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Life & Tech] 왕좌의 게임 속 끝나지 않는 겨울의 비밀

왕좌의 게임 속 끝나지 않는 겨울의 비밀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가상의 대륙 ‘웨스테로스’의 겨울은 매섭다. 바람은 두꺼운 옷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눈은 그칠 줄 모르며, 어둠은 땅을 집어 삼킨다. 괴물이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기까지 한다. 하지만 웨스테로스 사람들이 겨울을 무서워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다.
겨울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이 지독한 계절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웨스테로스에서는 겨울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변덕이 심한 겨울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십 년을 가기도 한다. 여름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에서는 7년이 넘도록 따뜻한 여름이 지속된다. 풍문으로는 여름이 길수록 겨울은 더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주인공들이 ‘겨울이 오고 있다’며 잔뜩 겁을 먹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웨스테로스에서 가장 추운 곳은 북쪽의 성벽(The Wall)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는 ‘나이트워치’는 겨울을 특히 무서워 한다.
[웨스테로스에서 가장 추운 곳은 북쪽의 성벽(The Wall)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는 ‘나이트워치’는 겨울을 특히 무서워 한다.]


삐뚤어진 자전축이 계절 만든다

웨스테로스의 비밀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구에서 계절이 생기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지구가 막 태어났을 때 커다란 무언가가 부딪혔고, 그 뒤로 지구는 자전축이 23.5°만큼 기울어져서 태양을 공전한다. 삐뚤어져 돌기 때문에 남반구와 북반부에 도달하는 태양광선의 양에 차이가 생긴다. 반대로 자전축에 관계없이 일조량이 일정한 적도와 극지방은 일 년 내내 비슷한 날씨를 띤다. 하지만 지구의 계절은 기간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지 않는다. 지구의 자전축이 몇억 년 째 비교적 안정적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끝나지 않는 겨울에 대한 비밀을 푸는 출발점도 자전축이다. 만약 자전축이 고정돼 있어 계절이 일정한 거라면, 자전축이 끊임없이 바뀌면 계절도 멋대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달이 없어지거나 지금보다 훨씬 작고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성이 없는 행성은 자전축이 중력 섭동에 의해 크게 바뀐다. 중력 섭동이란 한 행성이 다른 무거운 천체의 중력에 의해 조금씩 움직이는 현상이다. 목성과 같이 지구와 가까운 행성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진 수천, 수억 개 천체의 작은 중력이 합쳐져 지구가 요동칠 수 있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계 다른 위성에 비해 달이 무겁고 가깝다. 달이 훨씬 큰 중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중력 섭동 없이 안정적이다.

프랑스 파리 천문대의 천문학자 자크 라스카르가 2008년 발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달이 존재하는 한 지구는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 자전축이 1.3°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달이 없어지면 비슷한 기간 동안 지구의 자전 궤도는 0°와 84°사이에서 크게 변한다. 실제로 아주 작은 위성 두 개 만을 가진 화성은 시뮬레이션 결과 중력섭동 때문에 자전축이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웨스테로스는 수 억 년에 걸쳐서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 수 년 사이에도 제멋대로 변한다. 웨스테로스에는 달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웨스테로스의 달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중력 섭동만으로는 그렇게 짧은 시간에 계절을 맘대로 바꿀 수 없다.

또 하나의 가설은 이심률이 아주 큰, 심한 타원 모양의 공전 궤도다. 이럴 경우 근일점과 원일점의 차이가 커서 공전으로도 계절이 생길 수 있다. 이 가설은 아주 길고, 추운 겨울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케플러 제2법칙 때문에, 여름이 반드시 겨울보다 짧아진다는 것이다.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법칙에 따르면 타원형의 공전궤도 선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분이 같은 시간 동안 그리는 부채꼴의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 따라서 태양과 가까울 때는 행성이 빨리 공전해 여름이 금세 끝나고, 겨울은 길어진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속 세상 어디에도 여름이 겨울보다 항상 짧다는 이야기는 없다.

끝나지 않는 겨울의 비밀

혼돈이 불러온 불규칙한 겨울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사실을 한번 정리해보자. 계절은 자전축 때문에 생긴다. 왕좌의 게임 속 계절의 변화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우주의 시간에 비해)에 오락가락하고, 거기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그러니까 웨스테로스를 무언가가 규칙 없이 훨씬 빠르게 흔들어야 한다. 점잖은 중력섭동이나 타원궤도로는 어려운 일이다. 더 세고 강하고, 규칙 따위는 없는 ‘혼돈’이 필요하다. 사실 이 혼돈은 이미 몇 백 년 전에 아이작 뉴턴을 괴롭혔다. 중력의 법칙을 알아낸 뉴턴은, 그의 책 ‘프린키피아’에 태양·지구·달 세 천체의 궤도를 나타내는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세 개의 천체가 서로 작용하며 움직이는 이 방정식을 ‘삼체문제’라고 부른다. 뉴턴은 수학적으로 삼체문제를 풀 수 없었다. 임의의 시간에 천체 위치를 정확히 구하지 못했다. 좌절한 그는 말년에는 삼체로 이뤄지는 세계는 결국에 혼돈으로 무너져 내리거나 삼체 중 하나가 계를 벗어남으로써 끝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뉴턴의 고민은 200년 뒤에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풀었다. 애초에 삼체문제에는 해답이 없었다. 푸앵카레는 삼체문제의 일반적인 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는 카오스 이론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이 카오스가 웨스테로스의 기묘한 계절을 설명할 수 있다.

