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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과 소방관 사이의 마무리 투수



마무리 투수(또는 구원 투수)는 경기가 이기고 있을 때 경기를 끝내기 위해 등장하는 선수를 말한다. 경기 막바지의 절체절명의 상황에 등판하다보니, 구원 투수 한 명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왔다 갔다 하곤 한다. 엄청나게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너의 진짜 가치를 말해봐

메이저리그(MLB)는 구원 투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포지션 특성 상 던지는 이닝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A급 선발 투수는 1년에 200이닝 이상을 책임지는데, 구원 투수는 65이닝 정도 던진다. 회사원으로 비유하면, 시간당 효율은 좋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3분의 1이상 적게 회사에 나오는 셈이다. 때문에 구원 투수들은 연봉 계약에서 선발 투수보다 싼 가격에 계약을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와 일본은 구원 투수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동양에서는, 특히 일본에서는 마무리 투수에 대한 대우가 선발 투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렇게 가치가 엇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구원 투수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기록이 적어 그들을 제대로 평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구원 투수를 평가하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평균자책점, 세이브, 홀드다. 일단 평균자책점으로 구원 투수들을 평가하기엔 이닝이 너무 적다. 예컨대 65이닝을 던진 평균자책점 2.00 투수와 3.00 투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방어율은 꽤 차이가 나지만 65이닝 동안 실제로 내준 점수는 불과 6.4점 차이다. 투수가 배탈이라도 나면 한 경기에도 뒤집힐 수 있는 차이다.

구원 투수들만을 위한 기록인 세이브와 홀드는 어떨까. 세이브는 박빙에 등판해 경기를 마무리 한 상황의 횟수고, 홀드는 앞선 상황에서 등판했을 때 리드를 뺏기지 않은 횟수를 말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두 가지 모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3점차로 이기고 있을 때 올라와 연속안타로 2점을 허용하고 간신히 경기를 마무리한 투수는 세이브를 기록한다. 하지만 1점차 무사 만루의 상황에서 멋지게 병살타를 잡아낸 선수는 동점을 내줘 세이브에 실패한다. 분명 후자가 더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구원 투수는 방화범이었을까, 소방수였을까

이런 등판 상황에 따른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세이버매트리션들은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이름도 불을 끄고, 불을 지르는 마무리 투수들의 별명에서 따와 ‘셧다운’과 ‘멜트다운’이다. 두 가지 기록은 모두 투수가 등판한 상황을 확인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귀납적으로 계산한 기대승률이다. 예컨대 9회말 1점 리드 중인 팀이 승리할 확률은 86%다. 이때 마무리 투수가 등판해 경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이 선수는 팀의 승리에 14% 기여한 셈이다. 반대로 마무리 투수가 1점을 줘 동점이 된다면 기대 승률이 50%로 뚝 떨어지게 된다. 이처럼 등판 전과 등판 후의 기대 승률을 비교해 6% 포인트 이상 올린 경우는 셧다운, 6% 포인트 이하 떨어뜨린 경우는 멜트다운이라고 부른다.

자, 이제는 셧다운의 순위와 구원 투수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방식인 세이브와 비교해보자. MLB부터 살펴보면 100마일 직구로 유명한 세인트루이스의 트레버 로젠탈이 눈에 띈다. 로젠탈은 48개의 세이브를 거두며 MLB 전체에서 세이브 2위를 기록했지만 셧다운 순위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로젠탈이 팀의 승리 확률이 94%가 넘는(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등판해 많은 세이브를 올렸기 때문이다.

통계사이트인 스탯티즈의 도움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기록도 구해봤다(위 표 참조). 세이브 순위에서는 삼성의 임창용, NC의 김진성, 기아의 윤석민 같은 쟁쟁한 마무리 투수들이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셧다운 순위에서는 조상우가 2위 그룹을 큰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조상우는 같은 팀 마무리 투수 손승락 때문에 세이브는 5개밖에 없었지만,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불을 끄고 팀의 승리를 지켰다.

만약 셧다운이란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조상우를 팀의 준플레이오프 탈락에 불을 지른 마무리 투수로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이 결과를 본 우리라도 조상우를 올해 최고의 투수로 기억해주는 것은 어떨까.


 

201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홍기훈 기자
  • 글 및 사진

    bizball project
  • 에디터

    송준섭 기자
  • 일러스트

    황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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