 연구자를 못 알아본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죠.”
당시 이 실장은 최용주 팀장과 함께 소리마당을 24시간 관리했다. “제가 그때부터 새벽잠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최 팀장이 새벽 2~3시까지 관리하면 제가 새벽 4시부터 관리하는 식으로 밤새 매달려있었죠. 화장실만 갔다 오면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려있고, 모니터링 자체가 힘들었어요. 비과학적인 이야기나 사실 왜곡, 욕설이 오고가면 제재를 해야 돼요. 그걸 방치하면 커뮤니티 전체가 다 이상해집니다. 안 하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 같아요.”
이 실장은 황우석 사건을 겪은 뒤 버릇 하나가 생겼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브릭에 접속해서 소리마당을 보는 것이다. 밤새 무슨 일이 없었나 살펴보고, 아침 인사를 한다. “소리마당은 애정이 많지만 가장 관리하기 까다로운 서비스예요. 지금도 게시판에서 두 가지는 금지해요. 종교와 정치 이야기. 그걸로 논쟁이 붙으면 전문가 집단이란 정체성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이 오가는 게 어려워져요.”
황우석 사건 뒤에도 고비는 여러 번 있었다. 광우병 논쟁,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 활동에 대한 논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메르스 등 전염병이 돌 때마다 브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본의 아니게 ‘연구부정 제보의 메카’가 되면서 각종 제보가 쏟아졌다. 강수경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부정 제보가 처음 올라온 곳도 브릭이었다.
“심지어 천안함 사건 때도 과학적인 논쟁이 치열했어요. 보고 있자니 좀 서글프더라고요. 생명과학과는 상관없는 주제잖아요.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얼마나 없으면 여기 와서 이럴까…. 아쉬웠어요. 전문가 집단의 토론이 사회에 주는 신뢰성이 있거든요. 외국에선 물리나 화학 분야에서 활성화된 과학자 커뮤니티 사이트가 가장 먼저 나왔다고 해요.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깊이 있고 진지한 토론을 펼치고 싶은 욕구가 과학자들에게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이트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