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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선 뺨 싸대기 맞을 드립”

과고드립 운영자 셋 중 두 명을 3월 7일 동아사이언스 본사에서 만났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3학년 이석형 씨(21, 사진 왼쪽)와 KAIST 생명과학과 3학년 박건희 씨(21, 사진 오른쪽)였다. ‘굉장히 독특한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이들은 평범했다. 옷도 단정했고 예의발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

“전 미국드라마 ‘빅뱅이론’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랑 정서가 굉장히 잘 맞아요. 걔네 다 너드잖아요. 모든 걸 다 과학적으로 보는. 저도 주변에서 너드나 생덕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오히려 캐릭터이자 개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너드로 사는 게 재밌어요.” (박건희 씨)

“드립의 원조는 학교예요. 삼각함수 사분면을 ‘얼싸안고’라고 외우거나, 주기율표를 ‘이히리베 비키니’ 이렇게 외우잖아요. 수학·과학 선생님들이 학생들 외우기 쉬우라고 만든 드립, 그게 우리의 원조예요.” (이석형 씨)

과고드립은 2012년 처음 생겼다. 당시 대전과학고 2학년이던 이 씨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가지고 친구들과 웃고 즐기다 ‘아예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공유해보자’는 생각을 한 게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놀았는데, 우연히 ‘전국과학고등학교학생연합회’ 페이스북 그룹에 홍보를 했다가 대박이 났다.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전국 과학고 학생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전북과학고 2학년이던 박 씨도 이 무렵 과고드립에 들어왔다. “어떤 이상한 놈들이 이런 데 가입할까 궁금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재밌더라고요. 평소에도 이런 드립을 좋아한 데다, 과학이슈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모습에 반했어요.”

박 씨는 과고드립의 가장 큰 장점으로 “평소에는 남들에게 할 수 없는 드립을 해소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다른 곳에서 하다간 뺨 싸대기를 맞거나, 대인관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드립을 여기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순수 과학드립 많아졌으면

이공계생들은 과고드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씨는 “과학고 학생들은 다 안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대학에 들어온 후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만난 고등학생들한테 제가 과고드립 운영자라고 하니까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더라고요.” 박 씨는 한술 더 떠 “과학고 학생이 다수인 카이스트에선 과고드립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과고생보다 일반고나 중학교 학생이 더 많다고 한다.

운영자들은 과고드립의 황금시대가 2012년 말부터 2013년 말까지였다고 말했다. 당시는 순수 과학드립이 숱하게 올라왔고, 과학관련 토론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점점 사람이 늘어나면서 과학드립이 아닌 엉뚱한 글이 많이 올라와 속상하다고 운영자들은 말했다. 과고드립을 망치는 대표적인 게시물은 사이비 과학 글이었다. 이런 글이 올라오면 답도 안 나오는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감정적인 댓글도 달린다고 했다.

박 씨는 “순수 과학드립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드립이 과학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세상의 모든 일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마음가짐이잖아요. 과고드립에서 그런 연습을 한 아이들이 나중에 진짜 과학자가 됐을 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 씨는 과고드립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EXID드립을 보고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본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드립 ｜애드리브의 준말. 온라인에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보통 ‘드립’이라고 표현.  너드 ｜지능이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  생덕 ｜‘생물 오타쿠’의 준말. 모든 걸 생물학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  끌올 ｜‘끌어올림’의 준말. 아래에 있는 게시물을 위로 끌어올린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