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중세대학

여성과 가족은 없고 오직 남성만


중세 대학
 

유럽에서 대학 교육이 처음 시작되던 시절 과학은 신학과 철학의 뒷전에 밀려 '기초교양과목' 수준 에 머물렀다. 1190년경 볼로냐 대학을 필두로 1200년경 파리 대학, 1210년경 옥스퍼드 대학이 설립 됐는데, 대부분 성당학교 체제에서 발전한 형태였기 때문에 성직자를 양성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 였다. 과학 연구는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생물학, 물리학 저작을 읽고 토론하는 수준이었 다. 교수와 학생 모두 새로운 과학 내용을 탐구하기보다 신학의 규율을 따르고 복종하는데 비중을 뒀다.

당시 신학의 전통에서는 여성의 존재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탓에 대학 은 남성만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학자들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장려됐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부 주교인 맵은 여성의 공통점을 '사악함'이라 규정하고 결혼반대론을 펴 인기를 끌었다.

중세의 가장 심오한 과학자로 알려진 옥스퍼드 대학 교수 그로스테스트(R. Grosseteste, 1168-1253)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물리학(특히 광학)과 기상학을 다룬 논문을 여러편 저술했고, 수학과 실험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무엇보다도 충직한 기독교 신자라고 여겼다.

그로스테스트는 초대 학장으로서 그리고 주교로서 자신이 관할하는 학자들과 성직자들에게 엄격한 정절을 요구하고, 탈선을 엄격히 처벌했다. 그에게 이상적인 공동체는 여성과 가족이 배제되고 남성 지식인만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신부들을 시켜 수녀들에게 젖이 나는가 짜보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 누가 타락했는지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독신주의의 분위기 탓에 교수들은 공시적으로 가족이 없었다. 파리 대학의 한 학자는 비밀 결혼 사실이 폭로되자 성난 폭도들에게 거세당했다. 아내와 이혼한 어떤 학자는 다시 화해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그렇지않으면 교수직이 박탈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어땠을까. 한 설명에 따르면 유럽에서 매춘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대학이 설립되던 때와 일치한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사창가들이 대학 가까이에 형성됐으며, 주고객은 대학생이었다. 일반적인 여성과의 결혼은 금지하는 대신 사창가 출입은 허용한 사회 분위기가 흥미롭다.


여성과 가족은 없고 오직 남성만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철학·윤리학
  • 종교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