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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봄은 5~6월 2개월뿐인데, 이때 초원의 아름다움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기압의 변화로 인해 때때로 돌풍이 휩쓸어 추위가 심하다.

몽골의 아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는 내륙국으로 북서쪽으로 옛소련과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전부터 외몽고라고 부르던 지역이 거의 여기에 해당되는데, 면적은 1백56만6천5백㎢로 우리나라의 약 7배에 이른다. 인구는 2백20만명(1991년 추계) 정도로 서울 인구의 5분의 1도 안된다.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도시를 벗어나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국토 전체가 아주 높은 지대로, 표고 약 1천6백m의 고원국가다. 지형은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국토 중앙부에서 동부에 걸쳐 목축에 알맞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갈수록 높고 험준하지만 이 지역도 천혜의 고원성 초원지대를 이루어 소 말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거북 형상의 대형암석이 있는 텔렌지. 몽골인들은 이곳에서 장수를 기원하며 경건하게 기도한다.
 

30분이면 짓는 주택 겔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혹한이 계속된다. 여름의 더위는 내륙이기 때문에 습기가 없어 견딜 만하다. 그러나 겨울의 추위는 수도 울란바토르 등지에서도 -40℃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 5~6월의 2개월이 봄에 해당되는데, 이때 초원의 아름다움이 관광객을 사로잡지만 기압의 변화가 심해 때때로 돌풍이 휩쓸어 추위가 심하다. 기후가 가장 안정되는 시기는 9~10월이다.

붉은 영웅이란 뜻의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 인구는 약50만명. 전체인구의 23%가 이곳에 몰려 산다. 시내에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으나 대다수의 몽골인은 겔에서 산다.

겔은 몽골의 전형적인 가옥이다. 일종의 동그란 가죽천막 집으로 이동식이다. 흰색을 숭상하기 때문에 겔은 하얀 색이 많다. 몽골인은 겔내에서 먹고 자고 손님을 맞이한다. 즉 삶의 터전인 것이다.

몽골인들은 이동이 잦은 유목민인 관계로 겔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밖에 안 걸린다. 겔을 설치할 때 먼저 붉은 색 장대를 이용해 방사형으로 천장을 꾸미고 기둥을 세운다. 다음 벽면을 버드나무 장대와 나무판으로 조립한다. 이 위를 양털로 만든 펠트(Felt)로 덮는다. 이렇게 해서 필요에 따라 내부의 온도조절도 할 수 있고 천장도 여닫을 수 있는 이동식 집이 완성된다.
 

도시에서는 이동식 주택인 겔보다 정착식 주택이 늘어가고 있다.
 

곡식 과일 물고기 안먹어

몽골의 겨울은 몹시 춥기 때문에 겔내 난방은 매우 중요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대부분 동물의 배설물을 난방용 연료로 쓴다. 8~9월 초원에 널려 있는 바짝 마른 말 소 양의 똥을 주워다 추운 겨울에 때는 것이다. 냄새가 나지 않고 화력도 좋아 쇠까지 녹일 정도라니 신기하기만 하다.

몽골에선 손님은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다. 손님이 오면 으례 먼저 내놓는 것이 마유주(馬乳酒)다. 알코올 수가 5도 전후이며 우리나라 막걸리와 같이 뿌연 색이다. 말 젖을 발효시킨 이 술은 심한 젖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토하기 쉽다. 최근 정부에서는 성인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며 마유주를 외국에까지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유주 대신 소 낙타 양젖을 발효시킨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이 술은 투명하고 향이 진하며 맛이 부드러운 점이 특징이다.

중국 영토에 속하는 내몽골인과는 달리 외몽골에서는 곡식을 먹지 않는다. 야채 과일 물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 오직 양고기와 쇠고기, 마유주를 즐겨 먹는다. 치즈처럼 만든 아로움도 즐기는 음식이다.

늦가을에 한국에서 김장을 하듯 몽골에서도 소와 양을 한두 마리씩 잡아 고기를 얇게 썰어 바람에 말린 후 겨울양식으로 준비한다. 겨울철에는 가축의 젖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음식은 조리법이 발달되지 않아 날 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몽골을 방문한 한국인은 음식 때문에 큰 고생을 한다.

몽골인의 결혼풍속은 흥미롭다. 울란바토르 같은 대도시에선 결혼궁전에서 신식 결혼을 한다. 월 평균 80쌍이 결혼한다. 양가 가족이 일렬로 서 있는 가운데 신랑 신부가 사회자 앞에서 결혼증서에 날인하는 것으로 정식결혼이 이루어진다. 결혼식 피로연은 대개 신랑 집에서 한다. 결혼식 전후에 드는 모든 비용은 신랑 집에서 부담한다.

도시를 벗어나면 고유의 결혼풍속을 따른다. 먼저 신랑은 결혼에 응한 신부를 데리러 간다. 이때 신랑집에서는 잔치준비를 하고 일가친척을 부른다. 이윽고 도착한 신부는 우유통을 들고 겔 주위를 한바퀴 도는 의식을 행한다. 이는 조상에게 축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겔내에서 하닥이라는 긴 비단천을 받은 신랑 신부는 마유주를 같이 마신다. 조상에게 결혼했다는 것을 알리고 축복을 원하는 고수레의식도 치른다.

