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에 걸린 치과의사가 치료한 환자들이 같은 병에 걸려 미국 의학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 의학계는 최근 플로리다주의 한 치과에서 발생한 AIDS전염사건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인물은 플로리다에서 치과개업의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아서. 작년 여름 그가 AIDS에 걸려 죽은 뒤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 중 현재까지 5명이 AIDS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약1년간에 걸친 조사끝에 이 5명을 AIDS에 감염시킨 원인제공자는 바로 그들의 주치의였던 아서라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확실히 판명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학(疫學)전공의사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병원에서 전염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이 빗발치지만 역학자들 자신도 아직 정확한 전염경로를 밝히지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우선 아서의 치료방법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보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그러나 지금껏 의사나 간호사 등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사람들이 AIDS를 전염시킨 사례가 보고 되거나 정리된 바 없기 때문에 역학자들은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피해당사자들. 이들은 자신들이 AIDS환자라는 사실이 공개화되는 것까지 감수하면서도 조사에 임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AIDS에 걸린 의료활동종사자들의 진료행위 등을 제한하도록 의료수칙을 개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의회에 압력을 가해 감염된 사실을 숨기고 의료활동을 계속한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게끔하는 법률을 제정하려는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의료활동종사자들이 AIDS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는 있었다. 그러나 작년 7월 아서의 환자였던 킴벌리 버갈리스가 최초로 AIDS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만해도 누구도 선뜻 치과의사에 의한 감염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AIDS환자로 판명된 20명의 다른 의료활동종사자들의 경우 그들의 환자를 전염시킨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국립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의 후원으로 열린 회의에서 캐나다 치과협회의 존 하디박사는 아서가 AIDS를 유포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신의 혈액을 국소마취제 속에 섞어 주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하디박사의 이론은 가정(假定) 이상의 무게를 갖지 못했다. 원인제공자인 아서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의학적인 견지의 것이었지, 형사들이 하는 것 같은 신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아서도 현재는 죽고 없기 때문에 조사팀은 이제 남은 그의 가족이나 함께 일한 동료들을 형사적으로 수사하거나 심리학자들을 동원할 계획이다. 한편 아서가 감염된 환자들과 성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조사결과 5명중 누구도 그런 일은 없었다.
원인을 밝히는 것 말고도 문제는 있다. 아서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절반도 안되는 숫자만이 AIDS감염여부를 검사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다른 경우에도 흔히 있는 일로 자신이 AIDS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정확한 검사 자체를 피해버린다. 따라서 아서의 환자들중 밝혀지지 않은 AIDS보균자들이 더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역학팀은 두가지의 가정을 내려놓고 있다. 그 하나는 아서가 사용한 치료기구들이 오염됐을 가능성이다. 만약 그가 이미 AIDS에 감염된 자신의 섹스파트너를 치료한 기구로 다른 환자를 치료했다면 감염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게다가 그간의 조사를 보면 아서가 대단히 능숙한 의사이기는 했지만 때때로 소독을 게을리했다는 사실도 발견된다.
또 하나는 그의 혈액이 환자에게 직접 침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술 중에 어디엔가 긁혀 그의 소독장갑이 찢어지고 피가 났다면 한두방울로도 환자가 AIDS에 감염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사팀은 살아있을 당시 채취해 놓은 아서의 혈액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다. 만약 아서의 혈액에 유난히 AIDS바이러스의 함유량이 크다면 소량으로 많은 환자들이 감염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