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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당신은 오늘 몇 발자국의 질소를 남겼나요?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미세먼지 주의보. 올봄 한국인들은 언제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답답한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마스크 쓰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심각해진 미세먼지 오염의 이면에는, ‘질소발자국’이라는 불편한 자취가 남아있다.


직장인 A씨의 하루. 수트를 챙겨 입고 아침으로는 간단히 빵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승용차를 몰고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쯤. 늘 그랬듯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업무를 시작했다. 점심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소불고기를 먹었고, 업무 중 간식으로 과자를 먹었다. 저녁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식집에서 일본산 청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오늘 A씨가 활동하면서 지구에 배출한 것은 탄소뿐이 아니다. ‘질소’화합물도 100g이 넘는다.

질소화합물은 공기의 약 78%를 차지하는 질소(N2)와 다르다. 질소와 다른 원소의 화합물이며, 대기 오염을 일으키는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의 주요 구성 성분이다. 질소는 다른 물질과 잘 반응하지 않는 안정한 물질이다. 하지만 질소화합물은 화학반응을 통해 유해물질을 생성한다.

질소산화물(NOX)의 한 종류인 이산화질소(NO2)는 햇빛과 반응해 오존(O3)과 초미세먼지(PM2.5)를 만들어 스모그를 일으킨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질소산화물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질소산화물은 공장과 자동차, 선박, 비행기의 배기가스 등에서 나온다. 토양에서 강과 바다로 유출된 질산성질소(NO3-)는 조류의 먹이가 돼 녹조현상을 일으킨다. 질산성질소는 암모니아와 더불어 미세먼지의 주요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전세계 단위면적 당 질소화합물 배출량은 156t에서 185t으로 18.6%나 증가했다. 2010년 질소화합물 배출량의 75%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일 정도로 통제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점차 커지고 있는 질소화합물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2012년 처음 등장한 개념이 바로 ‘질소발자국’이다. 2006년부터 대중적으로 알려진 탄소발자국에 비하면 생소한 개념이다. 질소발자국 역시 탄소발자국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생활과 소비활동을 할 때 배출되는 질소의 양을 뜻한다. 직장인 A씨의 예에서 언급된 100g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질소 배출량 36kg(2010년 기준)을 하루치로 환산한 값이다.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여섯 가지 온실가스 중에서 전체 배출량 중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따라서 연구가 많이 이뤄졌고,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높다. 그에 비해 질소화합물 계열인 아산화질소(N2O)는 온실가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6%에 불과해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 하지만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대기 중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같은 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300배 가량 더 크다.

또 이산화탄소가 인체에 무해한 반면, 질소화합물은 직접적으로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조영민 경희대 환경학및환경공학과 교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서 확산되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인 반면 질소화합물은 공기와 물, 그리고 토양을 ‘오염’시키는 유해물질”이라고 말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이 포착한 전세계 대기 중 이산화질소(NO2) 오염 정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붉은색).


한국은 세계 7위 질소화합물 배출 기여국

호주 시드니대 물리학부 맨프레드 렌젠 교수팀은 전세계 188개국의 질소발자국을 계산해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1월 25일자에 발표했다(doi: 10.1038/NGEO2635). 지금까지 발표된 질소발자국 연구 결과 중에서 가장 많은 나라의 질소발자국을, 가장 구체적으로 분석한 성과다.

연구팀은 질소화합물의 나라별 배출 총량을 계산하기 위해 일종의 ‘질소화합물 가계부’를 작성했다. 나라별로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화합물 데이터를 취합해 계산했다.

연구팀은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비료산업협회(IFA)의 통계자료를 활용했다. 질산성질소(NO3-)와 암모니아(NH3), 아산화질소(N2O) 등 질소화합물의 상당량이 농업과 목축업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업과 교통 등 주로 소비와 관련된 분야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데이터는 유럽연합에서 제공하는 국제대기연구를 위한 배출량데이터베이스(EDGAR)를 썼다. 여기에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제공하는 연료 소비 데이터, 국제연합(UN)의 쓰레기 관련 질소화합물 발생 정보 등을 더했다.

