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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7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반경 30km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하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 이후로도 십수 년 동안 체르노빌에 남은 원전을 그대로 운영했다. 5년 전부터는 원전을 관광지로 개발해 일반에 공개했다. 스위스 출신의 과학 일러스트 작가인 코넬리아 헤세-오네거(Cornelia Hesse-Honegger)는 이렇게 조금씩 잊혀져 가는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그곳에서 살아남은 곤충을 그림으로써 기록했다. 스위스 취리히 작업실에 있는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숲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식물은 무성한데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가 없었죠. 겨우겨우 잎벌레 한 마리를 찾았는데 보고선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뭉툭하게 덜 자란 다리에 발은 없고, 그 자리에 대신 발톱이 자라 있었거든요.”
작가는 체르노빌 사고 4년 뒤인 1990년 우크라이나 북서부에 있는 프리피야트를 방문했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프리피야트는 원전노동자를 위해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 지은 계획 도시로 사고 이후 폐허가 된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중 가장 심각한 ‘레벨7’ 판정을 받으면서, 과거 이 지역은 외부인들의 출입이 극히 제한돼 있었다. 작가도 스위스의 의회 의원들과 겨우 동행했다.
“버스를 타고 도시를 이동하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사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도 되는지, 아이들이 방사능에 얼마나 피폭된 건지요. 그때만 해도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 개인적으로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제가 가진 개인선량계로 보건대, 그곳은 이미 치명적인 방사능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방사능 피폭 지역에서 그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시간이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수풀에서 노린재목(Heteroptera) 곤충을 채집했다. 그렇게 모은 게 총 55마리, 그중 12마리가 몸이 변형된 돌연변이였다. 곤충들은 더듬이의 일부가 없거나 바깥 날개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작가는 현미경으로 곤충 각 부위의 길이를 잰 뒤 모눈종이 위에 세밀하게 그렸다. 그리고 수채화 물감을 이용해 색칠했다.
돌연변이 초파리에서 비대칭을 보다
그가 처음부터 피폭된 곤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67년부터 스위스 취리히대 동물학박물관에서 과학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로 일했다. 주된 업무는 돌연변이 유발제 EMS(에틸메탄술폰산염)를 먹인 돌연변이 초파리의 세밀화를 그리는 것. 주로 머리 부분에 돌연변이를 가진 초파리들이 많았는데, 그때만 해도 미술학도로서 곤충의 몸에 나타나는 좌우 비대칭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1985년 X선을 쪼여 만든 유전자 변형 초파리를 그리는 작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다리 모양, 눈 색깔이 달라진 돌연변이들을 보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초파리들이 마치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시제품(Prototype)’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사고’가 터졌다. 전례가 없는 대규모 사고였기 때문에 피해 정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관련된 연구를 나서서 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 각국의 정부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한 공식적인 피해는 없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저는 낮은 수준의 방사능이라도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초파리를 봤으니까요. 아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예술가라면 남들과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이듬해인 1987년 여름,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그는 방사능 낙진이 집중적으로 떨어진 우크라이나 인근 스웨덴 외스터페르네보(Österfärnebo) 지역과 스위스 남부 지역에서 곤충을 채집했다. 채집된 곤충들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2~30%가 돌연변이였다. 돌연변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1%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높은 비율인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스웨덴 기신지(Gysinge) 지역에서 발견된 쐐기노린재(Nabis rugosus )는 더듬이가 덜 자란 채 눈에 변형이 일어나 있었다. 머리의 색깔도 정상 쐐기노린재와 비교해 확연히 달랐다. 머리가 훨씬 검고 무늬가 불규칙했다. 스위스 남부의 티씨노(Ticino)주에서는 더듬이의 일부가 자라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로 남아있는 기이한 곤충들이 발견됐다. 조사결과 이런 방사능 낙진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체로 퍼졌다. 우크라이나에서 2000km 이상 떨어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서도 세슘의 방사성핵종인Cs-137과 Cs-134가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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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동안 1만7000마리
작가는 이런 곤충들을 자그마치 25년 동안 관찰했다. 조사 지역도 체르노빌 낙진이 떨어진 지역에서 핵시설이 있는 세계 전역으로 확대했다. 핵발전소가 세워진 스위스 라이프슈타트(Leibstadt) 지역과 독일의 슈타드 크뤼멜(Stade Krümmel) 지역, 바닷속에 핵폐기물을 저장한 프랑스의 라 아그곶과 핵재처리공장이 세워진 영국 캠브리어 지방, 1979년 원전사고가 발생한 스리마일 섬까지 25개 지역을 돌면서 1만7000마리의 곤충을 조사했다. 주로 노린재목 곤충과, 매미와 같은 동시아목(Homoptera), 무당벌레들이 대상이었다.
