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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23] ‘오지라퍼’가 되지 않으려면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친척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기에 쉽지 않다고 하니, 넌 의지력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한다. 그러면서 좀 더 부지런하게 살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화가 난다.

SNS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오지랖에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접미사 er을 붙여 ‘오지라퍼’라고 부른다. 사사건건 남의 일에 개입해 오지랖을 떠는 이들은 대체 왜 그러는 것이며, 내가 오지라퍼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May I help you?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조언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오지랖의 첫 번째 단계다. 연구자들은 ‘요청 받지 않은 조언’이 도리어 관계에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잘못된 조언은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공부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부모님이 들어와서 잔소리를하고 사라졌을 때를 떠올려 보자. 공부를 하려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왜 하필 이때 들어와서…’라는 생각이 들며 공부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는 자율성이 침해당했을 때를 잘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으면 그 사람이 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조언을 하기 전에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네가 혼자서 해낼 수 있겠지만) 혹시 도움이 필요하니?”라고 묻는 것이 좋다.

조언의 목적도 고민해봐야 한다. 상대를 위해 조언 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뛰어난 것을 자랑하고 싶은 거라면 조언을 하지 않는 게 낫다. 나의 기분을 위한 조언이 상대에게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나에게 유용했던 방법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도 좋은 조언이 아니다.

상어가 물고기를 잘 사냥한다고 해서 초원의 사자에게 사냥법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사람마다 성향과 환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그 사람에맞는 맞춤형 조언이 필요하다.

경험이 많다고 좋은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트로이 캠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도리어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다.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그 일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려서 이를 처음 겪는 사람들이 느낄 충격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천연덕스럽게 “그걸 왜 몰라”라고 묻는 것이 좋은 예다.

도움을 줄 때는 내가 어떤 것을 해줬느냐가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냐가 중요하다

도움, 얼마면 돼?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은 도움의 정도다. 도움을 지나치게 많이 줘도 도움 받는 이의 자율성과 자존감을해칠 수 있다. 일례로 부모가 아이의 숙제를 거의 다해줄 경우,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좋아져도 아이의 자존감은 제자리를 맴돈다. 심한 경우 아이는 자신이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가짜라고 느낄 수 있다. 또 지나친 도움을 받은 사람은 큰 빚을 진 것 같아 부담감이 커진다.

이러한 경향은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동양인들은 도움을 받는 것을 꺼린다. 특히 동양인이 상대가 강요하는 도움을 받았을때는 부담감을 심하게 느껴 관계가 악화된다는 연구도 있다.

도움을 주게 될 경우 상대가 원하는 만큼만 주자. 지레짐작으로 개입하기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디까지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어보도록 하자. 도움을 주고 생색을 내는 것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거나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라고 상대에게 말해주면 더 좋다.

상대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언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도구적 도움과, 공감과 위로를 요구하는 정서적 도움으로 나뉜다.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경우에는 도구적 도움이, 일상적인 푸념에는 해결책이 아닌 정서적 도움이 필요하다. 위로를 바라는 이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상대는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캐나다 요크대 심리학자 크리스티나트롭스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문제 해결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은 도구적 도움을 받은 사람보다 정서적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었고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지라퍼들은 도움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내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라며 서운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움을 줄 때는 내가 어떤 것을 해줬느냐가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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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일러스트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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