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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똥은 애벌레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엄청나게 다양한 애벌레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애벌레를 직접 찾아보고 길러봄으로써 그들의 생물학적 요구를 이해할 수 있고, 곤충들을 보호, 퇴치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애벌레를 찾기 위해서는 그들이 있다는 모든 표시들을 잘 보아야 한다. 비록 애벌레를 쉽게 찾지는 못하더라도 보물찾기 같은 애벌레 탐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다.

방학이나 주말에 필자의 연구소에 생태학습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다. 이중 처음 온 아이들은 구름과 산에 막힌 연구소를 답답해한다. 아름다운 꽃도, 맑은 계곡물도 그냥 덤덤하다. 오히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그리고 이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게임에 탐닉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애벌레를 가르친다. 울퉁불퉁 돌기가 있어 험악해 보이는 사향제비나비 애벌레나 새카만 송충이같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들을 보면 경악을 한다. 나뭇잎 끝자락에 하얀 밀가루 반죽을 뒤집어쓰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제비나비붙이 애벌레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입으로 초록의 분비물을 토해내는 애기얼룩나방을 만지고는 소스라친다.

하지만 전혀 해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는 안심을 하고 이내 경계심을 푼다. 송곳같은 포도박각시 애벌레 돌기를 장난감처럼 만지고 손위에 올려놓고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애벌레들의 움직임을 즐긴다. 암청색줄무늬밤나방이 경계하듯 몸을 흔들어대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며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조용한 골짜기에 진동한다. 다소 이질적이고 껄끄러웠던 애벌레의 생활사를 자세히 관찰하고 알게 되면서 벌레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같다. 온갖 식물과 그 식물에 맞닿아 있는 애벌레와 애벌레에 연결되어 있는 숲을 체득한다. 자연과 소통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직접 느끼고 즐거움을 맛보면서 어려운 용어인 ‘생물다양성’도 쉽게 이해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틀, 사흘간 머무르면서 송충이라고 징그러워하던 존재를 예쁘다 하고 귀엽다 하니 실로 엄청난 변화다. 자연을 닮아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작은 내 손 끝으로 이뤄낸 변화에 보람을 느끼며 또 행복하다. 다 애벌레 덕이다.

첫걸음은 호랑나비 애벌레부터

지난 9개월 동안 애벌레를 분류하고 생존 전략을 탐구하면서 애벌레에 대한 해석과 족보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생태계의 교두보인 애벌레는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매력적이며 유용한 이상적 재료이다. 하지만 1년 내내 뚜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나 새와는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직까지 누구도 모든 종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마지막 생물 집단이다. 15년간 연구하고 있는 필자도 완전히 동정(Identification)을 할 수 있는 종류가 겨우 600여 종 안팎이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애벌레의 행동 특성을 고려하고, 찾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의외로 발견의 기회가 풍부하다. 산을 오르며 혹은 동네 공원의 가로수 나뭇잎만 잘 살펴봐도 언제나 애벌레를 볼 수 있다.

우선 수많은 애벌레 중에서 독성이 전혀 없고, 커서 눈에 쉽게 띄는 호랑나비과 나비 애벌레를 찾아보자. 호랑나비과 애벌레들은 그나마 흔하고 널리 펴져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새 똥같은 모양이나 냄새뿔을 내는 방어 전략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좋은 학습 주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호랑나비과 애벌레가 먹는 식물인 산초나무와 황벽나무, 그리고 당귀나 쥐방울덩굴의 잎만 세심히 눈여겨보면 귀여운 애벌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채집 후 단 몇 주간 키우다가 날개를 달고 나오는 아름다운 호랑나비나 제비나비를 보는 일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황홀한 일이다.

애벌레를 키우면서 생태계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필자도 호랑나비과 애벌레들을 키우면서 기후변화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의 월동 번데기가 겨울을 나고 봄에 날개를 달고 나오는 최초의 시점과 가장 많이 나오는 때를 조사해 기후변화에 따른 곤충 생태계의 변화를 5년째 연구하고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봄이 일찍 찾아오고 가을이 늦게 간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일찍 찾아오는 봄에 맞춰 더 빨리 우화를 할 것이고 일 년에 발생하는 횟수도 달라질 수 있다. 뚜렷한 결과야 최소 10년 이상 걸리겠지만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곤충의 생활사만으로도 심각한 기후변화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애벌레가 갓 먹은 잎을 찾아라

