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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지키는 숨은 파수꾼 워터마킹

원본에 삽입돼 주인 권리 보호한다

랜디 마크씨는 자신의 처지에 늘 불만을 갖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회사의 제품 개발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마크씨는 회사의 사장 때문에 정말로 화가 났다. 며칠 전 사장이 그에게 컴퓨터 디스켓을 건네면서, 미술품 느낌이 나는 새로운 스타일의 디지털 캘린더를 디자인하는데 디스켓에 있는 사진들을 사용하라고 말했다.

디스켓 내용을 확인한 마크씨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일 안에 담겨 있는 사진들은 평소 그가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평소의 행실로 볼 때, 사장은 분명 이 작품에 대해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디지털 사진에 워터마크가 삽입돼 있다는 점이었다. 마크씨는 그날 오후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약 여섯달 후, 사장이 지적 재산권에 대한 절도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사진이 불법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에 분개했다. 그는 마크씨 회사의 디지털 캘린더에 삽입된 사진을 일일이 확인했다. 워터마크 추출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 속의 워터마크를 추출한 결과, 자신이 삽입해 놓은 고유의 워터마크가 사진마다 들어있었다. 꼼짝할 수 없는 증거를 잡힌 사장은 변명 한마디 못하고 구속되고 말았다.

디지털 창작 활동 뒷받침

최근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 사용의 확산은 기존 아날로그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몇년 사이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정보화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렇게 환경이 디지털로 변함에 따라 전에 없던 현상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책과 그림, 사진, 음악, 비디오 등의 데이터들이 모두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창작활동이 왕성해지고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다는 점은 정보화사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야말로 온통 디지털 저작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런 창작활동과 배포가 자유로워질수록 저작권에 대한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정작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작물은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고 접근하기 쉬우며, 복사할 경우 또 하나의 원본이 금새 만들어진다. 결국 이런 장점이 악용돼 원작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복제되고 표절되기 십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가 담긴 데이터를 복제하거나 변형해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디지털 저작물의 권리 보호는 지식정보화사회의 필수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디지털 저작권을 지킬 수 있는 기술적 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질 높은 콘텐츠를 창작하려는 의욕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하고 노력해 애써 만든 작품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용당하고 복제당한다면 누가 이런 고생을 사서하겠는가. 실제로 디지털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관련된 법규의 정비뿐 아니라 기술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에 있다.

디지털로 부활한 숨은 그림


최근 인터넷 사용이 쉬워지면서 음악과 책 도 파일 형태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디 지털 형태의 창작물은 쉽게 복사되고 표절 될 우려가 있다. 디지털 저작권 보호를 위한 정보보호 기술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내가 작성하고 창작한 문서와 그림 그리고 사진들, 나의 피땀이 서려있는 음악과 영상 등에 ‘내 것’이라고 표시하는 방법이 ‘디지털 워터마킹’(Digital Watermarking)이다. 워터마킹이란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술은 물에 젖어 있는 상태에서 그림을 인쇄하는 기법에서 유래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7백년 전인 13세기 말의 이탈리아 파브리아노 지방에는 수많은 제지공장이 있었다. 각 공장마다 생산되는 종이는 품질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제지업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상품임을 입증하기 위한 ‘특정 표시’가 필요했다.

이들은 종이의 원료인 섬유질을 물에 불리는 과정에 ‘숨은 그림’을 그린 후 말려내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만의 표식을 종이에 삽입할 수 있었다. 이때 ‘젖어있을 때 하는 표시’라는 의미로 워터마크라는 용어가 생겼다.

이후 워터마킹 기술은 군사적 목적의 통신문이나 비밀편지에 특수잉크 또는 약품 등을 사용해 받은 쪽에서 특별한 처리를 해야만 볼 수 있도록 하는데에도 쓰였다. 현대에도 워터마킹 기술은 널리 쓰이고 있다. 바로 지폐다.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불빛에 비춰보면 그냥 볼 때는 나타나지 않는 무늬가 훤히 드러난다. 지폐에 숨어있는 그림인 ‘은화’도 종이(섬유질)가 젖은 상태에서 인쇄하고 말린 후 다시 양면에 인쇄하는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기존의 워터마크를 디지털화해 디지털 이미지나 오디오, 비디오 파일 등에 저작권 정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비트 패턴을 삽입, 워터마킹의 개념을 디지털 데이터에 적용한 것이 바로 디지털 워터마킹이다.

