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기원전 10세기에 수도로 정한 이래,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 도시다. ‘준비된 평화’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 오스만제국 등 주인이 수없이 바뀌며 지금까지 분쟁의 역사 한가운데 놓여 있다. 또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옛 시가지를 둘러싼 예루살렘의 성벽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에 세운 성묘교회, 황금빛 돔이 인상적인 바위사원 등은 성지순례객이 아닌 관광객의 마음까지 경건하게 만든다.
예루살렘의 북동쪽 스코푸스산 기슭에는 아인슈타인의 유산을 간직한 히브리대가 자리 잡고 있다. 히브리대는 아인슈타인이 설립에 참여하고 죽기 전 전재산을 기부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국립대다. 이스라엘의 총리와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명문대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 히브리대에서 이스라엘 세계과학컨퍼런스(이하 WSCI)가 열렸다.
과학자 사이의 소통이 중요해
“젊은 과학도들과 노벨 수상자들이 함께 소통하며 과학적 영감을 나누고 미래에 중요한 동료 연구자도 발견하길 바랍니다.”
8월 16일 아침 히브리대에서 열린 WSCI 공식 오프닝 행사에서 WSCI학술위원장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저 콘버그 교수가 말했다. 콘버그 교수의 말대로 WSCI는 과학자들 간의 소통을 주목적으로 열린 대회로, 이스라엘 외무부와 과학부, 히브리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대회 기간 동안 17~24세의 젊은 과학도들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도 듣고, 소그룹으로 나눠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직접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다양한 국적의 조원들이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연구 주제를 정해 조사하고 토론해, 마지막날인 20일에는 포스터 발표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이화여대, 포스텍, 연세대 소속 7명의 학생들이 최용상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의 인솔 아래 참여했다. 학생들은 WSCI 참가 지원서를 작성하고 영어 면접에 통과해 한국대표단에 선정됐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공통적으로 깊고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라봤다고 말해요. 그러면 더 깊은 질문이 생기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다 보니 노벨상까지 받게 됐다고 합니다. 한결같이 겸손하고 유머가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대표단의 김승욱 씨(서울대)는 WSCI에 참가하는 동안 앞으로 어떤 과학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혜정 씨(이화여대)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직접 와 보니 다양한 국가와 전공 배경을 가진, 재능이 넘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창의성이 넘치고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어요.”
WSCI에 참가한 학생들이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예루살렘의 역사 유적지와 이스라엘의 경제 도시인 텔아비브를 방문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이스라엘의 팔색조 매력에 푹 빠졌다. 폐회 전날 밤인 19일에는 텔아비브의 해변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환송 파티가 열렸다. 파티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최용상 교수는 “WSCI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동기를 불어넣어줬을 뿐만 아니라, 관광과 파티 등 즐거운 체험까지 하게 해줬다”며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척박한 사막에 꽃 피운 녹색 기술
네게브사막 지대에 도달하자 따가운 햇볕과 40℃로 달궈진 황무지로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곳에 온 건 이스라엘의 특별한 농업 기술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은 국토의 약 60%가 사막으로 이뤄졌을 만큼 자연 환경이 척박하다. 때문에 일찍이 농업 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네게브사막 지대의 중심지 브엘세바에 위치한 라맛 네게브사막 농업연구소다.
네게브사막 지대의 토양은 매우 건조한 모래와 약간의 황토로 이뤄져 있다. 800~1200m 깊이의 지하수에서는 염분이 섞인 물이 나온다. 사막에서는 깨끗한 물이 매우 비싸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염분이 섞인 물이라도 귀하다.
라맛 네게브사막 농업연구소에서는 건조한 토양에서 염분이 있는 물을 이용해 질 좋고 양 많은 수확물을 얻는 방법을 연구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직접 농부들의 멘토가 돼 농사를 지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연구소의 농장 안에는 척박한 외부 환경과 달리 초록의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나무마다 맛좋은 토마토, 체리, 올리브, 포도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라맛 네게브사막 농업연구소 R&D 책임자인 야곱 모스코비츠는 “사막은 물이 부족한 대신 햇볕이 매우 강해 채소가 크고 건강하게 자란다”며 “사막에 물을 끌어들여 작물을 키우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농업 연구”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이스라엘 중부의 학술도시로 잘 알려진 레호보트 지역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히브리대의 네 번째 캠퍼스인 농업대학, 국립농업시험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농업 연구자를 양성하는 학술기관인 히브리대 농업대학을 방문했다. 히브리대 곤충학부의 보아즈 유발 교수는 연구 중인 초파리 방제에 대해 설명했다.
“초파리가 재배 중인 과일에 알을 까면 과일 생산량이 떨어집니다. 예전에는 그냥 살충제를 썼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좋은 곤충까지 다 죽일 뿐만 아니라 화학 성분 때문에 우리 몸에도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파리에게만 작용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초파리를 불임으로 만들었어요. 박테리아를 가득 채운 식물 수술에 초파리가 날아와 앉으면 다리에 박테리아가 묻겠지요. 이 초파리가 다른 초파리들과 만나 박테리아가 널리 전파되면, 자연스럽게 초파리 개체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과일 생산량도 늘릴 수 있지요.”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WSCI뿐만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 유적과 농업, 그리고 창업강국으로서의 면모까지 다양한 매력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땅에 분쟁이 잦아들고 평화가 깃들어 앞으로 제2회, 3회 WSCI가 계속 열리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