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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신원 정보를 먼지가 알고 있다고?



당신이 살인사건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는 경찰이라고 가정하자. 현재 용의자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에서 일주일째 잠복 중이다. 하지만 남자인 용의자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고 집주인으로 알려진 여성만 반려동물과 함께 목격됐다. 이런 경우, 어떻게 용의자인 남자가 집안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

미국 콜로라도대 생태및진화생물학과 노아 피어러 교수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집안에서 나온 ‘먼지’를 분석해서 거주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고작 먼지로 신원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니, 뜬금없어 보이지만 피어러 교수는 자신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마다 토양 환경과 기후 등 조건에 따라 미생물 분포가 다르다는 선행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집에 사는 야생동물(The Wild Life of Our Homes)’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미국 전역에서 연구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낀 1200가구가 실험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소와 거주자 수, 성별, 반려동물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뒤 연구팀의 지시에 따라 면봉으로 실내(거실 문설주)와 실외(현관문 문설주) 먼지를 수집해 보냈다. 연구진은 수집한 먼지 속에 들어 있는 세균과 곰팡이의 종류를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참가자들이 보내온 집 안팎의 먼지 샘플에서 총 12만5066종의 세균과 7만2284종의 곰팡이가 나왔다. 실내 먼지에서는 평균적으로 한 가정 당 5000종 이상의 세균과 2000종 안팎의 곰팡이류가 발견됐다. 의외로 집안에서 채집한 먼지가 집밖에서 채집한 먼지보다 세균과 곰팡이 종류가 많았다. 집밖 먼지 속에 있는 것보다 50%정도 다양했다.

곰팡이는 집 위치를, 세균은 집 구성원을

피어러 교수팀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집안에서 발견된 곰팡이 가운데 65%는 집밖에서도 동일하게 나왔다. 먼지 속에 들어있는 곰팡이의 종류는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신기하게도 집안에서 발견된 곰팡이가 집밖에서도 발견되는 비율은 지역과 관계없이 65%가량으로 비슷했다. 집안에 살고 있는 곰팡이균의 절반 이상이 집밖에서 왔다는 뜻이었다. 연구팀은 집안에서 발견된 먼지 속에 있는 곰팡이균의 종류를 분석하면 그 집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세균에서는 이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았다. 131캘리포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가정집 안팎에서 발견되는 세균 종류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대신 개인차가 컸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집안에서 발견된 세균 12만5066종 가운데 개인차가 큰 1994종(1.6%)을 이용하면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세균은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 혹은 생식기, 대변에 산다고 알려진 것들이다. 피부에서 유래한 포도상구균과 여성의 생식기에서 나오는 젖산균, 비피더스균, 대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람음성균 등을 분석하면 집에 사는 사람의 성비와 반려동물 종류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분석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사는 집에서는 남자가 많은 경우보다 젖산균이 많이 발견됐다. 반대로 남자가 많은 집에서는 피부에 사는 두 종류의 세균(Dermabacter, Corynebacterium)과 대변 속 세균(Roseburia)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들을 집안 구성원의 성비를 알아내는 ‘마커’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생식기에 사는 세균이 거주자 성비를 알려 주는 바이오 마커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피부에 사는 세균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피부에 사는 세균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몸집이 크고, 화장을 지우기 위해 여자가 남자보다 몸을 자주 씻는 것이 이유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코리네박테리움 속(Corynebacterium)의 경우 여성의 피부보다 남성의 피부에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또 세균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지 여부까지 알아냈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이들 동물의 입이나 대변에 사는 세균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개를 키우는 집에는 모락셀라 속(Moraxella) 등의 세균 56종이 더 많은 반면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프레보텔라 속(Prevotella) 등 26가지 세균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어떤 집에서 나온 먼지 속 세균을 분석했을 때 그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지 여부를 각각 92%와 83%의 정확도로 알아맞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생물로 범죄 용의자 추적한다

피어러 교수는 왜 미생물을 이용해서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 연구를 할까. 미생물이 범죄 수사를 돕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문이나 DNA가 범인을 찾아내는 강력한 증거로 쓰이고 있지만 때로는 지문이나 DNA조차 찾아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흔히 범죄 현장에 머리카락 한 올만 남아 있어도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
고 DNA 분석에 필요한 것은 모근이다. 머리가 자연스럽게 빠지는 경우 뿌리가 함께 나오지 않아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

피어러 교수는 범죄 현장에서 지문이나 DNA 수집이 어렵거나 증거가 부족한 경우 현장에 남아 있는 세균을 추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소지품에서 발견한 세균과 손에 사는 세균을 비교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피어러 교수팀은 컴퓨터 3대의 키보드에서 세균을 채집한 뒤 각 컴퓨터 소유자의 손가락에서 얻은 세균과 DNA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각각의 키보드에서 모은 세균의 DNA는 해당 컴퓨터 소유자의 손에 사는 세균의 DNA와 가장 유사했다.


컴퓨터 마우스와 손바닥에서 채취한 세균을 비교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9개의 마우스에서 채집한 세균과 마우스 사용자의 손바닥에서 얻은 세균의 DNA, 그리고 해당 마우스를 만진 적 없는 270명의 손바닥에서 모은 세균의 DNA를 비교했더니, 소유자와 마우스 사이에 공유하는 세균이 확연히 많았다. 피어러 교수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세균 DNA 분석 결과로 소유자를 추정하는 정확도는 70~90%에 달한다”고 말했다.

세균이 범죄 수사에 활용하기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상온에 뒀을 때 2주가 지나도 군집이 변하지 않을 정도로 일관성이 높다. 게다가 손에 사는 세균은 평균 150종이나 되는데 한 사람의 손에서 발견된 세균이 다른 사람의 손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13% 미만으로 매우 낮다.
 
‘미생물 수사’ 시대 다가올까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는 신발 밑창에 묻은 진흙에 섞여 있는 꽃가루만으로 신발 주인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추리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국제학술지 ‘미생물군집(Microbiome)’ 5월 12일자에는 마치 셜록을 흉내 낸 것 같은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사이먼 렉스 박사팀이 신발 밑창과 휴대전화에 붙어 있는 미생물을 분석해서 같은 장소에 방문했던 사람들을 가려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서 열린 세 개의 학회 참가자 91명에게서 샘플을 모았다. 특히 두 명은 이틀 동안 하루에 12시간씩 매 시간 단위로 샘플을 채집했다. 동시에 그들이 머문 자리에 있는 미생물 샘플도 수집했다. 전체 샘플을 분석한 결과, 연구팀은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끼리 공유하는 미생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과연 언제쯤 ‘미생물 수사’가 현실로 다가올까. 아직까지 e메일도 법적인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생물 수사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과학적인 근거만큼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 같다.

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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