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의 스핀이 0이라면 원자 주위에 있는 전자들은 모두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옿일 수 있다.최외각전자가 따로 없다는 말이다.따라서 원소들은 모두 거의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나타낼 것이다.또 전자들은 같은 상태에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므로 어떤 수의 원자로도 쉽게 분자를 이룰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은 스핀이라고 불리는 물리량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 중성자, 양성자들은 스핀이 1/2이고, 광자, W, Z 입자들은 스핀이 1이다.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입자에 질량을 주는 데 관여하는 힉스입자(과학동아 8월호 특집 ‘가속기로 추적한 우주생성의 비밀’ 참조)는 스핀이 0이다. 그리고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자는 스핀이 2인 입자이다. 이와 같이 모든 입자는 일정한 스핀을 가지고 있으며,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스핀은 0, 1/2, 1, 3/2 등과 같이 1/2의 정수배의 값만을 가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스핀이란 무엇이고, 입자의 어떠한 성질들이 스핀에 의존하는가. 만일 세상에 존재하는 입자들의 스핀이 다른 값을 가진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이중에서도 특히 전자의 스핀이 0이 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회전과 무관한 입자 고유의 각운동량, 스핀
스핀(spin)이라는 용어를 들어보면 무엇인가 회전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스핀을 생각하기 전에 물체가 회전운동을 할 때 이러한 운동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살펴보자. 질량이 m인 물체가 원점에서 벡터r만큼 떨어져 있고, 속도가 벡터v이고 벡터r과 벡터v사이의 각도를 θ라고 하자. 이 물체는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려고 한다.
이 경우 만일 각도 θ가 0이라면 물체는 회전하지 않으며, 90도일 경우에는 일정한 크기의 속력에 대해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회전한다. 이러한 특징을 잘 설명하는 물리량이 바로 벡터인 각운동량이다. 각운동량의 크기는 L=mrv sinθ로 주어지고 그 방향은 오른손의 네 손가락을 엄지와 수직으로 펴고, 벡터r에서 벡터v로 네 손가락을 거머쥘 때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지면에 그림을 그릴 경우 지면에서 수직으로 나오는 방향이다.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 중심에 대해 각운동량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물체가 운동을 하기 때문에 가지는 각운동량을 ‘궤도 각운동량’이라고 한다. 따라서 입자가 정지해있을 때 궤도 각운동량은 0이다. 그렇다면 입자가 정지해있을 때 각운동량은 0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입자는 정지해있더라도 고유한 성질로 각운동량을 가지고 있다. 1922년에 독일 물리학자인 쉬테른과 게를라흐는 전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각운동량이 0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한편 파울리는 운동에 상관없이 모든 입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각운동량을 스핀 각운동량(이하 스핀)이라고 부르고 이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다. 이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업적으로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스핀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혼동하는 것이 있다. 스핀을 설명할 때 심지어는 물리학자들도 입자가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것이다.
입자가 정지해 있으며 공 모양으로 돼 있고, 중심에 대해 회전하고 있으면 각운동량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스핀 각운동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입자가 자전해 스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입자가 정지해 있어도 존재하는 입자 고유의 각운동량을 스핀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구조가 없는 점과 같은 입자이다.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회전할 수 없다. 또 궤도 각운동량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입자가 원점에 있으므로 궤도 각운동량은 없다. 따라서 스핀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입자가 자전해 생기는 각운동량이 아니라 입자 자체가 고유하게 가지는 각운동량인 것이다.
모이면 같은 상태 지향하는 보존
이제 스핀에 대한 이해를 했으니 각운동량에 대한 양자역학적 사실들을 잠깐 짚고 넘어가자. 각운동량은 고전적으로는 임의의 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처럼 띠엄띠엄한 값만을 갖는다. 궤도 각운동량의 최소 단위는 ħ이다(ħ는 플랑크 상수 h를 2π로 나눈 값이다. 재미있게도 이 값은 각운동량의 차원을 갖는다). 한편 스핀 각운동량의 최소 단위는 ħ/2이다. 따라서 궤도 각운동량과 스핀 각운동량을 다 합친 각운동량의 최소 단위는 ħ/2이고, 어떤 각운동량도 이 값의 정수배만 가질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플랑크 상수가 너무 작고 각운동량이 매우 크므로 거의 연속적인 값을 갖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자연계의 모든 입자는 스핀 각운동량이 ħ/2, 3ħ/2, … 처럼 ħ/2의 홀수 배인 ‘페르미온’과 0,ħ, 2ħ, … 등과 같이 ħ/2의 짝수 배인 ‘보존’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에 의하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들은 페르미온이고, 광자는 보존이다. 페르미온과 보존들은 똑같은 입자들이 여러개 모여 있을 때는 매우 다른 행동을 한다. 보존의 경우에는 같은 입자들이 모여있을 때는 서로 같은 상태에 있으려고 한다. 똑같은 상태란 에너지, 운동량 등 모든 물리량의 값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가 레이저다.
