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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자연닮은 생체모방무예, 쿵후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원숭이를 묘사한 중국무술의 후권(猴拳)을 봤습니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하고, 봉을 타고 올랐다가 내려갔다 합니다. 참 잔망스럽기 이를 데가 없더군요. ‘정말 원숭이가 저렇게 싸울까?’ ‘중국무술은 동물을 맞게 표현한 걸까?’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쿵후 전문가에게 ‘오형권(五形拳)’으로 한번 맞아봤습니다.


 

‘동물이 진짜 저렇게 싸운다고?’

TV나 영화에서 동물을 따라 한 중국무술의 권법을 보며 한번쯤은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두 앞발을 날카롭게 세운 사마귀나 정신없이 움직이는 원숭이를 흉내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 과장이 심하다 싶은 순간 말이죠. 실제 동물이 정말 저렇게 싸우는 걸까요, 아니면 중국무술이 잘못 따라한 걸까요. 실제 동물이 싸울 때의 특징부터 알아보고자 신남식 서울대 수의대 교수(야생동물의학교실)를 찾아갔습니다. 신 교수는 “해부학적으로 사람과 동물들이 너무 다른데 공통점이 있을까요?”라며 사람이 하는 동작이 애초에 동물을 따라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그럼 쿵후는 동물의 무엇을 따라한 걸까요?

쿵후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쿵후는 360가지가 넘는 문파로 분리돼 있는데 크게 북권과 남권으로 나뉩니다. 북권은 동작이 크며 발을 많이 사용합니다. 남권은 팔을 주로 쓰며 화려하기보단 순간적인 힘을 실은 간결한 동작이 많고, 움직이는 행동반경이 넓죠. 이보다도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확연히 다른데요. 북권의 대표문파인 태극권은 우주, 자연을 표현하는 반면, 남권은 동물을 흉내 낸 권법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쿵후도장은 북권, 특히 태극권이나 올림픽 종목인 우슈가 대부분 입니다.

궁금증을 풀려면 동물을 형상화한 남권 전문가를 만나야 하는데 말이죠. 수소문 끝에 남권의 가장 큰 문파인 홍가권 전수자 한 명이 인천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황비홍의 4대 제자인 필서신정무문쿵후총본관 관장은 동물을 상형한권법에 매료돼 40년 넘게 홍가권 수련과 전수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자가 동물을 본떠 만든 권법의 특징들을 묻자, 필 관장은 바로 모든 동물 상형권법의 뿌리라는 오형권(호랑이, 학, 뱀, 표범, 용)을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철벽방어와 연계공격, 무적의 호권

호랑이는 기습을 통해 사냥을 하는 동물입니다. 영화를 보면 간혹 멀리서부터 포효하며 사냥감에 접근하곤 하는데, 엄연히 잘못된 부분입니다. 그러면 먹잇감이 이미 다 도망가고 없겠죠. 호랑이는 냄새보다는 시각과 청각을 예민하게 사용하며, 먹잇감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아무 소리내지 않고 몸을 숨겨서 다가갑니다. 몸을 숨기는 데 호랑이의 줄무늬도 한 몫 거들죠. 먹잇감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땐 순식간에 앞발로 사냥감을 쓰러뜨립니다. 그리고는 뼈를 으스러트릴 만큼 강력한 턱 힘으로 목덜미를 물어 제압합니다. 10cm가 넘는 송곳니는 살을 뜯거나 큰 동물의 폐에 구멍을 낼 수도 있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먹잇감이 호랑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는 답니다.

호랑이는 무엇보다 앞발 공격이 일품입니다. 신 교수는 “대부분의 동물이 상대를 물기 위해 머리를 먼저 들이밀지만 호랑이는 특이하게 앞발로 먼저 대상을 타격한다”고 말합니다. 앞발로 상대를 잡거나 강하게 후려치는데, 정확성 또한 상당히 높습니다. 인대의 길이를 조절해 발톱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중요한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죠.

그래서 호랑이는 팔 공격을 중시하는 홍가권에 제격입니다. 오형권 중 호권 역시 팔로 목을 중심으로 한 상체를 가격합니다. 특히 호랑이가 숲에서 튀어나와 먹이를 취할 때의 순간을 표현하죠. 주먹을 쥐지 않고 손바닥을 힘 있게 펴서 실제 호랑이가 상대를 후려치듯이 휘두릅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선방어 후공격’이라는 겁니다. 우선 한 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 무력화시킨 뒤, 다른 손으로 빠르고 강하게 상대를 가격합니다. 현실에서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호랑이는 방어가 필요 없죠. 하지만 무술에서는 공격과 방어를 균형 있게 겸비한 동물의 왕의 포스를 보여준답니다.


날카로운 부리로 약점을 뜯어라, 학권

평화로워만 보이는 학(두루미)도 싸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영역을 지키고 짝짓기를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학에게 싸울 수 있는 무기라곤 부리뿐입니다. 다만 부리로도 상대를 크게 훼손시킬 정도의 공격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날개를 크게 벌려 상대를 위협하는 데 주력합니다. 쿵후는 이를 어떻게 나타냈을까요. 팔을 훨훨 휘저으며 퍼득거리는 날개를 따라하면 어쩌나 걱정됐습니다.

