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둑, 투두둑’ 비가 내린다. ‘쉬이이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철썩’댄다. 깊은 바닷속에서는 고래 떼가 ‘우웅’ 소리를 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판의 경계에서는 ‘쿠구궁’하며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난다. 이처럼 지구는 다양한 소리를 끊임없이 만든다.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밝혀내는 사람들이 있다.

1970년대 영국 브리스톨 시. 주민들은 몇 날 며칠째 끊임없이 들려오는 작은 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디젤 엔진이 떨리는 것처럼 나지막이 윙윙거리는 이 소리 때문에 주민들은 두통을 호소했고, 심지어 일부 주민은 코피가 났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멕시코 주의 타오스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웅웅거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라는 뜻의 ‘험(Hum)’이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은 지진의 여파로 지구 전체가 미세하게 떨릴 수 있으며, 민감한 일부 사람들이 이를 마치 소음이 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과학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지진이 나지 않았는데도 지진계가 미세하게 떨렸던 것이다.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이 미세한 진동은 주기가 3초(주파수는 약 0.3Hz)에서 길게는 300초(주파수는 약 0.003Hz)까지 나타났는데, 과학자들은 특히 30초 이상의 장주기 지진파를 험이라고 정의했다.
험의 정체를 밝힐 실마리는 2000년대 초반, 바다에서 발견됐다. 먼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Infragravity wave, 장주기중력파)의 진동 특성이 험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파브리스 아드휴인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장주기중력파는 파고가 수 cm에 불과하고 물마루 사이의 거리(파장)는 20km가 넘는, 매우 미세한 진동”이라고 설명했다.
곧바로 장주기중력파가 험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연구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첫 번째 가설에 따르면 먼 바다에서 치는 장주기중력파가 직접 울퉁불퉁한 해저 면을 눌러서 진동을 만들어낸다. 이 진동이 땅을 통해 전파돼 지진계에 기록된다. 두 번째 가설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장주기중력파가 서로 충돌할 때 생긴 진동이 해저면에 전해져 험을 만든다고 본다.
아드휴인 박사팀은 최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두 가설을 시험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doi:10.1002/2014GL062782). 그 결과, 주기가 30초 이상인 험은 첫 가설에 따라 만들어지고, 이보다 주기가 짧은(3~30초) 다른 미세 지진파는 두 번째 가설에 따라 생긴다는 게 밝혀졌다. 아드휴인 박사는 “두 번째 가설처럼 파도 충돌로 험이 만들어지려면 파도의 파장이 바다의 깊이보다 훨씬 짧아야 한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장주기중력파의 파장은 11km보다 긴 반면, 바다의 깊이는 항상 이보다 얕다”고 말했다(바다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최대 수심이 약 11km다). 그는 “파도가 해저면에 직접 주는 영향에 비해 파도 충돌 효과는 10억 배 정도 약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이 들었다는 요상한 소음은 뭘까. 이원상 극지연구소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은 “험은 아주 미세한 지진파이기 때문에 설사 그 에너지가 대기 중 음파로 전달된다고 해도 사실상 사람이 듣기는 어렵다”며 “일부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집중적으로 보고된 걸 보면, 지형이 소음의 주파수를 증폭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소음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지만, 험을 연구한 덕분에 과학자들은 지구의 다양한 속성을 알게 됐다. 대표적으로, 험을 이용해 깊숙한 지구 내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아드휴인 박사와 함께 연구한 프랑스 지구물리학연구소의 루이스 구알티에리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X선으로 인간 몸 안을 보는 것처럼 지진파로 지구 내부를 볼 수 있다”며 “특히 험은 초저주파라 에너지 감쇄가 덜하고 다른 지진파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스캔 결과물의 해상도가 높다”고 말했다.



인프라사운드는 대기권을 통해 퍼지는 20Hz 이하의 저주파 음파다. 가청주파수 이하의 음파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소리’로도 불린다. 그 탓에 대중에겐 험과 함께 미스터리 소리로 알려졌는데, 사실 인프라사운드는 정체가 명확하다. 대규모 지진이나 해일, 화산폭발, 운석 낙하, 오로라 등 자연현상이 원인이다. 지하핵실험, 지표 발파, 폭발사고, 로켓발사 등 인공 음원에서도 나온다.