원자는 에너지가 높은 들뜬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 전자기파, 즉 광자를 방출한다. 물론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광자를 흡수해 높은 에너지 상태로도 옮겨갈 수 있다. 적당한 방법을 사용해 원자들을 특정한 들뜬 상태로 올려놓자. 그리고 이 들뜬 원자들이 다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갈 때 방출하는 광자와 같은 에너지를 가진 광자들을 주위에 놓아보자. 이 경우에는 광자가 보존이므로 들뜬 원자가 같은 상태의 광자를 내어놓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 계속 원자를 들뜬 상태로 옮겨 놓으면 이 원자들은 계속 같은 광자를 방출해 에너지 밀도가 매우 큰 광자 모임을 만들 수 있다. 집속력이 크고 에너지밀도가 높은 레이저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보존들이 서로 모이는 경향을 보인 것이 거시적으로 관찰되는 경우가 있다. 헬륨 원자는 스핀이 0인 원자들이다. 이들의 온도가 매우 낮아지면 보존인 헬륨 원자들은 서로 같은 상태에 있으려고 하면서 거대한 헬륨 덩어리를 만든다. 이 덩어리는 점성 없이 흘러갈 수 있다. 이러한 헬륨 액체에 유리관을 꽂아 놓으면 헬륨 액체는 유리관을 타고 솟아오를 수 있다. 이것을 초유체 현상이라고 한다(그림1).
수은과 같은 물질의 온도가 매우 낮아지면 저항이 전혀 없이 전류가 흐르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들은 페르미온이지만 한 전자가 원자핵으로 이루어진 결정 구조를 통과할 때는 그 전자가 결정과 상호작용을 해 두번째 전자가 바로 첫번째 전자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이루어진 전자쌍을 쿠퍼쌍이라고 하며 이들의 스핀 방향은 반대가 돼 쿠퍼쌍의 전체 스핀은 0이 된다. 이러한 쿠퍼쌍들은 보존이므로 주위에 같은 상태의 쿠퍼쌍들을 만들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따라서 이들이 모여 움직이며 전류가 흐를 때는 초유체처럼 행동하며 저항이 없게 된다.
배타적으로 따로 노는 페르미온
한편 페르미온은 보존과 반대로 두개의 같은 입자는 절대로 같은 상태로 같이 있지 않으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두개의 전자를 한 곳에 모아보려고 해보자. 전자가 똑같은 에너지와 스핀을 가지고 있다면 이 입자는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들을 한 곳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른 에너지를 갖게 하거나 다른 각운동량 값을 갖게 하면 된다. 전자의 스핀이 ħ/2이므로 한 축에 대해 각운동량이 ħ/2이면 다른 입자는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ħ/2의 값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외의 값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같은 에너지를 가진 두개의 전자를 한 곳에 놓으려면 스핀의 방향이 반대인 두 전자를 놓으면 된다. 같은 이유로 같은 에너지를 가진 세개의 전자를 한 곳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세번째 전자는 다른 두 전자 중 적어도 한개와는 같은 스핀을 갖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이려는 보존의 성질과는 반대로 따로따로 놀려고 하는 이와 같은 페르미온의 성질을 파울리는 ‘배타원리’라고 이름 붙였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자연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원소들의 화학적인 성질은 전자들에 의해서 나타난다. 전자들은 원자핵 주위를 돌아다니며 화학적인 결합을 형성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에너지는 1eV(전자볼트) 혹은 그 이하다. 이러한 화학적인 성질에 따라 분류한 원소의 주기율표는 전자들의 성질, 그 중에서도 특히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수소 원자는 전자가 한개만 있으니 어떤 스핀 값을 가져도 무방하다. 전자가 두개인 헬륨은 전자 두개가 스핀 값만 다르면 모두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전자가 세개인 리튬은 전자 두개는 반대의 스핀을 가지고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을 수 있지만, 세번째 전자는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으므로 더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배타원리를 차근차근 적용하면 모든 주기율표의 원소를 설명할 수 있으며 화학적인 성질을 결정하는 제일 바깥쪽의 전자들인 최외각전자들의 배열에 따라 화학적인 성질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최외각 전자가 하나인 리튬과 나트륨은 비록 질량이 다르더라도 화학적인 성질은 매우 비슷하다.
