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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고난은 우리를 성장시키지 않는다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17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다. ‘고생해야 사람이 된다’는 말은 진리처럼 회자된다. 이런 말은 고생 그 자체를 성공에 필수적인 요건으로 미화한다. 괴로워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난이 그 자체로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난보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가에 대한 과정이다.

억울함이 피해의식 키운다

어떤 이는 고난으로 성장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희망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반면 어떤 이는 고난으로 마음속 어딘가가 뒤틀린다. 본인은 너무나 힘든데 주위는 여기에 관심이 전혀 없을 때다. 철저한 고독으로 점철된, 누구에게도 고통을 호소할 수 없는, 참고 견디라는 말만 돌아오는 고난은 억울함과 버림받았다는 상실감만을 남긴다. 이 감정은 마음속에서 ‘피해의식’이라는 응어리가 된다.

혹자는 이런 사람들이 누구보다 억울함과 버림받는 아픔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선뜻 도와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번 피해의식이 생긴 사람은 배려 대신 무차별적인 분노를 갖는다.

‘나도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야 한다’는, 일종의 복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이겨낸 본인을 긍정하고 이상화하며 고난을 ‘꼭 필요했던 일’로 포장한다. 남들도 다 그런 고생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고생을 남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예컨대 벌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체벌에 찬성하며 그래야 인간이 된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물리적 체벌의 효과는 단기적이며 부작용이 훨씬 많다. 장기적인 교육적 효과는 미약하다).

피해의식은 공격성을 높이기도 한다. ‘내가 여기까지 어떤 고생을 해서 올라왔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가로막는 사람을 쉽게 공격한다. 타인을 괴롭히고 난 뒤에는 ‘나는 고생했으니까, 그럴 자격이 있다’며 합리화까지 한다. 군대, 직장, 가정에서 각종 가혹행위가 대물림되는 데 이런 메커니즘이 일부 작동한다. 가혹행위를 하는 당사자도 과거의 고생 때문에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지만, 이를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고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나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너희는 그러지 않아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개인의 선한 의지가 필요하다. 좋은 행동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문제해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도 있다. 고통을 미화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한 개인의 신화가 있다고 하자. 그것을 이겨낸 개인이 대단한 것이지, 고통이 그를 성장시킨 게 아니다. 또 겉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정말로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난을 주기보단 함께 헤쳐 나가야

피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 필자의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 분은 그동안 자신을 혹사시켜가며 공부하는 사람을 꽤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성취를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특별히 강하며, 남에게도 그런 공부법을 강요했다고 한다. 또 다시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혼자 낑낑 대며 고생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응원해야한다고 지인은 충고했다. 그는 “남들도 본인처럼 독하게 아등바등 살아야 좋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게 더 좋은 거잖아”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생각해 본, 고난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이러하다. 불필요한 고통은 최대한 줄이고,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건 당연한 거야’라며 방관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돕고 위로해주자. 어떻게 ‘함께’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혼자 이 과정을 거치면 설령 결과가 좋았더라도 속으로는 억울함과 피해의식 같은 어둠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사람이 ‘혼자’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고난이란 없다. 따라서 고난 자체를 미화하고 이겨내길 강요하는 사회보다 고난에서 함께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옳다. 아픈 사람은 청춘이 아니라 환자다. 독하게 살라고 권하기보다 서로에게 해독제 같은 존재가 되자고 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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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에디터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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