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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초인적인 벼락치기, 성공 비법은…?



똑, 똑, 똑, 똑…. 시계소리에 맞춰 A기자는 침을 꼴깍 넘긴다. 이렇게 긴장하는 건 원고 마감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은 추석 연휴도 있어 편집실이 ‘초긴장모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일까. 지난주까지 그렇게 생각이 안 떠오르던 원고 첫 부분이 이렇게 잘 떠오르니 말이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B기자는 한가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원고라면 이미 지난주에 다 끝냈단다. B기자의 인생에 벼락치기란 없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인생에서 한 번쯤은 벼락치기를 해봤을 것이다. 벼락치기를 하면 이상하게 갑자기 집중이 잘 되면서 잘 외워지거나 아이디어가 술술 떠오르는 것 같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초인적인 울트라파워’가 샘솟기라도 하나 보다. 이 힘을 잘만 사용하면 효과적인 벼락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짚고 갈 문제, 벼락치기도 하던 사람이 꼭 한다.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을 해둔다면 굳이 막판에 쳐서 벼락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벼락치기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감 직전에 일을 끝냈을 때 앓던이가 쑤욱 빠진 듯한 후련함에 중독된 탓이다.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데, 신경전달물질마다 뇌에서 작용하는 경로가 다르다. 길이 없었던 들판에 여러 사람이 같은 경로로 지나다니면 길이 생기는 것
과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이 같은 경로를 여러 번 반복해 지나가면 뇌가 거기에 적응한다. 즉, 벼락치기를 자주 할수록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작용하는 경로가 굳어져 습관이 된다. 결국 벼락치기를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벼락치기를 한다.



“이거 시험에 안 나오니까 외울 필요 없어!”

학창시절에 선생님에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내용을 이해한다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는다. 이와 반대로 열심히 달달 외웠는데 뒤돌아서자마
자 잊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굳이 오랫동안 저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뇌가 며칠안에 잊어버리도록 단기기억으로, 오랫동안 저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나도록 장기기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기 위해 명함에서 본 번호나 아침에 편의점에서 앞사람이 샀던 음료 이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했던 재미난 얘기는 굳이 오랫동안 기억할 필요가 없다. 이런 기억들은 해마에서 단기기억
으로 저장된다. 하지만 이런 기억 중에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것, 인상 깊었던 것은 대뇌에 새로운 저장 공간이 생기면서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장기기억은 몇달에서 길게는 몇 년, 어떤 것은 평생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에서 두 번 겪기 힘든 사고나 무척 행복했던 경험이 아니고서는 새로운 자극이 처음부터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는 쉽지 않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아무 의미 없이 알파벳을 뒤죽박죽 적은 단어를 실험참가자에게
보여주고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재미있게도 단어를 반복적으로 본 사람은 한참 뒤에도 그 단어를 기억했다. 반복한 횟수가 많을수록 기억하는 기간도 길었다. 단기기억을 반복하면 장기기억으로 남는다는 얘기다.

벼락치기로 시험을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급해도 한 번만 보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할 것이다.
 




내일까지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 발표 자료가 있다. 허둥지둥 대며 컴퓨터를 켜고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내용은 둘째 치고 제목과 본문에 들어갈 글자체와 크기, 파일에 그림을 넣는 방법 등이 떠오르지 않아 ‘멘붕’에 빠져버렸다. 결국 파일을 절반도 완성하지도 못한 채 뜬눈으로 해가 뜨는 걸 구경해야만 했다. 이때 벼락치기를 망친 원인은 순식간에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감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비법 중 하나는 뛰어난 기술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오래 걸리는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온몸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자동차 운전이나 피겨스케이팅, 외국어를 벼락치기로 습득할 수 있을까. 당연히 오랫동안 연습하거나 경험해야 하는 일이므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일단 이런 동작에 숙달되면 동작 하나하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거나, 몇 년 동안 전혀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해봐도 마치 어제까지 했던 것처럼 기억날 때가 있다. 온몸이 기억했기 때문이다.

김영보 가천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과거에는 대뇌피질의 각 부위가 다리나 혀, 눈, 팔 등을 따로따로 관
장한다는 ‘국소주의’만 정설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시기에 경험한 기억끼리도 서로 연결돼 있다는 ‘연결주의’가 부각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온몸의 각 부위가 동작을 기억한다는 ‘기억의 편재화 이론’도 밝혀졌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머리뿐만 아니라 팔다리 같은 온몸이 오감으로 기억하고 습관이 돼야, 그 분야의 ‘선수’가 된다는 얘기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아도 차를 잘 몰고, 김연아 선수가 동작을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고도 매끄럽게 갈라쇼를 해내며, 미국인이 아무리 연습해도 한국어를 어눌하게 발음하는 이유는 각각 운전 기술과 피겨 동작, 영어 발음을 수백만 번 반복해 습관화됐기 때문이다.

벼락치기도 성공하려면 공부나 일에 대해 ‘선수’가 돼야 한다. 혹시 선수가 빨리 되는 비법은 없을까. 자
기가 하는 일에 대해 오감이 기억하게 하자.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도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시
험을 앞두고 있다면 새로운 지식에 대해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문장을 보고, 입으로 읽으
면서 귀로 들어보듯이 여러 감각으로 익히는 것도 좋다. 물론 운전이나 운동, 일처럼 몸을 움직여서 하는 일은 평소에 습관으로 만들어두는 것이 벼락치기에도 유리하다.





벼락치기를 할 때 가장 미련한 방법이 밤을 꼴딱 새는 것이다. 밤 새워 공부하거나 일을 했는데 정작 시험 시간이나 회의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다음 날 일을 그르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벼락치기로 너무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머릿속에 넣으면 과부하가 일어난다. 이 상태로 밤을 새우면 애써 집어넣은 지식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켜 있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쓸모없는 기억은 지우고 꼭 필요한 기억만 남겨 머릿속에 저장한다. 단기기억
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는 것도 수면 중에 일어난다. 잠을 자는 동안 뒤죽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을 정리
하는 셈이다. 또한 낮 동안 온몸에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는 시간도 바로 이때다.

전문가들은 날마다 쌓인 피로를 풀고,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하루에 7~8시간 정도는 잠을 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잠을 잘 만큼 자면서 어떻게 벼락치기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벼락치기를 시작하는 시간을 앞당기고 충분한 수면시간을 선택해보자. 잠을 자는 동안 생각도 정리하고 긴장도 풀려서 다음날 중요한 시험이나 일이 좋은 컨디션만큼 술술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복하기, 평소에 습관 들이기, 마감 당기고 푹 자기. 신경과학자들이 추천하는 벼락치기 성공요령이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이상하다. 마감에 닥쳐서, 시간이 없을 때 후딱 하는 게 벼락치기 아닌가? 미리 한다면 그게 벼락치기일까. 결국 성공적인 벼락치기는 결코 벼락치기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교훈 아닐까.

201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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