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첨단정보망 화재로 통신두절사태

시내 일부 및 뉴질랜드 등 11개국과 전화 불통

지난 3월10일에 일어난 한국통신 통신구 화재사건은 첨단정보사회를 지향하는 우리가 깜박 잊어버렸던 안전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날 오후에 발생한 화재로 지하 통신구를 지나가던 광케이블과 동축 케이블 가닥들이 1백70m 가량 소실됐고 이로 인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통신두절사태를 겪었다. 시내외전화는 물론이고 팩시밀리망, 무선전화 무선호출(삐삐)등 이동통신, 데이콤의 국제전화(002), 천리안 등 컴퓨터통신망, 라디오방송(AM), 신문사의 고속팩시밀리, 은행 기업 등의 온라인전용망이 일시에 마비됐다.

화재가 난 지점은 혜화전화국과 다른 전화국 또는 일반전화가입자를 잇는 통신케이블들이 통과하던 곳이었다. 혜화전화국은 광화문 구로 중앙전화국과 함께 한국통신의 주요장비들이 몰려있는 '핵심통신관문국'으로 이 때문에 통신피해는 의외로 커졌다.

먼저 혜화전화국은 구로전화국과 함께 서울에서 시외로 나가는 시외 전화망을 반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 인천 대전 춘천 문산 등으로 가는 시외전화가 불통됐다. 전용회선을 이용하는 기독교방송(CBS) 문화방송(MBC) 등 일부 라디오방송의 송출이 중단됐으며 각 신문사들이 지방인쇄시설에 보내는 고속팩시밀리가 기능을 상실했다. 신문의 경우 사고가 난 오후 4-6시가 한참 마감시간이어서 피해가 컸다.

한국이동통신 데이콤 무선호출사업자들은 국제회선과 컴퓨터통신시설 또는 이동통신시설만 보유하고 일반전화망은 한국통신의 기간통신망에 의존한다. 따라서 한국통신 시내외전화망과 이들의 통신시설을 잇는 전화회선이 끊어지면 연쇄불통사태가 빚어진다.

한국이동통신은 서울 장안동에 수도권 대부분을 담당하는 이동전화교환기와 무선호출집중국이 있는데 이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혜화전화국을 거치도록 돼있다. 무선과 유선을 잇는 통신회선이 절단됨에 따라 1백만대의 삐삐와 15만여대의 이동전화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데이콤 본사도 혜화-용산회선으로 시내외전화망과 연결된다. 이 회선이 절단되자 통신위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뉴질랜드 등 11개국과의 002 국제전화가 불통됐고 '천리안' 컴퓨터통신사용자들이 접속을 못하게 됐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혜화 을지전화국 관내 2만 6천여 일반전화가입자들이다. 시외전화 국제전화 무선통신 등은 우회 회선과 이원화된 통신선로로 금방 복구가 가능했지만 시내전화는 일일이 사고가 난 회선을 다시 이어주어야 했기 때문에 전화통화가 재개되기까지 3-4일을 기다려야 했다. 전화불통사태로 동대문상가 옷가게들이 철시했고 중국집 주인은 전화주문이 불가능해 매상이 크게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사고가 난 통신구는 지하철을 따라 지하 5-30m 에 설치돼 있다. 대개 지하철 전동차가 다니는 위에 설치되지만 환승역에서는 전동차의 옆이나 아래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통신구의 크기는 가로 세로 2m 정도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고 여러겹의 선반 위에 광케이블과 동축케이블들이 올려져있다.
 

화재가 난 직후의 통신구. 선반 위에 여러개의 통신케이블이 올려져 있다.
 

통신구 집중 감시장치 설치 안내
 

(그림) 혜화전화국과 관련된 통신계통도
 

통신구관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지하에 고이기 쉬운 물을 퍼내는 것. 통신구 중간중간에 습도를 측정하는 감지장치와 물을 퍼내는 양수기가 설치돼 있으나 작동이 안되는 것이 많고 작동되더라도 여러 단계를 거쳐 지상으로 물이 퍼올려지기 때문에 깊은 통신구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게 마련이다. 이번 화재는 이러한 배수장치가 이상을 일으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통신은 그동안 통신구관리에 소홀했던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하면서도 통신망 확장에만 열을 올렸지 안전관리에 수십억원을 아끼다 이러한 대형사고를 자초했다.

지난 84년 일본은 도쿄에서 발생 한 전화국화재사건으로 9만여회선의 전화가 불통되자 지하통신구 3백㎞ 전구간에 통신구 집중 감시장치를 설치했다. 그러나 한국통신은 자체 연구소에서 이 장비를 개발해 부산지하철에 설치하고 지난 92년 서울에도 이를 설치하려고 예산까지 확보했으나 실무부서의 반대로 보류 했다. 이 장비가 설치됐으면 화재를 미연에 감지했거나 감지를 못했더라도 정확한 화재지점을 파악해 조기 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다 당한 꼴 이다.

통신구관리도 혜화전화국과 서울 사업본부 건설국 두군데 실무부서끼리 서로 미루다 소홀하게 취급해온 것이 드러났다. 열악한 지하공간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에 대한 대책마련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1호선 시청-동대문구간의 통신구관리를 60여만원의 월급을 받는 3명의 직원에게 맡겨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나마 2명은 전기에 대한 상식이 없는 비전공자였다.

이번 사건은 정보사회에 대한 기계적인 접근이 얼마나 큰 위험을 수반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정부는 80년대 중반 이후 정보화를 지향하면서 통신망의 확장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만성적인 전화적체가 해소되고 첨단통신서비스에 있어서도 선진국과 거의 격차가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지난해는 전화시설이 2천만대를 돌파해 '1가구 2전화시대'를 바라보게 됐다. 시설용량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8위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광케이블 종합정보통신망 등 첨단통신서비스에 대한 많은 거액투자와는 달리 가장 기초적인 안전관리에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사고현장을 담당한 한 직원은 "화재가 아니라도 그동안 사고가 여러번 났어야 정상"이라며 상부에 여러번 사고의 위험성을 건의했는데도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44조원을 들여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 남아있는 동축 케이블을 전부 광케이블로 바꾸는 '정보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것.

그렇지만 초고속정보통신망이 완성된 후 이같은 통신사고가 일어난다면 사태는 훨씬 심각하다. 초고속 통신망에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정보들이 흘러다니기 때문이다. 고화질텔레비전 원격의료 국가기간정보망 등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기능이 중지되면 일순간 국가기능은 심각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신경조직인 통신망을 일개 정부투자기관에 송두리째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관리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또'첨단'만을 숭배하는 물신숭배에서 벗어나 '기초'부터 차근차근하게 다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신망이 불통되면 은행업무가 마비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 진로 추천

  • 정보·통신공학
  • 전기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