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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국내 최초의 정통 고(古)인류학자다. 인류학자는 들어봤어도 ‘고’인류학자는 못 들어봤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던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고인류학을 공부했다.

“수십만, 수백만 년 전 인류의 화석을 연구해 인류의 진화를 밝히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고인류 화석을 발굴하러 다니지는 않아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고인류학자는 무척 소수고, 그 중 발굴에 성공하는 학자는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운이 좋아야 하죠. 하지만 발굴된 화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연구도 무궁무진합니다.”

이 교수는 화석을 이용해 남녀 성차의 변화, 노년의 진화, 200만 년 동안 겪어온 두뇌의 변화 추세 등 인류 진화와 관련된 굵직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 모두 친척 인류까지 아우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범위를 뛰어넘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노년’이라고 부르는 것도,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난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에요. 이걸 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현생인류 치아 화석을 비교해 알아냈지요.”

이 교수는 최근에는 터키 동부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발굴 현장을 자주 드나든다. 한국 연구팀이 주도하는 고고학 발굴이 있는데, 이곳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이다.

“저를 고인류학이라는 불모의 세계로 초대했던 은사 이선복 교수(현 서울대박물관장)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2014년부터 한 해 몇 번씩 드나들며 발굴을 하고 있죠. 제가 원래 하던 연구와는 조금 달라요. 몇 십만 년, 몇 백만 년 사이에 일어난 인류의 변화가 아니라, 기원후 1세기부터 중세까지 기껏해야 2000년 지난 인골의 변화를 연구하죠. 둘 사이에는 차이가 커요. 해상도가 달라진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도수의 안경을 낀 것처럼 적응 기간이 필요하네요.”

오랜만에 현장을 발굴하며 웃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학생 때 기분으로 발굴현장 구덩이에 뛰어 내렸는데, 주변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된다고, 다치신다고 안절부절 못하더라고요. 저는 학생 때 생각이 나서 가뿐하다고 느꼈는데(이 교수는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으로 대학 때 자주 발굴 현장에 나갔다), 세월이 흘렀나 봐요.”

이 교수는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고인류학자기도 하다. 작년 출간한 책 ‘인류의 기원’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2년 넘게 ‘과학동아’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낸 책으로, 작년 한국출판문화상 교양저술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교수는 지난 연말 서울에서 열린 자신이 참여하는 과학 강연회의 포스터를 들여다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강의에 참여하길 참 잘했네. 과학은 ‘아저씨’뿐만이 아니라 ‘아줌마’도 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지.’ 출판사가 하는 강연이었다. 과학책의 저자들이 강연자였는데 이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였다.

“인류 진화를 묘사한 그림, 박물관의 전시물 등을 잘 보면 대다수가 남성으로 묘사해 놨어요. 만든 사람도 의식하지는 않았겠지만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는 게 현실이죠.”

과학도 고인류학도, 여성의 좀더 많은 참여와 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교수와의 대화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진주현 박사는 법의인류학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미군 전사자의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 품으로 돌려주는 일을 한다. 6․25 전쟁 때 실종돼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미군은 총 7900명. 그 가운데 약 3000명의 유해는 한국에 있고 나머지 약 5000명은 북한에 있다. 한국에서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지금도 계속해서 발굴을 하고 있고, 진 박사는 이 때 발굴한 유해 중에 혹시 미군의 유해가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매년 두 차례씩 한국을 방문한다.

2015년 상반기 발굴 유해를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말 방한한 진 박사를 서울에서 만났다.

“저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진 박사는 북한에서 송환 받은 미군 유해 208구의 신원을 확인하는 ‘K208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90년대 초에 북한에서 4년에 걸쳐 받은 유해들이었는데, 6․25 흥남부두 철수 때 희생된 유해가 절반이었다. 흥남부두 철수는 1950년 말, 중공군에 밀려 미군과 민간인들이 배로 남하한 사건이었다. 진 박사는 문득, 할아버지가 실향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고, 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흥남부두 철수 때 미군의 도움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때 두 분을 도왔던 분들은 남의 나라에서 희생됐고, 그 유해가 다시 돌고 돌아 제게 와 있는 거였죠.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해는,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한 상자에 한 구씩 고이 모셔져 있었고 군번줄도 있었다. 그런데 법의인류학자의 눈은 달랐다. 뼈가 뒤죽박죽이었다. 한사람에게 오른 팔이 두 개 있는 일도 있었다. “뼈를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어요. 당시 희생된 군인들은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20세 정도의 어린 백인 남자들이었죠. 성별, 인종, 키 등 인류학에서 다루는 전형적인 생물학적 프로파일로는 구분이 안 가죠.”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의 인류학자들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유해는 방치됐다. 아직 신원 확인에 DNA가 쓰이기 전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DNA 검사가 신원 확인에 쓰이기 시작했다. 실종자의 가족들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 시료를 채취했다. 6․25 때의 미군 희생자 7900명 중 7000명의 시료가 모였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가 같은 사람이 많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떤 유전자의 경우 7000명 가운데 700명이 같은 유형을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2011년 10월, 진 박사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로 유형을 나누고 전사 지역 별로 재분류해 700명 정도의 유해를 추렸다. 이 유해로부터 핵 DNA를 추출해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최신 기술이었다. 이렇게 해서, 작년 말까지 151구의 유해가 가족 품을 찾았다.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 최종 결과가 나오면 상사에게 보고하고 유족에게 돌려드려요. 그러면 유족 분들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손을 잡고 고마워 하세요. 인수한 유해는 부모님 곁에 고이 묻습니다.”

진 박사를 만났을 때는 마침 저서 ‘뼈가 들려준 이야기’가 막 출간된 상태였다. 인터뷰가 한창일 때, 동석한 편집자가 전화를 받더니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책이 2쇄를 찍게 됐다는 소식이었다(책은 이후 더 많이 인쇄됐고, 연말에는 언론사에서 꼽은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됐다). 진 박사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진 박사는 이전에도 이미 몇 권의 인류학 책을 번역하고 쓴 작가였다. “제 꿈이 원래 기자였어요. 글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뿌듯하고 재밌어서, 젊은 학생들에게 해볼 만한 일이라고 알리고 싶어요.”

책을 쓰는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뼈를 다루는 학자로서도, 유해를 만나는 법의 전문가로서도 하고픈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제가 아는 걸 알리려면 좋든 싫은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직접 책도 쓰고, 기자님하고 인터뷰까지 하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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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사진

    이희중,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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