1911년 미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던컨 맥밀란은 두 개의 별과 한 개의 행성으로 이뤄진 ‘맥밀란 천체’를 고안했다. 그는 이 모델로 특수한 조건에서 삼체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세 개의 맥밀란 천체 중 두 개의 별은 하나의 무게중심을 기준으로 한 평면 위에서 공전한다. 남은 행성은 두 별에 비해 아주 가벼운데, 공전면의 무게중심에서 다른 두 별의 공전 궤도면과 수직으로 위아래로 진동하듯 움직인다. 후
에 러시아의 천문학자 키릴 알렉산드로비치 스티니코프는 맥밀란의 천체를 바탕으로 좀더 불확실성이 강한 스‘ 티니코프 천체’를 만들었다. 스트니코프의 천체에서 별들은 원이 아닌 타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만약 수직으로 진동하는 스티니코프 천체의 행성 북반구에 웨스테로스가 있다고 가정하면 불규칙한 계절을 설명할 수 있다. 행성이 위나 아래로 진동할 때는 별과 멀어져 겨울이 된다. 반대로 평면 근처에서는 별과 가까워져 더운 여름이 된다. 얼핏 듣기에 규칙이 있어 보이지만 스티니코프 천체의 진동에는 규칙이 없다. 스티니코프 천체는 완전히 임의로 진동한다. 또 초기의 작은 조건 변화에 따라서 한참 뒤의 패턴이 크게 바뀐다. 예를 들어 시작 지점에서 일어난 100만 분의 일 정도의 작은 차이에 따라서 행성이 아예 계를 벗어나기도 하고 진동운동을 계속 하기도 한다. 스티니코프 천체는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의 아주 좋은 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대학원생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온도까지 추측했다. 이들이 2013년 ‘파퓰러피직스’에 발표한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라는 논문에서 두 개의 별과 한 개의 항성이 꽈배기 모양으로 회전하는 삼체를 만들었다. 논문에서 행성의 질량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고 가정했고 계의 안정을 위해 별에 최대한 가깝게 공전시켰다. 온도는 흑체복사로 추정했는데, 이들이 만든 행성은 겨울이 여름보다 기온변화가 심했다. 여름의 평균 기온은 12~14℃고, 겨울의 평균 기온은 영하 5℃~0℃를 오갔다. 겨울이 지속되는 기간도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겨울은 650일 정도에서 끝났지만 일부 겨울은 800일 이상, 심한 경우에는 850일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마에스터는과학자? 마법사?

오늘은 코트와 반바지 중 어떤 걸 입을까

스티니코프와 존스홉킨스의 모델 모두 앞의 다른 가설들보다 꽤 그럴듯하게 불규칙한 계절을 설명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큰 약점이 있다. 먼저 웨스테로스에는 태양이 두 개라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두 개의 별 중 하나를 관찰할 수 없는 갈색왜성이나 중성자별로 가정해야 한다. 보다 치명적인 약점은 이렇게 복잡한 형태로 계절이 바뀌는 삼체가 실제 우주에서 관측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상상 속의 산물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 말이다. 지난해 2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날마다 계절이 바뀌는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413b’라는 이름을 가진 이 행성은 지구로부터 23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에 있다. 행성은 66일을 주기로 주황왜성과 적색왜성의 무게중심을 공전한다. 공전 중에 행성은 중력 섭동 때문에 자전축이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또 케플러-413b는 공전을 잠깐 멈추기도 했다. 연구팀이 관측을 시작한 후 처음 세 번은 공전을 하더니, 이어 800일 동안은 제자리에 멈춰 있기도 했다. 이후에는 다시 멀쩡히 공전을 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두꺼운 코트와 짧은 반바지 중에 어떤 것을 입어야 할지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다행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절과 상관없이 케플러-413b는 사람이 살기에 너무 뜨거운 행성이다.

언젠가는 넓고 넓은 우주에서 사람도 살 수 있는, 세개의 천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의 이름은 분명 ‘웨스테로스’가 될 것이다. 만약 그곳에 가게 된다면 반바지를 입고 가더라도 두꺼운 코트를 꼭 챙기자. 언제 겨울이 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