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여러모로 독특한 나라다. 말레이시아의 한 섬에서 시작해 영국 식민지를 거쳐 독립한 화교국으로 한국과 달리 역사와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일당 독재고, 다민족국가라고 해도 인종과 계급간 임금 격차와 차별이 뚜렷하다. 전반적으로는 교육 수준이 뒤떨어져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참여도가 낮기 때문에 소수 엘리트가 독점체제를 이루며 국민을 통제한다.
이 모든 부정적인 모습에도 싱가포르가 항상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며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이유는 그 이면에 분명 기술 발전을 위한 창의성과 성실함에 대한 건강한 기류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있는 열대해양과학연구소(TMSI)는 연구원과 직원이 100여명 가량 일하는 작은 곳이다. 열대해양과학연구소라는 이름대로 싱가포르 주변 해양을 아우르는 수리, 기후, 생물, 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며, 주로 정부기관의 연구 사업에 참여한다.
그 중에서 필자가 관여하는 해양물리연구실험실(PORL)은 해양의 수리학적인 변화와 관련된 일을 다루는데, 해안 수리 모형을 기본으로 기후와 환경을 접목해 의뢰인이 원하는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주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물리 현상을 다루는 이곳에서 현재 필자는 좀 더 순수 연구 목적에 가까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싱가포르 해협과 주변 해양에 관한 연구다.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해양과학에 관련된 첨단기술을 싱가포르 해협이라는 실제 지역에 적용해 기술의 신뢰도를 높이고 지역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지역 자체의 기술을 축적하는 데 있다. 이 연구에는 미국 MIT 교수와 연구원도 참여한다. 이들은 싱가포르국립대에 6개월 이상 머물며 협동연구를 진행한다.
필자의 경우 싱가포르 해협 주변의 수리모형에 자료동화(Data Assimilation)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연구는 이론적인 연구에서 시작해 이상화된 모형을 만든 뒤 실제 자료를 수집해 모형을 검증하는 일이 목표다.
자료동화기술은 주로 기후학에서 사용되는데, 확률론적인 성격이 뚜렷한 기후 모델을 측정 자료로 보완하는 기법을 말한다. 만약 이 기술이 해양물리 모형에도 도입된다면 실제 현상에 가까운 모형 해석이 가능하다.
싱가포르에서 지낸지 아직 1년도 채 안됐지만 이들의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교류는 매우 인상적이다. 가령 외국 유명 대학과 동맹을 맺더라도 발전된 해외기술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소화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이런 열정이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를 크게 움직이는 건강한 힘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우리도 싱가포르의 이런 자세에서 분명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이명은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하천 오염물질 확산 해석모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싱가포르국립대 열대해양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