채집된 곤충들의 변형 상태는 다양했다. 날개가 변형된 곤충이 가장 많았고, 복부, 더듬이, 흉곽, 다리, 머리 순으로 색이나 무늬,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형태학적으로 변형이 가장 큰 부분은 더듬이였다. 곤충에게 더듬이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감지하고 먹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기관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의 돌연변이들은 더듬이 2개가 중간에 붙어서 자라거나 서로 다른 길이로 자라 있었다. 더듬이의 일부가 사라지거나 두꺼워진 사례도 발견됐다. 이 연구결과는 2008년 4월 학술지 ‘화학과 생물다양성’에 실렸다(doi:10.1002/cbdv.200800001).
“놀라운 사실은 체르노빌처럼 원전에서 사고가 난 지역뿐만이 아니라, 원전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역에서도 돌연변이 곤충이 나타났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핵시설에서도 방사성핵종이 지속적으로 방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핵발전소를 잘 운영하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정부의 설명이 틀렸다는 얘기죠.”
그는 스위스 중부 루체른주에 있는 엔틀레부흐(Entlebuch)를 예로 들었다. 그곳에는 핵발전소, 핵폐기물저장소와 함께 핵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폐기물의 일부를 소각하는 시설도 있었다. 2007년, 작가는 이런 시설을 둘러싼 주변의 산 14개 지점에서 65마리의 노린재목 곤충을 채집했다. 그리곤 돌연변이가 발견되는 비율과 발견된 곳의 지형, 바람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어떤 지점에서 돌연변이가 출현할 비율은 그곳이 바람에 노출된 정도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 즉, 핵폐기물 소각장에서 날아온 바람을 직접적으로 받는 곳에서 돌연변이 노린재목 곤충이 많이 발견됐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곤충들은 그 지역의 환경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생물 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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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무뎌지는 사람들에게
“그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고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연구가 사회에 일으킨 반향이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딱 잘라 말했다. “저선량 방사성폐기물이 가진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안타까운 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정부와 과학계의 의견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핵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고수할 뿐.”
원전사고의 심각성이 갈수록 잊혀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예로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요즘도 하루에 5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드나든다. 원전 폐로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2011년 체르노빌 원전이 관광지로 개발된 뒤부터는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체르노빌 일부 지역의 지표에서 여전히 방사성 물질들이 검출되고 있다고 반대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많은 지역의 방사선 수치가 일반 지역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해명한다. 그러면서 관광객들에게 방사능 노출로 건강이 나빠져도 우크라이나 당국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필수적으로 받는다.
비슷한 현상이 가까운 일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5년 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서도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체르노빌과 같은 ‘레벨7’ 등급의 사고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3년 만인 2014년 사태 종결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원전 주변 지역인 후쿠시마현 나라하마치 지역의 피난지시를 해제하며 주민들의 복귀를 권장하고 있다.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후쿠시마 농산물과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판이다. 헤세-오네거 작가는 비판적이다. 그는 2014년 9월 후쿠시마에서 열린 국제 전문가 심포지엄 ‘방사능과 건강 위험을 넘어-탄력성과 회복을 향해’에 참석해 “농수산물의 방사능 안전 기준치를 높여서 모든 농수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진정한 사태 종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 공포에 대해 한국은 양극화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점점 관심을 접거나 갈수록 예민해진다. 이런 분위기를 작가에게 전했다. 그의 조언은 현실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나 기관이 발표하는 수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에서 측정한 정확한 방사능 수치 정보입니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싸우지 않으면 그런 진실은 얻을 수 없어요. 저 역시 노린재목 곤충들을 이용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힘없는 작은 생명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보내는 신호는 강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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