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보르니에는 프랑스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7년 동안 제공공기관의 최고재무관리자(CFO)로 일했다. e메일 인터뷰에서 보르니에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일을 시작하면 내 삶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사진작가가 된 그가 향한 곳은 아무 연고도 없는 중국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잘나가던 뉴요커였던 그는 2008년 돌연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의 도시, 봉황고성
후난성에 위치한 봉황고성은 여행서 론리플래닛이 꼽은 중국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 중 하나다. 유유자적 흐르는 타강(沱江)과 주위로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보통은 해가 진 뒤의 야경이 유명하지만 작가는 물 안개가 얕게 낀 이른 새벽의 풍경을 담았다. 이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오늘의 사진에 선정됐다.
순간을 낚는 사람들
낚싯대 앞에 앉아본 사람은 안다. 지리멸렬한 몇 시간의 기다림을 말끔히 씻는 그 순간의 손맛을 말이다. 사진작가의 일도 이와 비슷하다. 아침 안개를 찍기 위해서는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고, 높은 산에서 사진을 찍으려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런 준비 끝에 태어나는 것이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멋진 사진이다.
[보르니에는 멋진 빛을 놓치지 않는 작가다. 아침나절에 나무 사이로 비추는 빛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일부러 목동을 불렀다. 평생 모델이라곤 해본 적이 없을 목동의 포즈가 꽤 그럴듯하다(왼쪽). 오후의 따스한 빛은 누렇게 색이 바랜 그물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하루 일과를 마친 어부가 다음날 작업을 위해 다시 그물을 펼치고 있다(아래).]
빛을 지키는 형제들
여우비가 지나간 어느 날, 해가 지자 형제는 강가에 배를 댄다. 이내 불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제와 같이 고된 하루를 보낸 가마우지들도 형제의 주위에 오순도순 모여 앉는다. 작가는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형제를 따라다녔을까.
[다랑논은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자리한 좁고 긴 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랑논은 중국 윈난성 원양현에 있는 훙허하니 족의 다랑논이다. 그들은 강둑 위에서부터 높은 산까지 무려 3000층에 이르는 계단식 논을 쌓기도 한다. 작가는 주위의 높은 산에 올라 훙허하니 족이 만든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짓말 같은 풍경
누군가는 그의 풍경 사진을 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너무나 아름답기에 실제로 그런 풍경이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비법이 있을까.
“될 수 있는 한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좋다. 날씨를 거스르려고 해서도 안 된다. 풍경 사진작가에게는 날씨가 왕이다. 날씨를 믿고 따르면 상상한 것 이상의 마법 같은 사진을 자연이 선물할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 시간에 그 장소에 도착해야 된다. 그것은 오직 당신의 행운에 달렸다.”
누군가는 그의 풍경 사진을 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너무나 아름답기에 실제로 그런 풍경이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비법이 있을까.
[천 개의 영혼의 무덤 : 해발 4400m에 위치한 양칭 사원은 비구니 10만 명의 집이다.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그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15년 동안 이곳에서 불교를 공부한다. 마을 건너편에 듬성듬성 있는 높이 1.2m 크기의 작은 박스가 그들이 가장 혹독한 수양을 하는 곳이다. 일어설 수도 없는 그곳에서 비구니들은 가부좌를 틀고 온종일 명상을 한다. 어떤 이들은 며칠, 어떤 이들은 몇 개월, 어떤 이들은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다.]
문화를 알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보르니에는 초보 사진가들을 위해 매달 사진 워크숍을 연다. 전세계에서 찾아온 문하생들과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장소를 다니며 멋진 풍경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준다. 밝기, 노출, 구도 등 사진 기술도 알려 주지만 무엇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곳의 문화다.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보이는 풍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그렇기에 아직 할 일이 많다. 7년째 중국에 살고 있지만 아직 카메라에 담지 못한 대륙의 문화와 풍경이 많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중국의 곳곳을 발로 누비며 환상적인 풍경을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붉은 흙 : 다랑논의 경계 사이로 보이는 붉은 흙이 하얀 구름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논에서 자라는 다양한 색의 작물은 대지를 팔레트처럼 칠해놓은 것 같다. 윈난성의 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붉은 흙보다 더 곱고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