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쇄회로(CC)TV로 범인을 검거한 사례는 매년 대략 2000여 건(2014년 기준). 여기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화질이 떨어져 영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포함돼 있다. CCTV의 기록을 증거로 만드는 이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알아본다. 기사에 나오는 사진은 실제 사건과 무관한 가상상황이다.
[ 사건이 발생하다 ]
2013년 7월 14일(일) - 사건발생 1일 째
형사 “따르릉.”
평소였으면 출근도 하지 않았을 새벽 7시에 걸려온 전화였다. 그 날 따라 눈이 일찍 떠지더라니. 상황센터에 따르면 5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이 일하는 학원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났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진짜.’ 짜증을 꾹꾹 눌러 담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다행히도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아 한 시간 만에 진압됐다.
하지만 주말인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목격자도 없고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도 CCTV 사각지대로 사라져 행적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이거 안돼, 이렇게 하다가는. 공개 수배로 돌리고, CCTV 자료 국과수에 넘겨.”
[ 증거를 확보하다 I ] CCTV, 이거 너 맞지?
7월 24일(수) - 사건발생 10일 째
형사 공개수배로 돌린 지 10일째. 지하철에서 범인을 목격한 시민, 식당에서 목격한 시민의 증언으로 어렵사리 용의자를 검거했다. 문제는 용의자를 기소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CCTV 속 범인이 용의자와 동일인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데….
국과수 공업연구사 “지난 주에 수성경찰서에서 들어온 CCTV 분석 의뢰 자료, 영상 연구실에서 왔어? 그거 좀 줘 봐.”
얼마 전 터진 열차 사고 분석 건도 아직 못 끝냈는데, 새로운 의뢰가 또 들어왔다. 영상 연구실에서 최대한 선명도를 높이긴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 이목구비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이목구비가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한 경우엔 미간의 길이나 코 양 끝의 길이 등 얼굴을 분석할 수 있는 70여 개의 선을 측정하고, 비율을 계산한다. 이게 여의치 않으면 쌍커풀이나 코끝의 모양, 입술, 귀 모양 등을 분석한다.
예를 들면 쌍커풀이 있는지, 눈 앞꼬리가 뾰족한지,몽고주름을 가지고 있는지, 코끝은 아치형인지 직선형인지, 입술은 윗입술이 두꺼운지 아랫입술이 두꺼운지, 인중이 깊은지 얕은지, 눈썹은 위로 솟았는지 두꺼운지 얇은지 등이다. 고려해야 할 요소만 60~70개에 달한다. 만약 범인이 쌍커풀이 있고 몽고주름을 가진 눈이라면 ‘잭팟’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12.3%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동일인임을 판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엔 우리 연구실의 핵심 기술인 ‘얼굴 중첩 기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얼굴 중첩 기술은 CCTV에 찍힌 범인의 사진(2D 사진)과 용의자를 3D로 스캔해 얻은 3D 사진을 겹쳐 동일인인지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3D 사진이 2D 사진에 찍힌 피사체의 각도에 맞게 겹쳐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말은 용의자를 여기로 데려와야 한다는 의미다.
7월 25일(목) - 사건발생 11일 째
형사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용의자 촬영이 필요하니 국과수까지 인도해달라는 연락이었다. 아무리 국과수여도 용의자를 경찰서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0년 전 대전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사건, 일명 ‘대전 발바리 사건’에서도 국과수는 얼굴 중첩 기술로 결정적 증거를 만들었다. 믿어보는 수밖에.
7월 29일(월) - 사건발생 15일 째
용의자 “여기가 3D 스캐너실입니다. 여기 앉으시고, 제가 ‘잠깐만요~’하면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계셔야 합니다.” 국과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3D 스캐너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암실 같다. 마치 지하철 역에 있는 ‘3분 증명사진 촬영기’같이 생겼다. “자~, 잠깐만요.” ‘팡팡팡팡.’ 이 작은 암실에 설치된 조명이 위아래, 양 옆에서 순식간에 터졌다. 그 불빛에 놀라 살짝 움직이고 말았다. “똑바로 나올 때까지 100번이고 찍을 테니까 한번에 잘 합시다.” 다시 한번 촬영이 끝나고 스캐너실을 나서자 국과수 직원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헉. 컴퓨터 화면에는 방금 찍은 게 3D 사진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우스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내 왼쪽 얼굴이, 또 아래로 움직이니 정수리가 보인다. 국과수 직원은 CCTV 속 사람과 내 3D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눈의 시작점과 끝점, 귀의 굴곡점, 마스크 바깥으로 보이는 내 턱 끝점 등을 마우스로 찍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작업입니까?” 경찰의 물음에 국과수 직원은 “대응점을 찍는 거예요”라며 이 대응점을 기준으로 3D 사진이 2D 사진 위에 겹쳐질 거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제야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감이 온다. “자~, 합칩니다.”