또한 전류가 잘 흐르는 도체의 성질도 배타원리에 의해 설명된다. 원자들이 여러개 모인 금속에서는 원자핵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고, 일부의 전자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자핵들을 규칙적으로 배열시켜놓고, 금속 전체가 전기적으로 중성이 될 때까지 전자를 채워 넣어보자. 이 경우에도 낮은 에너지 상태부터 스핀이 반대인 전자를 두개씩 가장 낮은 상태부터 채워 넣는다. 이때 맨 나중에 넣는 전자는 상당히 큰 에너지, 즉 큰 운동량을 갖게 돼 금속 전체가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가져도 이들 전자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자들이 금속 안에서 전류를 흐르게 하는 자유전자가 된다. 금속이 아닌 경우에는 전자를 채워 넣을 때 에너지가 가장 큰 전자도 원자핵에 속박돼 있어 속박에너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원자핵의 인력을 극복하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는 없다.
중성자별의 존재 이유
우주에서는 태양의 수배되는 질량을 가진 별이 중력에 의해 수축돼 만들어진 중성자별이 있다. 이 중성자별이 존재하는 이유도 중성자가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배타원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별은 자체 중력에 의해서 계속 수축된다. 수축이 일어나면 중심부의 압력이 매우 높아져서 별의 중심부에서는 핵융합 반응에 의해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에너지는 결국 열과 전자기파 등으로 방출되고 핵융합 반응을 할 연료가 없어지면서 별은 수축을 계속한다.
이렇게 수축을 계속하면 전자들은 아주 좁은 장소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상태의 전자들이 같은 곳에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배타원리에 의해 마치 전자들 사이에 밀치는 힘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배타원리에 의한 전자들의 행동이 중력에 대응하는 압력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이 전자의 배타원리에 의한 압력과 중력이 평형을 이루어 만들어지는 크기가 5천km 정도 되는 별을 백색왜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별의 크기가 10km 정도 되면 전자는 원자핵 안의 양성자에 빨려 들어가 중성자가 돼 별 안에는 중성자만 있게 된다. 이때 별은 계속 수축하고 훨씬 더 작은 공간에 스핀 1/2인 중성자가 모여 있게 된다. 그러면 중성자들은 서로 밀치면서 중력에 의한 수축에 대응한다. 이러한 별을 중성자별이라고 한다. 별의 질량이 태양의 열배 정도 되면 중성자들의 압력이 중력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해 붕괴되면서 블랙홀이 되고 만다.
수소 원자 수십개로 이뤄진 수소 분자 가능
이와 같이 자연계의 많은 현상들이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이 페르미온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만일 전자의 스핀이 1/2이 아니고 0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원소의 화학적인 성질부터 생각해보자. 이 경우 모든 원자 주위에 있는 전자들은 모두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원소의 화학적인 성질은 최외각 전자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이 경우에는 최외각 전자가 따로 없다. 따라서 원소들은 모두 거의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나타낼 것이고, 이들을 구별하는데는 원소의 질량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들만 있게 될 것이다.
또 전자들은 같은 상태에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보존이 되므로 원자들이 여러개 있으면 원자들 주위에 전자들이 있으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수소 같은 경우에는 원자가 두 개 모여 수소 분자를 이루고 스핀이 반대인 전자들이 쌍을 이루어 안정된 분자를 이룬다. 만일 전자의 스핀이 0이면 수소원자를 여러개 모아 놓았을 때 이들은 서로 결합해 모든 전자들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이루기 때문에 어떤 수의 원자를 모아 놓아도 분자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광자로 만드는 레이저뿐만 아니라 전자로도 레이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질량이 있기 때문에 전자로 레이저를 만들 경우에는 훨씬 큰 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들이 초유체 현상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우리 손바닥 위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액체인 전자를 모아놓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1=2+입자의 상호작용’
자연계가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이루어진 것은 각각의 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에 의해 많은 입자들의 모이는 방법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전자의 기본적인 성질이 조금만 바뀌어도 이로 인해 거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아주 작은 입자들의 기본적인 성질을 탐구한다.
그러나 자연은 재미있게도 기본적인 입자 하나만의 성질을 이해한다고해서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지는 않다.양자역학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디랙은 양자역학이 정립된 후 "화학은 끝났다.왜냐하면 화학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자,전자의 성질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양자역학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하지만 현재 세상에는 화학자의 수가 물리학자의 수보다 많다.거시적인 많은 현상은 이를 이루고 있는 구성입자의 성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이러한 입자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예를 들어 혼돈현상과 같은 것은 이를 구성하는 입자의 개별적인 성질만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이것은 입자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다.따라서 자연계는 1+1=2가 아니라는 희한한 결과를 보여준다.더 정확하게는 '1+1=2+입자의 상호작용'이라고 써야 맞는 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