인프라사운드는 냉전 시대에 처음 주목 받았다. 구 소련과 미국이 서로의 핵실험을 감시하려고 인프라사운드를 관측하기 시작했다. 저주파인 인프라사운드는 고주파 음파에 비해 에너지 감쇄가 적어 먼 거리에서도 신호가 잘 잡힌다. 예컨대, 1000Hz 음파는 7km를 전파했을 때 에너지의 90%가 대기에 흡수되지만, 0.01Hz 음파는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1963년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되면서 연구가 거의 중단됐는데, 30여 년이 흐른 1996년 유엔(UN)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하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핵실험을 감시하기 위한 주요 기술로 지진파, 수중음파, 핵종감시와 함께 인프라사운드를 채택했다. 전세계에 60개 인프라사운드 관측소가 구축 중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1999년 미국 남부감리교대(SMU)와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그 해 강원 철원에 첫 관측소를 설치했고 현재는 대전, 백령도, 울릉도, 연평도, 강원 양구, 강원 고성, 경기 김포 등에도 설치돼 총 8개소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언론은 지진파와 함께 ‘공중음파’가 나왔다고 보도하는데, 이 공중음파가 바로 인프라사운드다. 지하 수 km에서 발생하는 규모 5.0 이하의 자연지진은 주로 지진파만 전파되고 대기 중으로 소리가 퍼지지 않는 반면 지표면에서 가까운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면 지진파와 함께 소리도 전파된다. 제일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관측되는 규모 2~3 사이의 약한 지진은 파형만으로는 자연지진인지, 인공지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며 “인프라사운드를 측정하면 인공지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사운드를 통해 운석 낙하나 주변국의 화산 폭발 등 자연현상도 연구할 수 있다. 실제로 제 연구원팀은 지진파와 인프라사운드 관측소에 잡힌 음파를 분석해 2014년 3월 경남 진주에 떨어진 진주운석56의 궤도를 추정했다(doi: 10.1007/s12303-015-0034-1). 운석이 대기권에 들어오면 초음속으로 떨어지는데, 이 때 ‘소닉 붐’이라고 부르는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 충격파 에너지가 공기의 밀도를 변화시키면서 음파 형태로 땅까지 전파된다. 연구팀은 진주운석이 직선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하고 기록된 음파를 토대로 궤적을 역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태안반도 상공에서 입사각 44°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블랙박스 영상을 이용해 추정한 궤적과도 거의 일치했다. 제 연구원은 “운석이 자주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인프라사운드로 궤적을 구하는 일이 흔하다”며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은 인프라사운드를 앞으로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에서는 파도, 비, 동물, 해빙, 배 등 수많은 이유로 소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파는 물속에서 길게는 수천 km까지 전파된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진동하는 전자기파는 극성을 띤 물 분자에 쉽게 흡수되는 데 비해, 음파는 매질의 밀도를 변화시키며 전달돼 에너지 감쇄가 덜하다.