워터마크의 메시지는 워터마킹을 할 대상, 즉 사진 이미지나 비디오 또는 오디오 파일 안에 포함된다. 이때 메시지는 파일 뒤에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파일의 내용 안에 뒤섞이게 되기 때문에 워터마크가 삽입돼도 원래 파일보다 크기가 늘어나지 않는다. 아울러 원래의 파일 포맷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저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워터마킹된 후에도 겉보기에는 원래의 콘텐츠와 거의 차이가 없다. 또한 입혀진 워터마크는 콘텐츠에 변형을 가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워터마킹이 암호기술보다 뛰어난 이유


워터마킹의 가장 흔한 예는 디 지털 작품에 자신만의‘낙관’을 찍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용을 제한하거나 작품에 영향을 미치 지 않는 형태로 자신만의 마크 를 몰래 숨길 수도 있다.


‘한 도둑 열 사람이 못 지킨다’고 디지털 콘텐츠를 복사하는 고성능의 복사기술이 점차 교묘한 방법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콘텐츠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첨단기술을 필요로 했다. 첫번째로 선택된 기술이 암호기술이다. 그러나 암호는 전송 상에서만 콘텐츠를 보호해줄 뿐 수신자에게 전해져 암호가 풀리면 그 다음 상황에서는 콘텐츠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암호가 풀린 후에도 콘텐츠를 보호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요구됐는데, 이를 만족시키는 기술이 바로 워터마킹이다.

워터마크는 콘텐츠가 사용되고 있는 동안에도 결코 제거할 수 없다. 워터마크는 콘텐츠와의 분리 불가능성을 기본 특성으로 갖는다. 이 외에도 워터마킹 시스템은 수많은 특성을 갖고 있는데, 각각의 특성은 적용되고 있는 콘텐츠에서 워터마크가 해야 할 역할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워터마크의 가장 흔한 예는 디지털 창작물에 ‘낙관’처럼 자신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웹 상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나 동영상에 자신을 표시할 수 있는 마크를 새겨 넣어 소유권 주장과 무단복제를 방지하는 방식이다.

음악 파일에도 워터마킹 기술이 이용된다. 얼마 전 온라인 음악 서비스 회사인 벅스뮤직이 1백1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음악을 무단 복제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저작권을 둘러싼 온라인과 오프라인 업체 간의 갈등이지만, 디지털 워터마킹을 이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디지털 음원에 음반사의 저작권과 사용제한 정보를 워터마크로 삽입한다. 이때 워터마크는 원래 파일과 음질차이가 나지 않도록 삽입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정상적으로 이용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파일을 악용할 경우는 아주 쉽게 적발할 수 있다. 삽입된 워터마크만 추적하면 현재 이 파일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으며 어느 경로를 거쳐 어디에 저장되고 있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횟수를 제한하는 워터마크를 삽입하면 일정 횟수 이상에서는 더이상 복제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분야와 더불어 전자책 분야에도 워터마크가 쓰이고 있다. 전자책에 들어있는 이미지나 글자 간격, 줄 간격 등에 워터마크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소유권 정보를 표시하는 것이다.

복제 방지와 저작권 보호를 위해 탄생한 워터마킹 기술이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바로 방송 모니터링 기술이다.

방송 여부 확인하는 디지털 증거


디지털 워터마킹은 중세의 제지 업자들이 자신들의 표식을 종이 에 나타내는 워터마크란 말에서 비롯됐다.


1997년 일본에서는 TV광고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적어도 두개 이상의 방송국에서 주어진 광고시간보다 넘치는 TV광고를 예약 받았다. 결국 광고주들은 방송되지도 않을 수천개의 광고방송을 위해 수억엔의 돈을 지불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같은 일이 20년 이상 동안 비밀리에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제 광고방송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광고방송을 일일이 세어가며 자사의 광고가 방영되는지를 감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럴 때 워터마팅 시스템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광고주는 자신이 지불한 만큼 광고가 방송됐다는 사실을 확인 받기 원한다. 입장을 바꿔 방송사는 광고주가 원하는 시간에 광고방송을 내보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원한다. 이 때 방송신호에 워터마크를 삽입하면 언제 어디에서 방송됐는지를 워터마킹 신호를 해독함으로써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광고주가 저녁 7시와 9시에 자신의 광고가 방송되기를 원한다고 해보자. 광고주는 자신의 광고에 워터마크를 삽입해 방송해달라고 방송국에 요청한다. 그러면 광고주는 그 시간대의 방송을 녹화해 방송데이터를 분석할 때 워터마킹 신호만 해독하면 원하는 시간에 방송이 나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워터마크에 실시간의 정보를 저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국에서도 워터마크가 삽입된 광고를 내보면 자신들이 광고주가 원하는 시간에 방송을 했다는 ‘디지털 증거’를 남길 수 있다. 이렇듯 워터마킹 기술은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를 넘어 디지털 분쟁 해결에도 쓰일 수 있다.

콘텐츠 제공자는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찾을 수 있으며,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은 질 좋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세상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워터마킹 기술. 이제 여러분이 이 기술의 주인공이 돼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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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유혜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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