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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를 세는 영원불멸의 수

단위혁명 2018 ③ mol (몰)






“몰(mol)은 가장 원초적인 단위에요. 과학적인 양을 잴 때 하나, 둘, 셋 등으로 개수를 세면 되거든요. 그런데 몰이 국제표준단위에 들어간 건 화학자의 입김이 컸답니다.”

이경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말처럼 몰(mol)이 단위로 등장한 것은 화학자들이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면서부터다. 보일의 법칙, 샤를의 법칙, 이상기체상태방정식 등의 용어가 아스란히 떠오르는가. 어느 순간 화학자들은 알게 됐다.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일정 공간(부피)안에 존재하는 기체의 분자 수는 모두 같다는 걸. 그렇다면 모두 몇 개일까. 이런 개념에서 원자나 분자의 수를 뜻하는 몰이라는 단위가 탄생했고, 1몰은 6.02 × 1023개로 정해졌다. 탄소 12g 속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라는 설명과 함께. 이것을 ‘아보가드로 수’로 부르기로 했다.

이번에 몰의 기준이 바뀌게 된 것은 역시 질량과 관련이 있다. 탄소 12g은 질량 원기로 정해야 하는데, 질량 원기가 바뀌니 몰도 달라져야 했다. 이참에 몰을 좀 더 세련되게 정의할 수 없을까. 늘 질량이 골치였으니 아예 질량과 상관없는 단위로 정의하면 어떨까. 화학자들이 찾아낸 방법은 아예 아보가드로 수를 고정된 상수로 만드는 거였다. 계란 한판에 30개 하듯이 ‘1몰은 (탄소 질량과 상관없이) 몇 개’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 인류가 만든 가장 비밀스러운 시설이 문을 열었다.




첫 회에서 질량 단위의 기준을 새로 정하는 프로젝트로 소개한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몰의 새로운 정의를 염두에 두고 시작된 과제이기도 했다. 이경석 연구원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물리와 화학을 비롯해 재료, 기계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협력하는 대형 융합 과제여서 여러 국가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질량과 원자 개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실리콘(규소) 공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가장 핵심 국가는 독일이었지만 처음에 실리콘 공을 만드는 일은 컨소시엄에 속해 있지 않은 러시아에서 맡았다. 핵폭탄 제조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실리콘 광석을 이용했어요. 하지만 계속 벽에 부딪혔죠. 공 속에 있는 실리콘 동위원소의 비율을 정확히 알아내야 하는데 이게 어려웠거든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 모든걸 포기하고 다시 결정을 내렸죠. 질량수 28인 실리콘 동위원소만 골라내 실리콘 공을 만들자, 이렇게요.”
 

원심분리기로 원자폭탄 만들듯이

이 방법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우라늄 원자폭탄을 만드는 원리와 같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러시아의 핵 시설이 처음으로 서방에 문을 열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만들어진 실리콘 덩어리는 호주로 건너가 2개의 공으로 깎였다. 이 공이 다시 독일로 건너와 과학자들의 검사를 받았다. 과연 표면에 산소 원자가 달라붙어 산화된 것은 없는지, 눈에 보이지 않게 찌그러진 곳은 없는지 등을 정밀하게 검사했다. 이 연구원은 “당시 우리 팀은 독일 연구소에 가서 깎아내고 남은 조각들을 검사해 실리콘의 동위원소 비율이 균질한지 등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 서 나 온 새로운 아보가드로 숫자 는 6.02214129 × 1023개(잠정)다. 그동안 사용해온 숫자와 비교하면 소수점 7, 8번째 자리가 정확해졌다. 그만큼 세계 곳곳의 실험실에서 나온 몰 단위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이다. 더구나 2018년이 되면 화학 시간에 아보가드로의 수나 1몰을 얘기하면서 탄소 12g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1몰은 그냥 아보가드로 상수만큼의 입자 개수라고 말하면 된다. 하루는 24시간이고, 1시간은 60분인 것처럼 말이다. 겨우 이 정도 작은 숫자 하나 정하려고 그 수고를 하나 싶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전진이 바로 과학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당장 혜택을 받는 쪽은 나노화학이나 나노바이오 분야다. 몰은 ‘몰 농도’라는 말처럼 농도를 표현할 때 많이 이용된다. 혈액 속에 아주 작은 단백질이 몇 천개 있다, 몇 만 개 있다라고 말하거나 대기 속의 미세먼지 농도를 표현하고 싶을 때 데이터를 좀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늘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해왔다”며 “비록 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숫자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있을 숫자를 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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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 일러스트

    남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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