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겐 고질병이 하나 있다. 건강 검진을 받으면 모든 항목에서 ‘정상’을 받을 정도로 건강한 편인데,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곤 예외 없이 배탈이 난다. 과민성 장 증후군이다. 병원에 가봐도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 이상은 들을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지만, 이 경우엔 장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됐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위장염과 항생제 사용으로 단기간에 장내 미생물이 파괴되면서 미생물총 구성이 바뀌면 과민성 장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10여 년 전 외국을 여행할 때 소위 ‘물갈이’라고 부르는 배앓이를 겪으면서 기자의 미생물총 구성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건강에 이롭지 못한 식단도 미생물총 구성에 영향을 주는데, 이는 마치 기름지고 섬유질이 부족한 현대의 식습관 때문에 비만이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2000년대 초반 인간 게놈 분석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을 때 과학계는 물론, 전세계인이 축배를 들었다. 그 여파로 지금도 DNA 연구가 유행이다. 모든 질병은 물론, 성격과 행동까지도 DNA의 영향으로 분석하려는 연구가 치열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몸의 90%를 차지하는 미생물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의 제1단계 결과가 발표된 뒤, 현대의 다양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특정 미생물군의 부재가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생물총 구성이 질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 책은 항생제 남용과 무분별한 제왕절개(아기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날 때 엄마의 질에서 필수 미생물을 얻는다) 등 현대의 의료 환경에서 비롯된 미생물 불균형이 우리의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더 나아가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 더불어 획기적인 치료법으로 꼽히는 대변 미생물 이식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논한다.
저자는 과민성 장 증후군을 가리켜 “사람들이 크게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적 유행”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도 자신의 설사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미생물총에 관심 있는 사
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몸속의 미생물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말한다. 인체의 90%, 미생물. 이제라도 내 몸을 지키는 작은 친구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148쪽 | 1만2000원
교토대 과학수업
우에스기 모토나리 지음 | 김문정 옮김 | 리오북스 | 248쪽 | 1만4000원
과학동아 기자들이 어떤 주제를 깊이 다루고자 할 때, 꼭 넣는 게 있다. 바로 역사다. 그게 재미를 더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위대한 과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연구 결과 뒤에 숨은 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추리하는 일로부터 독자들이 더 큰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걸까. 위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강의록 형식의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각각 물리학과, 화학•생물학의 위대한 업적을 훑는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이탈리아의 양자중력 연구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이탈리아 일간지 ‘솔레 24 오레’의 부록에 시리즈로 발표한 기고문을 엮은 책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양자중력 등 20세기 물리학을 바꾼 거대한 혁명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과 새로운 문제를 다뤘다. 현대 과학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교토대 과학수업’은 본격적으로 과학적 사고력을 가르치는 책이다. 벌써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에서 이과계열 학생들이 가장 치열하게 듣고 싶어하는 우에스기 모토나리 화학연구소 교수의 강의를 모았다. 그는 생물학과 화학 분야의 다양한 이론이 나온 과정을, 유명한 ‘스캠퍼(대치•결합•응용•수정•다른 용도로 사용•제거•재구성) 기법’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학생들이 이 기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독려한다.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현대 과학의 내용을 알거나, 갑자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작은 씨앗 같은 생각의 단초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교토대 과학수업’을 쓴 우에스기 모토나리 교수가 말했다. 강의는 추리소설의 복선을 쓰는 것과 같다고. 오늘 읽은 이 두 권의 책이, 언젠가 당신의 아이디어의 복선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됐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위장염과 항생제 사용으로 단기간에 장내 미생물이 파괴되면서 미생물총 구성이 바뀌면 과민성 장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10여 년 전 외국을 여행할 때 소위 ‘물갈이’라고 부르는 배앓이를 겪으면서 기자의 미생물총 구성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건강에 이롭지 못한 식단도 미생물총 구성에 영향을 주는데, 이는 마치 기름지고 섬유질이 부족한 현대의 식습관 때문에 비만이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2000년대 초반 인간 게놈 분석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을 때 과학계는 물론, 전세계인이 축배를 들었다. 그 여파로 지금도 DNA 연구가 유행이다. 모든 질병은 물론, 성격과 행동까지도 DNA의 영향으로 분석하려는 연구가 치열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몸의 90%를 차지하는 미생물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인간 미생물군 유전체 프로젝트의 제1단계 결과가 발표된 뒤, 현대의 다양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특정 미생물군의 부재가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생물총 구성이 질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 책은 항생제 남용과 무분별한 제왕절개(아기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날 때 엄마의 질에서 필수 미생물을 얻는다) 등 현대의 의료 환경에서 비롯된 미생물 불균형이 우리의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더 나아가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준다. 더불어 획기적인 치료법으로 꼽히는 대변 미생물 이식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논한다.
저자는 과민성 장 증후군을 가리켜 “사람들이 크게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적 유행”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도 자신의 설사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미생물총에 관심 있는 사
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몸속의 미생물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말한다. 인체의 90%, 미생물. 이제라도 내 몸을 지키는 작은 친구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148쪽 | 1만2000원
교토대 과학수업
우에스기 모토나리 지음 | 김문정 옮김 | 리오북스 | 248쪽 | 1만4000원
과학동아 기자들이 어떤 주제를 깊이 다루고자 할 때, 꼭 넣는 게 있다. 바로 역사다. 그게 재미를 더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위대한 과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연구 결과 뒤에 숨은 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추리하는 일로부터 독자들이 더 큰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걸까. 위대한 아이디어가 나온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강의록 형식의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각각 물리학과, 화학•생물학의 위대한 업적을 훑는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이탈리아의 양자중력 연구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이탈리아 일간지 ‘솔레 24 오레’의 부록에 시리즈로 발표한 기고문을 엮은 책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양자중력 등 20세기 물리학을 바꾼 거대한 혁명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과 새로운 문제를 다뤘다. 현대 과학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교토대 과학수업’은 본격적으로 과학적 사고력을 가르치는 책이다. 벌써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대에서 이과계열 학생들이 가장 치열하게 듣고 싶어하는 우에스기 모토나리 화학연구소 교수의 강의를 모았다. 그는 생물학과 화학 분야의 다양한 이론이 나온 과정을, 유명한 ‘스캠퍼(대치•결합•응용•수정•다른 용도로 사용•제거•재구성) 기법’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학생들이 이 기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도록 독려한다.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현대 과학의 내용을 알거나, 갑자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작은 씨앗 같은 생각의 단초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교토대 과학수업’을 쓴 우에스기 모토나리 교수가 말했다. 강의는 추리소설의 복선을 쓰는 것과 같다고. 오늘 읽은 이 두 권의 책이, 언젠가 당신의 아이디어의 복선이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