다음에는 신랑집 겔내에서 음식과 술을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흥겹게 지낸다. 몽골인은 술 마시면서 노래 부르기를 즐긴다. 노래는 말(馬)과 관련된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우리와 공통점이 많은 나라

울란바토르 북서쪽에는 몽골에서 가장 큰 라마교 절인 간단사가 있다. 라마교는 티베트 불교의 일파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은 라마교에 심취해 국교로 정하고 이 종교를 적극 권장했다. 그러나 후일 퇴폐와 방탕으로 흐른 라마교는 원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큰 원인이 됐다.

1921년 사회주의 혁명 후 국가의 강력한 시책에 의해 라마승은 대폭 줄어 들었다. 혁명 전까지 전체 인구의 25%가 독신인 라마승이었다. 몽골은 인구가 적어 걱정을 많이 하는 나라인데, 독신인 라마승이 늘어가는 것은 결코 고무적인 사회현상이 아니다.

지난 해 7월 몽골을 방문한 필자는 체류하는 동안 우리와 비슷한 공통점을 많이 발견했다. 먼저 몽골인은 생김새가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 체질 언어 문화 역사적인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홋호멍게라고 불리는 신생아 궁둥이에 나타나는 푸른 색 반점(斑点)도 우리와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야탁이란 악기를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 가야금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야금이 12줄인 데 비해 야탁은 한 줄 많은 13줄이라는 것 외엔 대동소이하다.

오보(Ovoo)라는 것도 우리나라 서낭당 옆에 있는 돌무더기와 흡사하다. 야트막한 초원 언덕에 주로 있는 오보는 몽골인이 신성시하는 곳이다. 오보 돌무더기 위에 돈과 담배 등을 넣고 합장(合掌)한 채 오른쪽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빈다. 주위에 있는 돌을 주워다 오보 위에 올려 놓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훔체로를 보노라면 우리나라 제주도에 있는 돌하루방이 연상된다. 제주도 돌하루방이 큰 모자를 쓰고 큰 눈에 비대한 몸체를 보이는 것은 알고 보면 전형적인 옛 몽골족의 모습이다. 옛날 제주도는 원나라의 목마장으로 정해져 적지 않은 몽골인이 이곳에 주둔했기 때문에 제주도에는 몽골인을 닮은 돌하루방이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있다.

지난 90년 공신주의를 포기

우리나라 소주도 몽골의 영향을 받은 술로 알려져 있다. 몽골에는 아르키히라는 술이 있다. 영어로 몽골리언 보드카라는 이 술은 마유주를 끓여 그 수증기를 액화시킨 후 땅에 묻어 알코올 도수를 40도로 만들어 마시는 술이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는 소주를 아랭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몽골어 아르키히에서 온 말이다. 안동소주도 고려시대 몽골군이 안동에 머물 때 현지인이 제조법을 배운 술로 전해진다.

결혼 풍속도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여자의 족두리나 신부의 뺨에 찍는 연지 등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원래 몽골이란 단어는 용감하다는 뜻으로 칭기즈칸이 속해 있던 소부족의 이름이었다. 13세기 칭기즈칸에 의해 세계 초유의 대제국이 형성되면서 몽골이란 이름이 전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최근까지 나라이름으로 불려온 몽고라는 말은 청대(淸代) 이후부터다. 원래 중국인은 한민족 중심의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의해서 주변의 이민족을 몽매(蒙眛)한 야만인들이라고 경멸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명칭이 붙여졌다.

옛부터 몽골인은 활쏘기 말타기 씨름을 즐겼다. 칭기즈칸 시대부터 있었다는 나담축제는 매년 7월 11일 개최된다. 정부청사 앞 스후바도르 광장에서 혁명기념식을 치른 후 실시되는 이 축제에 몽골인이 쏟는 관심은 대단하다.

몽골인의 말타기는 매우 능숙하다. 몽골말은 인내력 기동력 견인력이 뛰어나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몽골군의 전술이 뛰어난 것 외에 말 잘 타고 활 잘 쏜 것에도 크게 기인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칭기즈칸은 몽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의 조국에선 지난 4백여년간 칭기즈칸이란 이름을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 이는 그간 몽골을 통치하다시피한 청나라와 옛소련이 그를 싫어했고, 몽골인의 자주의식이 되살아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 물결이 강하게 불어닥친 후 몽골은 지난 90년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최근에는 몽골 고유문자의 부활과 더불어 칭기즈칸이란 영화가 몽고에서 처음 제작되기도 했다. 보드카나 새로 지어진 술 이름도 칭기즈칸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칭기즈칸은 현재 몽골에서 개혁의 상징인 것이다.
 

기마민족인 몽골인들은 어릴 때부터 마술을 익혀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사진은 어린이날의 마술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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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 허용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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