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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FT, 인간을 주식시장에서 쫓아내다




런던 교외에 사는 선물 트레이더인 36살의 나빈더 싱 사라오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그는 2010년 4월부터 4년간 22건의 불법거래로 500억 원을 벌어 들였다. 당국은 그가 고빈도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의 일종인 ‘스푸핑’으로 주가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스푸핑은 허위로 대량의 주문을 넣는 행위다.

인간이 사라진 주식시장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먼저 예전과는 달라진 월가의 트레이딩 플로어부터 살펴봐야 한다. 요즘도 TV에서 주식 시장 소식을 전할 때, 분주히 움직이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소리치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그 장소의 배경은 주식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는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딩 플로어다. 월스트리트는 자리에 앉은 트레이더가 투자자의 전화를 받아 다른 트레이더와 가격을 교환한 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식거래가 이뤄졌다. 한때는 트레이딩 플로어의 자리 가격만 백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월가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사람대신 컴퓨터가 거래를 맡기 시작한 것이다. 트레이딩 플로어는 텅 비었고, 뉴저지 주(뉴욕시 바로 옆의 주) 북부 13개 거래소의 컴퓨터 서버에서 모든 거래가 이뤄진다.

중개인이 사라지자 다음은 투자자가 사라졌다. 가격, 추세, 거래량 등을 분석해 컴퓨터가 직접 의사결정을 해 주식을 사고파는 알고리듬 거래가 늘어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이 HFT다. HFT는 대량의 주식을 아주 짧은 시간에 수십 차례 사고파는 투자방식을 말한다. 주식거래의 전산화와 함께 처음 등장한 HFT는 2009년에는 미국 전체 주식거래량의 73%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단순히 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 수익은 더 어마어마하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펀드 시타델의 HFT 부서는 한 해 동안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HFT 전문 기업인 버추얼 파이낸셜은 지난 5년 동안 손해를 본 날이 단 하루다. 이 회사들은 매일 수십억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직원은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스푸핑 “지금 이거 안 팔면 손해예요!”

HFT 회사들이 이렇게 경이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비밀은 정교한 알고리듬에 있다. 사라오가 썼던 스푸핑은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플래시 크래시가 벌어지던 2010년 5월 6일 사라오는 주식을 판다는 대량의 거짓주문을 반복해서 넣었다. 대량의 판매 주문이 계속 들어오자 가격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대규모 펀드와 기관이 사라오를 따라 일제히 주식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령 중고차를 팔러 갔을 때 자신의 1000만 원짜리 차와 똑같은 차를 다른 사람이 500만 원에 내놓았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그것보다 싸게 내놓을 수밖에 없다. 500만 원짜리 차는 사실 중고차 딜러가 만든 허위매물인데도 말이다. 개인이 500만 원에 차를 팔면 딜러는 그 차를 사서 또 다른 딜러를 찾아서 원래 시세대로 팔아 앉은 자리에서 500만원을 벌 수 있다. 시라오도 그날 하루 동안 컴퓨터 앞에서 87만9000달러를 벌었다. 플래시 크래시의 여파로 스푸핑은 미국에서는 2010년, 유럽에서는 2012년 전면 금지됐다.

하지만 아직도 스푸핑을 이용한 주가조작이 공공연하게 횡행하고 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계약이 이뤄지는 데다 알고리듬도 정교해져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라오가 검거된 것도 사라오와 함께 일했던 동료의 내부고발 덕분이었다.


차익거래 “너 이거 사고 싶지?”

스푸핑보다 당국을 골치 아프게 하고 있는 HFT 전략은 ‘차익거래’다. 앞서 소개했던 시타델, 버추얼 파이낸셜 등이 이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이 거래는 아직까지는 합법이다.

