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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의 속사정 7] 가을은 독사의 계절?



서늘한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하면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독사(毒蛇)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살모사가 독이 오르거나 약이 차서란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일까. 독사의 대명사 살모사는 왜 독을 지니고 있는 걸까. 독을 가진 파충류에 대해 속 시원하게 파헤쳐보자.



겨울잠을 준비하는 살모사는 가을이 되면 영양분을 몸속에 저장하기 때문에 독성이 강해지고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영양분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먹잇감을 많이 사냥해야 하고, 사냥을 많이 한 살모사는 독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남은 독은 평소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의 양이 적다고 해서 ‘가을 살모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용혈독(핏속 적혈구를 파괴하는 독소)과 두 가지 종류의 신경독(신경조직을 파괴하는 독소)이 있어서, 운이 나쁘면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컵라면보다 빨리! ‘독’이 든 패스트푸드

호주의 북쪽 해안가에는 우리나라의 살모사보다 더 독성이 강한 타이판뱀이 서식한다. 몸길이가 1.5m에서 최대 2m까지 자라는 이 대형 코브라과 뱀은 길고 가는 몸을 가지며 황록색, 붉은빛이 도는 갈색, 또는 회색을 띤다. 타이판뱀의 독에는 매우 강한 신경독이 포함돼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 독소를 뱀의 이름을 따서 타이카톡신(독)이라고 부른다. 타이카톡신은 신경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피를 응고시킨다. 때문에 타이판뱀에게 물리면 두통과 구토, 경련, 마비, 내출혈, 근육 파괴, 신장 손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빠르면 30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다행히 1956년부터 해독제가 보급되고 있어서 제때 병원에만 도착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뱀은 독을 지닌 파충류의 대명사지만, 모든 뱀이 타이판뱀이나 살모사처럼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2700여 종의 뱀 중에서 타이판뱀이 속한 코브라과와 살모사가 속한 살모사과, 그리고 일부 뱀과를 제외한 나머지 2400여 종의 뱀에게는 독소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왜 타이판뱀과 살모사와 같은 일부 뱀들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호주과학원의 브라이언 프라이 교수는 일부 뱀들이 독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이들의 먹잇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상대하기 힘든 먹잇감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 독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사들이 주로 독이 없는 뱀들이 사냥하기에 벅찬 먹잇감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타이판뱀은 호주의 긴털쥐나 반티쿠트(쥐처럼 생긴 잡식성 유대류)를 잡아먹는데, 이들은 잘 발달된 이빨과 턱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사냥하러 무작정 다가갔다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가 있다. 그래서 타이판뱀은 주삿바늘과 같은 뾰족한 이빨로 재빨리 사냥감을 물어 독을 주입하고는 사냥감이 반격을 하기 전에 물러난다. 쥐와 반티쿠트는 사람보다 몸집이 작고 신진대사가 빠르기 때문에, 몸속에서 독이 빨리 퍼지고 몇 번의 발버둥과 함께 수 초 안에 숨이 끊어진다.



뱀에게도 비싸고 귀한 무기, 독

타이판뱀이나 살모사와 같이 독 있는 뱀들은 뾰족한 독니를 이용해 사냥감에 독을 주입시킨다. 하지만 독니 자체에는 독성 물질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독은 이빨이 아닌 머리 안쪽에 위치한, 특수하게 변화한 분비선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뱀의 분비선에서 만들어지는 독은 20가지 이상의 화합물로 이뤄져 있으며, 이 중 90~95%가 단백질과 폴리펩티드다. 두꺼운 연부조직으로 이뤄진 독 분비선은 뱀의 머리 좌우에 한 쌍 존재하며, 각각의 분비선은 독니와 연결돼 있다. 각각의 분비선에는 독을 짜낼 수 있는 압축근육이 하나씩 발달해 있으며, 독니는 마치 호스처럼 가운데가 뚫려 있다. 압축근육으로 분비선을 누르면 독니를 통해 독소가 분비되는 구조다.

놀라운 사실은 독사들이 필요에 따라 압축근육을 조절해 분비하는 독소의 양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양의 독이 필요한 큰 사냥감의 경우 분비선을 강하게 눌러서 많은 양의 독을 주입시키고, 반대로 몸집이 작은 사냥감의 경우 분비선을 약하게 눌러서 적은 양의 독만을 주입시킨다.