인간은 배나 어군을 찾으려는 특별한 목적으로 수중음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이용한 건 100년 전부터다. 1912년 영국의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한 뒤,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레지날드 페센덴은 ‘능동 소나’를 개발했다. 능동 소나란 음파를 쏴서 목표물에 맞고 반사된 음을 감지해 위치와 거리 등을 알아내는 장비다. 수중 레이더인 셈이다. 그는 2마일(약 3.2km) 밖의 빙산을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부터는 적군의 함정과 잠수함을 찾기 위해 수동 소나가 이용됐다. 수동 소나는 능동 소나와 달리 음파를 인위적으로 쏘지 않고 물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장비다. 전후 냉전시대에 미 해군은 해저에 길다란 수중음향 감시시스템(SOSUS)을 설치해 구 소련의 잠수함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미 해군은 1991년 이 자료의 일부를 과학자들에게 공개했고, 덕분에 수중음향을 과학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물 속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지구의 다양한 현상을 간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최지웅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바다에서 비가 내리면 물속에 미세한 공기방울이 생겨 진동하면서 소리를 내는데, 이를 분석하면 강수량을 추정할 수 있다”며 “특히 풍속과 파도의 높이, 파도 소리는 비례 관계가 명확한 편이라 파도 소리만 듣고도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국 뉴저지 주 해안가에서 파도 소리를 관측해 해저 지형을 유추한 연구 결과를 2008년 발표했다(doi:10.1121/1.2963048). 수심 별로 여러 개의 수중음향센서를 설치하면 파도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녹음된다. 해수면에서 바로 전파된 음도 있지만, 해저면을 맞고 돌아온 소리도 있다. 이를 분석하면 수심을 추정할 수 있다. 계산 결과는 실제 수심을 잘 반영했다. 그는 “특히 100Hz 정도의 저주파는 감쇄가 적어서 해저면을 뚫고 들어갔다가 반사돼 나온다”며 “이를 분석하면 해저면 아래에 모래층이 있는지, 진흙층이 있는지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중음향은 특히 지진을 관측하는 데 유용하다. 지진이 일어나는 판 경계는 대부분 바다에 있는데, 육상지진계는 관측 거리에 한계가 있어서 진앙의 위치가 바다일 때 지진의 위치와 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지진이 일어날 때 지진파 일부가 해저면에서 음파로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원상 연구원은 “해저면에서 나오는 음파는 수심 1000m 부근에 형성된 음파 통로인 ‘소파 채널(수온이 뚜렷하게 떨어지면서 음속이 가장 느려지는 영역)’을 통해 아주 멀리까지 전파된다”며 “수중음향센서가 관측할 수 있는 범위는 지진계에 비해 훨씬 넓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중음향센서를 이용하면 해상지진계와 비교해 10분의 1 이하의 노력으로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빙하 깨지는 소리로 해수면 변화 예측한다
극지에서는 빙하와 빙산이 내는 소리가 자주 포착된다. 독일 브레맨대 해양환경과학센터 미카엘 슐츠 교수는 2008년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한 ‘빙하 소리 듣기(Listening to glaciers)’라는 기고문(doi:10.1038/ngeo235)에서 “수중음향을 관측하면 빙하의 이동이나 빙산 충돌, 조수 흐름, 퇴적물 이동, 바람 작용 등을 감지할 수 있다”며 “육상에서 이뤄진 관찰 결과와 통합하면 빙상 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기후 변화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2014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5차 평가 종합 보고서에는 빙권과 관련한 항목이 추가됐다. 이원상 연구원은 “기후 변화로 물이 따뜻해지면서 부피가 커지거나, 육상에 있는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말했다. 빙권의 변화를 알아야 기후 변화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인공위성으로는 빙하가 다 녹고 난 뒤 대략적인 면적 변화만 파악할 수 있는 반면, 빙하 소리를 분석하면 빙하가 어디에서 얼마나 녹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이 소속된 극지연구소는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함께 남극반도 인근에 수중음향관측망을 설치해 연구 중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관측된 소리로 밝힌 극지의 여러 현상을 작년 ‘플로스원’에 발표했다(doi: 10.1371/journal.pone.0123425). 이 연구원은 “향후 30년간 수중음향을 관측해 남극 장보고 기지 주변의 빙권을 진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지의 빙하 소리는 기후가 빠르게 변하며 점점 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오리건주립대 해양자원연구협력연구소 하루 마쓰모토 교수와 이 연구원의 공동연구팀은 기후변화로 남극 빙산이 깨지는 소리가 증가하면서 바다에서 들리는 잡음이 많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2014년 6월 그리스 로도스 섬에서 열린 제2회 국제수중음향학회에서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바닷속 잡음이 증가해 고래 같은 생물이 짝짓기 활동에 방해를 받아 생태계가 변할 수 있다”며 “현재 NOAA와 후속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