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법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의학과 과학을 총동원해 개구리소년의 사인을 규명하려고 노력중이다. 또 미국의 법의학자들도 첨단수사기법을 활용해 워싱턴 일대에서 지난 10월 2일부터 시작된 연쇄저격사건의 범인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과학적인 수사로도 개구리소년의 사인이나 연쇄저격사건의 범인을 알아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수사가 환상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10월 21일자에서 연쇄저격사건과 관련해 최근 놀랍게 발전한 과학수사기법을 소개했다.
저격현장에서 보기 흉한 납덩어리로 발견된 산탄을 실험실로 옮긴 후 현미경으로 분석하는 일은 기본. 실제로 미 법의학팀은 이 산탄을 저격수가 쐈던 다른 총탄과 나란히 놓고 360°씩 돌려가며 현미경으로 비교·관찰해 똑같은 종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여태까지 저격사건이 일어난 위치를 지리적으로 연결해 컴퓨터로 저격수의 은신처를 찾고, 이번 저격사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탄도 흔적을 다른 범죄의 탄도자료와 비교하며, 미세물질 분석기술을 이용해 탄피에 묻어있을지 모르는 지문이나 DNA를 잡아내려고 노력중이다. 아울러 화질이 떨어지는 감시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또렷한 디지털 화면으로 바꾸는 컴퓨터 프로그램, 한번에 분자 하나까지 탐색하는 화학물질 스캐너, 용의자의 뇌파를 분석하는 센서 등과 같은 하이테크 기술도 대기중이다.
O. J. 심슨 재판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법의학적 증거는 바로 DNA다. 현재는 소량의 땀, 눈물, 타액, 혈액 등에서 DNA를 뽑아낼 수 있다. 모자에 두른 띠나 안경테에 코가 닿는 부분에서조차 DNA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핵이 없는 세포로 구성된 손톱, 치아, 머리카락 등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낼 수 있다.
미세물질을 분석하는데도 첨단기술이 이용된다. 예를 들어 용의자의 손가락에 미량의 화약이 묻어 있다면, 전자현미경으로 손가락을 스캔하면 된다. 현미경에서 나온 전자의 흐름이 화약을 때릴 때 화약의 구성원소에서는 독특한 X선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또 레이저로 화약 샘플을 얇게 잘라 플라스마로 가열한 뒤 질량분석기기로 원자량에 따라 미세물질을 분리하는 기술도 적용될 수 있다.
새로운 범죄수사기술 중에서 가장 초현대적인 것이 바로 ‘뇌 지문’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원리는 뇌가 어떤 영상을 처음 볼 때와 두번째 볼 때 각각 다른 뇌파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의자에게 범죄현장의 사진을 보여주고서 뇌파를 분석하면 범인인지를 가려낼 수 있다. 물론 뇌 지문 기술은 아직까지 논란거리다.
그런데 이같은 첨단과학수사기법조차 일반인들이 시큰둥해 하고 과학수사의 지지부진한 전개에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과학수사대’(CSI)와 같은 인기 과학수사극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타임은 이를 ‘CSI 효과’라고 말하며, 텔레비전이 과학수사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과학수사가 빠르고 손쉬운 것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과학수사극에서는 사건발생부터 범인체포까지 압축적으로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며, 극 속의 실험실에서는 어떤 어려운 실험도 못하는 게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례로 DNA 분석결과는 어떤 장치에 들어간지 2시간만에 나오는 극의 상황과 달리 2달이 걸리지 모른다. 현실의 과학수사에서는 극처럼 매끄럽지 못하고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때로 직감이나 경험에 의지하고 시행착오로 녹초가 된다. 때로는 실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