이처럼 독사는 몸 속에서 합성시킨 독소를 독니를 이용해 먹잇감에 주입시킨다. 하지만 독니 대신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독소를 분비하는 뱀도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서식하는 유혈목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목 부위가 피처럼 붉은색을 띠는 뱀이다. 이들은 머리 안에 위치한 독 분비선 이외에도 목 부위에 독 분비선이 한 쌍 더 있다. 이 분비선에서 나오는 독소는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유혈목이의 방어수단이다. 천적에 의해 목 부위를 공격받았을 때 찢어진 피부를 통해 밖으로 분비된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의 드보라 허친슨 교수팀은 2007년, 유혈목이의 목에서 분비되는 독소가 몸 속에서 합성된 것이 아니라 두꺼비에게서 얻은 독소임을 밝혔다. 두꺼비는 피부에서 독소를 분비해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유혈목이는 이런 두꺼비를 잡아먹어 두꺼비의 독을 자기의 것처럼 사용한다. 독소라는 복잡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된다. 유혈목이는 독을 만들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남의 독’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독이 귀하고 비싸게 만들어지다 보니, 독사들은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독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천적이 다가올 때 바로 독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맹독성의 산호뱀은 붉은색, 검은색, 그리고 노란색 줄무늬로 꾸며진 현란한 몸 색깔로, 코브라는 넓게 확장시킨 목으로 시각적인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편 방울뱀 종류는 꼬리 끝에 발달한 특수한 비늘 마디들을 이용해 ‘지글지글’거리는 경고음을 낸다.

 

독이 먼저일까 독니가 먼저일까

독을 주입할 때 사용하는 독니는 뱀에 따라 입 속에 다르게 위치한다. 살모사와 방울뱀의 긴 독니는 입의 앞쪽에 위치하며 앞뒤로 움직일 수가 있다. 반면 코브라의 독니는 입의 앞쪽에 위치하지만 살모사나 방울뱀의 독니와 달리 고정돼 있으며, 유혈목이가 포함되는 나트릭스아과 뱀들은 독니가 입의 뒤쪽에 나 있다.이렇게 독사마다 서로 다른 위치에 독니를 가졌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독 분비선과 독니가 함께 진화했으며 서로 다른 무리에서 따로따로 등장했거나, 혹은 독 분비선이 오래 전에 먼저 진화한 후에 독니가 별개로 진화했으리라 추정했다.

한동안 과학자들은 전자의 가설을 더 받아들였다. 독 분비선이 오래 전에 먼저진화했다면 뱀의 조상인 도마뱀 무리에서 독을 가진종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독을 가진 도마뱀은 아메리카독도마뱀과 멕시코구슬도마뱀, 겨우 2종만 알려져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프라이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이 가설을 180도 뒤집었다. 뱀과 아주 가까운 친척인 왕도마뱀류와이구아나류에게서 독소를 공급하는 분비선이 확인된 것이다. 독을 가진 도마뱀의 종류가 2종에서 100 종이상으로 늘어났다. 또 뱀이 도마뱀 시절부터 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일부 과학자들은 왕도마뱀류와 이구아나류, 그리고 뱀을 묶어서 ‘독을 가진 자들’이란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톡시코페라(Toxicofera)’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발견된 깃털공룡 시노르니토사우루스 복원도(왼쪽). 독을 이용해 사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공룡이다. 하지만 정말 독을 가졌을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오른쪽은 호주의 페렌티에왕도마뱀. 왕도마뱀류는 뱀과 가까운 도마뱀 무리로 턱에 있는 분비선에서 독소를 분비한다.]

혹시, 독을 지닌 공룡은 없었을까?

오늘날의 파충류 중에서 일부가 독을 가지고 있다면, 혹시 공룡 중에도 독을 가진 종류가 있지 않았을까. 미국의 박물학자 마이클 트위디는 1977년, 초식공룡인 이구아노돈이 독을 이용해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했을것이라고 저서에서 주장했다. 코끼리만 한 덩치를 가진이구아노돈은 원뿔형 엄지손가락을 가졌는데, 트위디는 이 엄지손가락에서 독소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생각했다. 하지만 이구아노돈의 엄지에는 독소가 분비될 만한 구멍이나 홈, 그리고 분비선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9년 미국 노스이스턴대의 엔푸 공 박사팀은 푸들만한 육식공룡 시노르니토사우루스에게서 독니와 독을 저장하는 독샘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중국에서 발견된 이 작은 육식공룡에게는 기다란 윗이빨이 있었는데, 이 이빨의 표면에는 독소가 지나갔을 법해 보이는 홈이 보였다. 연구팀은 윗이빨 위에있는 작은 공간에 독샘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정말로 시노르니토사우루스에게 독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공 박사팀이 연구한 시노르니토사우루스의 화석은 많이 훼손돼 있기 때문에 윗이빨 위에 과연 빈 공간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공간에 과연 독샘이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또 이빨 표면에 발달한 홈은 독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특징이기에, 단순히 이빨만 보고 시노르니토사우루스가 맹독성 공룡이었다고 추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말 치명적인 독을 가진 공룡이 있었을지 여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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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독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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