다시 중고차 시장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중고차를 사러 갔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맘에 드는 차가 여러 매장에 1000만 원에 나와 있었다. 첫 번째로 들른 가게에서 조건에 딱 맞는 차가 있어서 친구가 구매를 했다. 그런데 다음 가게에도, 그 다음 가게에도 원래 봤던 매물이 사라지고 똑같은 차가 1100만 원에 팔리는 것이다. 결국 정보가 잘못됐을 거라며 1100만 원에 차를 사게 된다. 하지만 사건의 실상은 내가 중고차가 꼭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이 시장의 차를 몽땅 사서 그것보다 높은 가격에 다시 내놓은 것이다. 이 원리를 주식시장에 적용한 것이 차익거래다.

눈치 챘겠지만 차익거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파악하는 것과 그 물건을 다른 시장에서 재빨리 사버리는 것이다. 투자자의 매수 의도를 알아낼 때는 거래 프로그램의 간단한 알고리듬을 이용한다. 매매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증권회사는 당연히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주식을 사고 싶어 한다. 미국에는 현재 13개의 주식거래소가 있는데 이 거래소마다 독립적인 주식 시장과, 과금체계가 있다. HFT 회사들은 특정 프로그램이 선호하는 거래소의 모든 종목에 소량의 매도 주문을 걸어둔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가 이 주식을 사는 순간(HFT 회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식이 팔리는 순간) 이 주식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투자자의 수요를 파악한 뒤 다른 시장에 달려가면 너무 늦는 것은 아닐까. HFT 회사는 압도적인 하드웨어로 이를 극복한다. 투자자가 컴퓨터 앞에서 주문을 요청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매수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그 정보는 수많은 라우터와 수백km의 광케이블을 거쳐 주식거래소의 서버로 향한다. 이 시간은 0.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짧은 시간 같아 보이지만 HFT 회사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HFT 회사는 0.0001초 수준에서 서버와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거래소 서버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자신의 컴퓨터를 두고, 전용 광케이블을 설치한다. 광케이블 속 광자는 0.0001초당 200km를 움직인다. 만약 다른 회사보다 광케이블 길이를 200km 줄일 수 있다면 거래소 서버에 닿는 시간이 0.0001초가 줄어들고 이것으로 엄청난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이것이 월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들의 비밀이다.
 

 

HFT를 시장에서 내쫓아야 할까

기계와 알고리듬, 막대한 자본에 의한 시설은 HFT를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HFT 회사가 주식시장의 약탈자라고 비난한다. 지난해 11월 ‘플래시 보이스’라는 책을 출간한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가 마이클 루이스가 대표적인 예다. 루이스는 “주식시장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HFT의 희생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HFT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HFT가 시장을 왜곡시키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HFT는 시장에서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시장이 존재하고 이들간의 거리가 멀수록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정보를 교환하기 어렵다. 현재는 이 과정을 일부 은행과 증권사가 독점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이 챙기는 수수료가 적지 않다. HFT처럼 실제 거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HFT는 둘 사이의 차액만 챙긴다), 사고파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정보교환이 활발해져 구매자는 보다 싼 가격에, 판매자는 보다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개인투자자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다. 반면 중계수수료로 돈을 벌던 증권회사와 은행은 자신의 수익을 일부 뺏긴다.

어떤 이들은 HFT가 또 한 번의 플래시 크래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중견투자회사인 한맥증권이 직원의 실수로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엄청나게 많은 주식을 알고리듬 매매로 사들여 파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HFT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인간도 ‘블랙프라이데이’나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등으로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바 있다. 아직까지는 인간도 실수를 하고 알고리듬도 실수를 하는 것이다. MIT 금융공학과 앤드류 루 교수는 오히려 컴퓨터가 이런 실수를 적게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복잡계이론으로 90년대 주식시장과 2000년대를 비교한 결과 지금이 훨씬 관계가 복잡해졌고, 이렇게 복잡한 시장에서는 컴퓨터 알고리듬이 훨씬 낮은 확률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이제 인간이 주식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해야 될 시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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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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