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은 여러 모로 특이한 해다. 그 해에 태어난 이들은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됐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독자 가운데에 이 해에 태어난 독자도 있겠다(과학동아 편집부에도 이 해에 태어난 기자가 몇 명 있다. 인생의 중요한 한 고비를 넘긴다고 싱숭생숭해 하고 있다. 괜찮아…, 별거 없어).
‘과학동아’ 역시 이 해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서른을 맞았고, 내년이면 만으로도 서른이 된다. 한국에서 30년이 된 과학잡지는 유일하다. 영국의 ‘네이처’, 미국의 ‘사이언티픽아메리칸’ 등의 과학잡지는 역사가 100년, 150년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잡지 한 귀퉁이에 코너를 마련해 50년 전, 100년 전, 150년 전의 기사를 소개한다. 긴 역사를 뽐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롭기 때문에 시선이 간다. 당시 쓰여졌던 과학 기사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상전벽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극 탐험을 갔다 조난당한 과학자 이야기,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제조법으로 만든 화학물질 이야기 등을 읽자면 ‘지금은 별 것 아닌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며 슬몃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 변화가 빠르고 큰 분야가 과학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잡지로서, 과학동아도 창간 때인 1986년의 과학 기사를 다시 상기해 본다. 마침 동아사이언스는 1986년부터 2008년 8월까지 과거의 모든 기사를 디지털 라이브러리 ‘D라이브러리(dlibrary.dongascience.com)’로 구축해 올해 3월부터 무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궁금한 사람은 재미로 찾아봐도 좋겠다. 세상이 ‘겨우’ 서른 해 만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창간호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20세기 최대의 천문 이벤트, 핼리혜성 이야기다.
잠시 잊혀진 혜성의 대명사
1986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기자는 핼리혜성이 낯익다. 나이가 좀더 많은 세대에게도 핼리혜성은 혜성의 대명사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형 혜성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떠들썩하게 ‘그’의 등장을 반겼고, 수많은 기사와 책이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세대에게는 핼리혜성이 그다지 낯익지 않다. 가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핼리혜성은 75~76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돈다. 타원궤도를 도는데, 1986년 2월에 태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고 이후 멀어졌다.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던 때는 1986년 4월이었다. 이후 초대합니다3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이 혜성은 태양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 현재 해왕성 궤도를 넘어 명왕성 조금 못 미친 곳을 날고 있다. 핼리혜성은 곧(2024년 예상) 자신의 궤도 중 태양에 가장 먼 곳을 지나 다시 태양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다. 태양에 가장 접근하는 시기는 2061년으로 아직 거의 반세기가 남았다.
비록 75~76년이라는 꽤 긴 주기로 움직이지만, 핼리혜성은 되돌아오는 주기가 짧은 단주기 혜성이다. 76년이면 사람의 한평생과 맞먹는데 짧다니 이상하지만, 혜성 중 장주기 혜성은 주기가 최소 200년 이상이 돼야 한다. 수천 년 만에 찾아오는 혜성도 있다.
당시의 ‘과학동아’ 기사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혜성을 탐사했던 탐사선이 소개된 대목이다. 최근 혜성에 착륙해 화제가 됐던 ‘로제타’ 호가 떠오르지만, 당시 연구 수준도 뒤지지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기구(ESA)는 물론 구소련, 일본의 탐사선이 무려 6개나 핼리혜성에 접근해 꼬리의 먼지 성분 등을 측정했다. 가장 가깝게 접근한 탐사선은 600km까지 접근해 생생한 사진을 남긴 ESA의 ‘지오토’였다.
76년 만에 찾아온 핼리혜성은 당시 과학자에게 놓칠 수 없었던 중요한 연구 기회였다. 과학자들은 기회를 버리지 않고 탐사선을 보냈다. 변변한 컴퓨터도, 카메라도 없던 시절이지만, 지름 수km의 혜성 근처에 정확히 도착할 정도로 당시의 우주 과학 기술은 뛰어났다. 어쩌면 첫 혜성 표면 착륙이라는 쾌거의 씨앗은 이미 30년 전에 숨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당시 기사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동양의 옛 천문학에 대한 언급이다. 동양에 남아 있는 핼리혜성의 관측 기록은 꽤 정확하다. 이 분야는 최근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고천문학자가 집대성한 ‘우리 혜성 이야기’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다음 혜성이 돌아오려면 아직 반 세기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그 땐 또다시 핼리혜성이 태양계 혜성의 대명사가 될 것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적어도 핼리혜성을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