학권을 보여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필 관장은 오른손을 오므려 다섯 손가락 끝이 맞닿게 했습니다. 학의 부리입니다. 굳이 학의 부리를 사람의 입으로 따라하려 하지 않고, 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의 손만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이 또 없죠. 부리가 된 오므린 손은 빠르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합니다. 어린 아이를 골릴 때 양손을 번갈아 톡톡 치듯이 말이죠. 하지만 직접 맞아보니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다고 하기엔 너무 아팠습니다. 멍이나 상처는 나지 않았는데 이튿날까지 컴퓨터 키보드를 칠 때도 팔뚝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필 관장은 “학권은 급소를 빠르게 타격하는 게 특징”이라며 “한 손으로 시선을 끌거나 방어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급소를 공략한다”고 말합니다.

손은 부리가 됐다가, 날개가 되기도 합니다. 학의 크고 화려한 날개 짓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리로 사람의 신체에서 약한 부분을 노립니다. 같은 조류인 독수리권은 무언가를 비트는 동작이 많은 반면 학권은 눈, 관자놀이 등 좁지만 치명적인 부위를 강하게 찍어 때립니다. 포식할 때 다리로 먹잇감을 부여잡는 것처럼 한손으로는 상대 신체 중 일부를 잡거나 유인하고, 다른 한 손으로 부리로 뜯어먹듯이 쪼는 겁니다.

학권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팔이나 다리에 힘을 주어서는 안되죠. 호랑이는 팔로 방어를 하지만, 학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사뿐사뿐 다니다가 적의 급소에 닿기 직전에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급소라면 낭심 또한 빠질 수 없죠. 격투기 스포츠에서라면 ‘로블로(low blow)’로 경고를 받겠지만 학권에서는 엄연한 목표 부위중 하나입니다. 기자를 대상으로 시범을 보여주던 필 관장도 이 장면만큼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움직입니다. 자칫하면 큰일 나는 진정한 급소니까요.



들어올 때 들어간다, 반격 노리는 사권

학은 날개와 다리도 있고 부리라는 주무기도 있지만, 뱀은 어떻게 표현한다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독이 없으면, 입을 크게 벌려 물거나 몸통으로 조이는 게 전부죠.” 혹시나 뱀에게 숨겨진 기묘한 특징이 있진 않을까 해서 신 교수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큰 특징이 없었습니다.

본래 뱀은 아래턱이 위아래 또는 앞뒤로 크게 움직일 수가 있어 입을 크게 벌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작은 동물은 그냥 삼키고, 큰 동물은 독을 주입하거나 몸통으로 조여서 움직임을 제한한 뒤 삼키죠. 통째로 삼켜도 다 소화를 시킬 정도로 내장 또한 유연하고, 소화에 적합한 내분비물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조이는 힘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그래서 설사 호랑이나 매에게 먼저 물린다고 해도 불리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린 채로 몸통을 상대방의 목이나, 흉부를 감아 강력하게 조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적이 움직일수록 더욱 강력하게 조여 들어갑니다. 하지만 쿵후에 적용하기 위해 레슬링의 ‘헤드록(headlock)’처럼 팔로 조인다거나 입을 크게 벌려 깨무는 것은 영 어울리지 않겠죠.

사권을 보여주겠다는 필 관장에게 주먹을 지르자 순식간에 기자의 몸은 그의 옆을 지나쳤고 그의 손날 끝은 제 목 앞에 와 있었습니다. 제 팔을 살짝 밀쳐내면서 방향을 바꾸고 동시에 그 팔을 따라 자신의 팔을 감아올리면서 빠르게 상대에게 손끝을 꽂는 겁니다. “뱀을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면 그걸타고 뱀이 훅 올라옵니다. 그런 뱀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죠.” 동종 간에 싸울 때나 다른 먹잇감을 잡아먹을 때보다, 사람이 뱀을 잡으려 할 때 나타난 특징을 살린 것입니다. 뱀을 잡으려고 나섰는데 도리어 뱀이 순식간에 휘감아 올라오는 그 공포의 순간을 사권에 담아낸 것이죠. 상대방의 공격을 끌어당겨 거리를 좁히고 그를 이용해 순각적으로 타격하는 동작이 사권의 주를 이룹니다. 또한 손가락을 펴 손날을 유지해 납작한 뱀의 머리모양을 묘사하고, 타격 부위에 1초라도 빨리 도달할 수 있게 하죠.

앞서 신 교수가 말한 것처럼, 동물과 사람은 너무나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움직임을 사람의 움직임과 동일선상에서 보면 흉내를 내는 게 다소 과장돼 보일수도 있죠. 하지만 쿵후의 많은 권법은 동물의 움직임에서 나왔습니다. 날렵한 동물일수록 그 선천적인 몸놀림에서 배울 점이 많죠. 동물을 보고 발상을 얻었다는 점은, 자연과 인간의 융합이라는 쿵후의 무예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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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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