나비목 곤충의 애벌레는 99% 이상 식물을 먹는 초식성이다(한반도에서도 일본납작진딧물을 먹고 사는 바둑돌부전나비가 유일한 육식성). 그래서 모든 나무와 풀에는 나비목 애벌레가 존재한다고 믿어도 된다. 천천히 산길을 걷다보면 종종 나뭇잎에 앉아있거나 줄기에 매달려있는 모습이나 길을 걸어가는 애벌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행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애벌레들은 위장을 하거나 변장을 해서 숨은 채로 있기 때문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을 찾을 수 있다. 풀이나 관목 그리고 나무의 잎들을 조사할 때 잎 뒷면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아야 한다. 천적의 눈에 띠지 않는 자연의 훌륭한 은폐물일 뿐만 아니라 따가운 햇살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나뭇잎 뒷면은 애벌레에게는 정말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씨 좋은 날은 뜻밖의 행운도 있다. 열심히 뒷면을 올려다보면 잎 앞면에서 머리를 쳐 들고 공격하듯 몸을 부풀려 서 있는 왕오색나비나 홍점알락나비 애벌레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숨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놓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사마귀의 위용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느티나무나 팽나무에 주로 붙어있는 진딧물혹이나 혹벌처럼 나뭇잎에 튀어나온 돌기 모양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숨으려 해도 먹은 흔적을 없앨 수는 없다. 잎 가장자리가 가위로 잘린 듯 혹은 씹어 먹은 것처럼 잎이 너덜너덜한 흔적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잎의 잘린 부분이 갈색으로 변색된 마른 자국은 이미 오래 전에 먹은 흔적이므로 애벌레는 없다.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흔적이 있는 나뭇잎들을 관찰하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애벌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잎 뒷면이나 줄기 또는 땅 밑의 돌 틈도 애벌레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애벌레의 존재는 식물을 먹은 흔적(식흔)뿐만 아니라 주변에 떨어진 배설물을 보고 찾을 수 있다. 물기 있는 촉촉한 똥은 100%다. 산누에나방과, 솔나방과나 박각시과 같은 대형종의 애벌레 배설물은 지름이 7~10mm나 된다. 배설물은 애벌레가 살고 있다는 분명한 표식이므로 주의를 기울이면 애벌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명주실로 한데 묶여있는 잎들 역시 조사해보아야 한다. 먹이식물의 잎 끝과 끝을 말아 집으로 만들어 그 속에서 애벌레가 편안히 머물면서 생활하는 안전한 피신처이므로 항상 애벌레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네발나비와 큰멋쟁이나비 애벌레의 집은 엉성하지만 몸의 크기에 맞춰 집도 개조하고 넉넉하게 이용한다. 먹고 자다가 배설물로 가득찬 집이 더 이상 집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른 잎으로 옮겨서 새로운 집을 만든다. 아예 잎을 말아 사는 종류를 따로 떼어서 ‘잎말이나방과’로 분류하고 있으므로 말린 잎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나뭇잎 대신 지의류 먹는 애벌레

애벌레는 나뭇잎 등 꼭 식물만 먹는 것은 아니다. 지의류를 먹이로 하는 아주 특별한 애벌레가 있다. 지의류란 균류의 균사에 녹조류 또는 남조류가 공생하는 독립된 생명체다. 균류는 이산화탄소를 조류에 공급하고 조류는 균류에 유기영양물질을 제공하는 공생관계에 있다. 오래 된 나무나 바위에 붙어있는 에메랄드빛의 지의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애벌레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여름의 에피소드. 참나무 잎 위에 있던 애벌레를 채집하여 먹이식물로 참나무를 계속 넣어줬지만 전혀 먹지 않고 죽어버린 경우가 있었다. 먹이식물도 확실했고 왜 죽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올해도 참나무 고목에 붙어 있는 똑같은 종류의 애벌레를 채집했다. 참나무가 아니라 거기에 붙어있는 지의류를 먹고 넉점박이불나방이 나왔다. 하고 많은 식물을 놔두고 왜 지의류를 먹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붉은줄불나방, 넉점박이불나방, 좀점박이불나방, 알락노랑불나방 등 이끼불나방아과 4종의 애벌레가 연구소에서 지의류를 먹으면서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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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글·사진 이강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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