분석 결과 2010년 1년 동안 전세계 188개국에서 배출한 질소화합물에 포함된 질소의 총량은 약 1억8900만t이었다. 그 가운데 85.2%인 1억6100만t은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 배출됐고, 나머지 2800만t은 소비자들이 배출한 쓰레기에서 나왔다. 배출량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과 인도, 미국, 그리고 브라질에서 전세계 질소의 거의 절반(47%)을 배출해 상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질소 배출 상품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양을 기준으로 주요 배출 국가를 따져보면 일본과 독일, 영국, 홍콩이 50% 이상으로 상위였다. 이는 중국과 인도 등의 나라에서 배출한 질소화합물의 일부가 일본과 독일 등 여러 나라에 상품을 수출하면서 나왔다는 뜻이다. 질소발자국을 계산할 때는 이 양을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라 일본이나 독일에 포함시킨다. 연구팀은 한 나라가 수입한 상품에 포함된 질소 배출량(수입량)에서 그 나라가 수출한 상품에 포함된 질소량(수출량)을 뺀 값을 구해 비교했다. 한국은 총 수입량이 총 수출량보다 더 많은 나라 중 7위였다. 상품을 수입해서 발생시킨 질소가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배출한 양보다 1000만t 더 많았다.
 
연구팀은 무역으로 인한 배출량과 국내 배출량을 함께 고려해 국민 개개인의 연간 질소발자국을 계산했다. 한국인의 질소발자국 36kg은 세계 평균인 27kg보다 높은 수치다. 국민 한 사람당 가장 많은 질소를 배출한 나라는 홍콩으로 1인당 연간 약 224kg을 배출했다. 이는 홍콩의 지리적 특성 상 먹거리와 상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파푸아뉴기니,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는 1인당 배출량이 7kg도 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가 가난한 나라보다 질소 배출량이 10배 이상 많았다. 논문의 제1저자인 아루니마 말릭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육류와 고도의 가공식품, 에너지집약형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소비하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고기와 의류로 질소 배출

연구팀은 2010년 전세계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 배출한 질소 1억6100만t 가운데 26%인 4180만t은 국제 무역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연구팀은 질소화합물 수입국과 수출국 사이의 수출입 품목과 양을 분석했다. 예컨대 한국은 생산 과정에서 질소화합물을 배출하는 어떤 물건을, 어느 나라에서 많이 수입하는지 세부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수입하는 상품에 포함된 전체 질소 배출량의 15%가 미국에서 육류를 생산, 가공, 수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의 육류 수입이 미국 중서부 지역의 공기 및 수질오염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툴레어 카운티 지역의 식수는 비료와 거름에서 나오는 질산성질소(NO3-) 오염이 심각하다. 주민들은 식수를 사먹을 수밖에 없는데, 거주자의 15%를 차지하는 저소득 라틴계 주민들에게는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 수인성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다. 캘리포니아 주 농산물 수출 통계(201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홍콩 포함)과 일본 다음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소고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의복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팀은 한국의 질소 배출 상품 수입량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25%)이 중국에서 오는 의류라고 분석했다. 그로 인한 공기 및 수질오염 피해는 중국남부 광둥성과 동부 산시성 신장 지역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광둥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섬유, 직물, 염색공업 지역이고, 신장은 주요 면화 생산지다.

질소화합물이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면 녹조를 유발하고 어류 폐사를 일으킨다.


질소 오염 해법, 소비자 선택이 중요해

현재 대부분의 나라는 초미세먼지나 수질오염 문제 등 자국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오염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산업 분야와 달리 농업 분야에서는 농민들의 자발적인 실천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질소화합물 배출량 조절이 쉽지 않다.

대안은 결국 소비자들의 관심과 실천이다. 김용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산업체에서 질소화합물 배출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인식과 실천도 무척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질소발자국이 큰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대 환경과학과 제임스 갤러웨이 교수팀은 2014년 학교나 기관 단위로 질소배출을 줄일 수도 있다고 국제학술지 ‘환경연구레터스’에서 밝혔다(doi: 10.1088/1748-9326/ 9/11/115003). 2010년 버지니아대에서 배출한 질소화합물을 분석한 결과, 질소발자국을 고려해서 교내 식음료 공급과 전기에너지 소비, 하수처리 방식을 개선하면 2025년까지 최대 18%까지 질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상품별 질소발자국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하고,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선택이 질소발자국을 줄이는 쪽에 맞춰지면 소비국과 생산국의 산업 및 무역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그에 맞게 변할 수 있다. 말릭 연구원은 “개개인이 음식물 소비와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체 질소화합물 배출량의 14.8%는 생활쓰레기에서 나온다.

201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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