나의 3D 사진은 CCTV 속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에 정확히 겹쳐졌다.




그런데 저 용의자의 뒷모습, 뭔가 이상하다.
[ 증거를 확보하다 II ] 용의자의 걸음걸이
7월 31일(수) - 사건발생 17일 째
형사 “선배님, 용의자 말입니다.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용의자의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다. 약간 뒤뚱뒤뚱 걷는 것 같기도 하고 팔자 걸음인 것 같기도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의자가 국과수에서 차로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해 놨다.
후배의 말을 진지하게 들은 이유는 두 달 전에 참여했던 ‘과학수사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신기한 과학수사법을 들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메디컬센터의 하이든 켈리 박사가 소개한 수사기법으로, 걸음걸이의 형태를 분석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 보행 분석법’이라고 하던데.
정형외과 전문의 경찰서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CCTV 속 사람의 걸음걸이와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 속 사람의 걸음걸이를 비교분석 해달라는 것이다. CCTV에 찍힌 사람은 ‘비대칭 보행(unsymmetric gait)’을 하고 있었다. 양쪽의 보폭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또 하나 특이한 건 오른쪽 발만 바깥쪽을 향하는 팔자 보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오른쪽 다리에 염증이나 질환이 있을 확률이 높다. 발목에 지속적인 통증이 있는 경우 정상적인 보행이 어렵다. 염증이 없는 다리에 힘을 더 싣게 되고, 나머지 한쪽 다리는 상대적으로 근육을 풀고 걷기 때문에 보폭이 달라진다. 염증이 있는 쪽은 발이 바깥쪽을 향하게 된다.
용의자의 진료기록이 필요하다.
기계공학과 교수 CCTV 속 사람의 보폭을 측정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CCTV 화면을 보니 지면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람을 기준으로 30° 정도 기울어진 각도에서 찍힌 듯하다. 보폭을 측정하기 위해선 이 화면을 사람 정수리 위에서 찍은 화면으로 수치 변환을 해야 한다.
[ 판결 ] 징역 1년 형에 처하다
11월 5일(화)
판사 평소 미국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피고인은 2013년 7월 1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사설 어학원을
미국 문화원으로 착각하고 불을 지르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에 피고인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친구 김OO과 함께 구체적으로 방화를 계획하고, 2013년 7월 5일 인터넷을 통해 화염병 제작을 위한 재료를 구입했다. 피고인은 2013년 7월 14일 오전 6시 40분 사설 어학원 1층의 창문을 깨고 그 안으로 화염병을 던지고 도주했다. 화염병이 터진 1층 강의실 한쪽 면에 있던 책장에 불이 번지면서 강의실 전체가 불에 그을렸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 소유인 시가 1억 원 상당의 강의실 1개를 불태웠다.

법 보행 분석 전문가의 감정서
용의자는 2004년부터 2011년 8년간 9차례 발목 통증과 염좌(관절을 지지해주는 인대가 외부 충격에 의해 늘어나거나 일부 찢어지는 경우) 진단 기록이 확인됐다. 이 진료 기록을 볼 때 용의자에게서 보이는 비대칭 보행과 우측 팔자 보행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보행과 증상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으나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용의자의 보폭은 오른발이 땅을 디딜 때 48cm로 평균적인 보폭에 해당하나 왼발이 땅을 디딜 때는 21cm로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CCTV 속 범인의 보폭도 오차범위 ±1cm로 일치했다. …(중략) 병리학적 분석과 공학적 분석을 종합해 판단했을 때 용의자와 CCTV 속 사람은 동일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