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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건축물 진단하는 ‘문화재 의원’

조곤조곤 풀어보는 문화재의 수수께끼 ➋



“탑이나 건물 같은 묵직한 건축 문화재가 움직이는 것 아세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미세하게 회전을 해요.”

조은경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이 말했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라 깜짝 놀랐지요. 문화재를 좋아해 자주 답사를 다녔고, 특히 좋아하는 문화재는 몇 번이고 반복해 찾아가 똑같은 자리에 앉은 채 감상하는 게 취미인 저인데, 문화재가 움직였다는 낌새는 한번도 챈 적이 없습니다. 제가 둔한 걸까요.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아주 미세해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오래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어요.”

설명을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목조 문화재나 석재 문화재는 원래 ‘계절’을 탑니다. 목조의 경우 계절에 따라 부재가 수축하거나 팽창하기 때문에 전체 건축물이 조금씩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 다 지은 건축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안정화되는 과정을 겪는데, 이때에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폭이 크지 않은 데다 대개 계절이 지나면 원상복귀하기 때문에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조사로 건축문화재 정기검진

어떻게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과학적인 조사가 들어갑니다. 광파측거기(토탈스테이션)라는 측정 장비를 이용해 건축물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하면 부재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정확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아예 기둥에 기울기를 재는 자동계측장비를 달아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제 측정 자료를 보면, 기둥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금씩 꼬물꼬물 움직입니다. 대부분은 금세 제자리를 찾습니다만, 간혹 그렇지 못하고 한쪽으로 점점 심하게 기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 놔두면 쓰러지겠지요. 전남 여수에 있는 ‘진남관’이 대표적입니다. 1599년에 처음 지어진 조선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수십 개의 열주가 커다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장엄한 목조 건축물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나 의미가 커서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지정됐지요. 그런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4년부터 조사한 결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냥 뒀다가는 문화재도 훼손되고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3년 가을, 진남관을 해체한 뒤 안전하게 복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끔은 꼬물거리는 문화재가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작년 언론 보도를 통해 문제가 됐던 첨성대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첨성대가 8개월 만에 3cm 기울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난리가 났었지요. 하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에겐 이미 10년 전부터 해온 기울기 측정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첨성대는 기울어 있긴 했지만 진남관처럼 변형이 진행되는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안전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였지요. 물론 문화재청은 첨성대에 대한 안전 진단과 조사를 더욱 강화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문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원형 유지하며 문제 예방하는 ‘문화재 의원’

“신륵사(경기 여주), 창경궁(서울), 불국사, 첨성대, 분황사지(이상 경북 경주)….”

조 연구관의 3월 일정표에 적혀 있던 문화재 이름입니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조사하러 갈 곳들입니다. 한번 가면 며칠씩 머무르며 건축 구조의 안전성과 훼손 여부 등을 조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중요한 문화재 23곳을 두세 번씩, 한 해 총 70번 정도 방문합니다. 사실 문화재청은 1981년부터 주요 문화재를 대상으로 구조 등의 안전성을 조사해왔습니다. 하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조사하고자 작년 ‘문화재특별종합점검’을 실시해 문화재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중점적으로 관리할 ‘중점관리대상’을 56개 선정했습니다. 건축문화재연구실은 그 중 구조와 관련이 있는 23건을 맡았습니다.

조 연구관은 스스로를 문화재를 진찰하는 ‘의원’에 비유합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고, 이상이 있거나 더 자세한 진단이 필요한 경우 정밀조사를 받게 합니다. 수시로 검진을 해주는 의원이 우리에게 소중하듯, 문화재에도 조 연구관팀의 조사가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볼 환자에 비해 의원 수가 많이 부족한 게 아쉬운 점입니다. 중점관리대상 외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738건(2014년 기준)의 건조물 문화재도 의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극소수에 불과한 연구원들에게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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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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